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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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몇 작품이 이해가 안가 포기할 뻔 했으나 또 오기가 발동. 1/3정도만 견디면 그 다음부터는 그녀의 날카롭고 차가우면서 가차 없는 작품 세계에 나도 모르게 빠지게 된다. 인간의 무지, 위선, 오만, 내면의 모순 등을 전 작품에 걸쳐 섬뜩할 정도로 무자비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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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7-12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전 이거 (몇 년 째) 아직 다 못 읽었는데... 이 100자평 보니까 자극받네요. ㅎㅎ

coolcat329 2019-07-12 16:30   좋아요 0 | URL
처음에는 가독성이 떨어져서 좀 피곤했는데 거의 모든 작품 그녀만의 세계가 반복적으로 변주되어 집중이 잘 되더라구요. 작가로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이 대단하게 보여요.
 
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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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연수가 말하는 소설을 쓰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내가 소설 쓸 일은 없겠지만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소설가가 말하는 소설에 관한 책은 늘 궁금하다.

별 기대 안하고 첫 페이지를 펼쳐 읽다가 풉! 하고 나도 모르게 터져서 그 전에 읽던 책(플래너리 오코너의 세계에서 잠시 휴식이 필요)을 잠시 중단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1년 동안 완독하기로 새해 결심을 하고선 2개월이 지나도록 47페이지에 머무르자 '나는 쉬고 싶지, 다른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까지 찾고 싶지는 않다'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김연수가 너무 귀여웠다.

 

자신의 다양한 경험과 일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자연스럽게 소설과 연결지어 '어떻게','어떤 자세로' 글을 써야 하며 어떤 시선으로 삶을 바라봐야 하는지 시종일관 자조섞인 유머와 진지함을 오가며 보여준다. 낄낄거리며 웃다가도 어느새 줄을 긋고 싶지만 빌린 책이라 못하고 노트에 쓰고 있는 나를 자주 발견.

 

p.54

이 삶이 멋진 이야기가 되려면 우리는 무기력에 젖은 세상에 맞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만 한다. 단순히 다른 삶을 꿈꾸는 욕망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한다. 불안을 떠안고 타자를 견디고 실패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지금 초고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소설가에게 필요한 말은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자는 것이다. - 제1부 열정,동기,핍진성

 

p.141

소설을 쓰겠다면, <크리스마스 캐럴>의 마지막 장면을 항상 기억하기를. 어떤 인간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바뀔 수있다는 것. 그 사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다는 것. 달라진 사람은 말, 표정 및 몸짓, 행동으로 자신이 바뀌었음을 만천하에 보여준다는 것. 그러므로 소설을 쓰겠다면 마땅히 조삼모사하기를. 아침저녁으로 말을 바꾸고 표정을 달리하고 안 하던 짓을 하기를.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제2부 플롯과 캐릭터

 

 

제목은 '소설가의 일'이지만 글을 읽다 보니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소설을 어떻게 쓰느냐'가 아닌 '내 삶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아름답게 쓸 수 있는가' 라는 중요한 물음.

내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려면, '평범한 일상을 강렬하게 맛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허기지게 늘 바보처럼' 나의 사소하고도 별 볼일 없는 일상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스스로에게 뭐가 들리고 뭐가 보이는지 물어봐야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생각보다는 감각에 빠지기를 갈망해야 한다.

 

 

p.174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이 말은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미문의 인생이다. 소설 속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추잡한 문장은 주인공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인생을 뻔한 것으로 묘사할 때 나온다. 사랑하지 않으면 뻔해지고, 뻔해지면 추잡해진다. 

 -제3부 문장과 시점

 

p.217

시간이 날 때마다 지금 뭐가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지, 어떤 냄새가 나고 어떤 맛이 나는지, 자신에게 묻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라도 쓸 수 있다면, 그걸 문장으로 쓰자. 자기가 지금 뭘 보고 듣고 만지고, 또 어떤 냄새와 어떤 맛이 나는지.

 - 제3부 문장과 시점

 

김연수의 소설은 한 권도 읽어 보지 않았지만 마치 소설을 읽은 것처럼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을 어떤 시선과 자세로 바라보고 느끼며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소설에 푹 빠진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허구가 아니다.'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독자'로서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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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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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고 있는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에 이런 말이 나온다.

 

"주인공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이야기에서 가장 사랑할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사랑할 만한 사람'인가는 다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는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매력이란 그가 자신의 한계를 온몸으로 껴안는 행동을 할 때, 그걸 지켜보는 사람(작가나 독자)의 내부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공감의 감정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지난 달에 읽은 헤밍웨이의 마지막 소설, 그에게 퓰리처 상(1953)과 노벨문학상(1954)을 안겨준 작품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이 생각 났다. '자신의 한계를 온몸으로 껴안는' 다는 표현은 바로 산티아고 노인이며 이런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쿠바 멕시코 만류에서 고기를 잡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노인 산티아고. 고기를 못 잡은지 84일 째, 같이 고기를 잡던 소년 마놀린도 부모의 만류로 떠나고 홀로 남은 그는 85일 째 되던 날 행운을 비는 마놀린의 배웅을 받으며 넓은 바다로 나간다. 운이 통했는지 첫 날 거대한 청새치가 낚시줄에 걸리고 노인은 망망대해 한 복판에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인 끝에 잡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상어떼에게 습격을 당하고 청새치는 뼈만 남게 되어 돌아온다.

 

드넓은 바다 위 조그만 배안에 홀로 있는 노인을 보며 나 또한 아니 우리 모두는 이 세상이라는 바다 위에서 외로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혼자 배를 타면서부터 혼잣말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미끼를 물 테지. 하느님, 그놈이 제발 먹게 해 주십시오!" 라며 고기가 잡히길 강렬히 열망한다. "그 애가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도와줄 수도 있고, 이걸 구경할 수도 있을 텐데." 라며 청새치와의 고독한 싸움에 소년이 함께 해주길 바란다. '늙어서는 어느 누구도 혼자 있어서는 안 돼' 라고 생각하며 늙은 자신에게 연민도 느낀다. '차라리 어부가 되지 말걸 그랬나 보다' 하며 후회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어부가 되는게 자신의 운명임을 알고 힘을 내기 위해 다랑어를 먹는다. 육체의 고통 앞에서 '넌 언제까지라도 영원히 저놈과 싸울 수가 있어. 자, 지금 다랑어를 먹어 두자' 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는 말을 한다. 순간순간을 끊임없이 긍정하며 자신의 할 일을 하려는 노인의 모습이 나에게는 강인하고 아름다운 한 인간을 보는 것 같았다.

 

한 때는 잘나가던 어부였으나 현재는 운이 다한 늙은 어부인 산티아고. 그는 왜 먼 바다까지 나와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일까...

 

p.67

난 녀석에게 인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참고 견뎌 낼 수 있는지 보여 줘야겠어.

"나는 그 아이한테 내가 별난 늙은이라고 말했지. 지금이야말로 그 말을 입증해 보일 때야" 그가 말했다.

 

노인은 자신의 어부로서의 정체성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한다. 그는 지금까지 그런 입증을 수천 번 해 보였지만 그런 영광은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안다.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할 뿐 과거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소년에게 자신이 '별난 늙은이' 임을 보여줌으로써 소년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너무나 유명한 이 말은 바로 이런 노인의 정신을 보여준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기에 파괴당할 수는 있겠지만, 살아있는 순간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그 정신만큼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노인은 알고 있고 그것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인간 정신의 숭고함과 함께 아름다운 것은 함께 나누고 의지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까마득한 바다에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는 순간마다 소년을 그리워한 노인과 그런 노인을 누구보다 존경하고 믿는 소년. 바다에서 외롭게 혼잣말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대화를 나눌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노인은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육지로 돌아왔을 때 노인과 소년이 나눈 대화는 마음을 울린다.

 

p.125

"사람들이 나를 찾았니?"

"물론이죠. 해안 경비대랑 비행기까지 동원됐어요."

"바다는 엄청나게 넓고 배는 작으니 찾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을 테지." 노인이 말했다. 그는 자기 자신과 바다가 아닌, 이렇게 말 상대가 될 누군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지 새삼 느꼈다. "네가 보고 싶었단다. 그런데 넌 뭘 잡았니?" 노인이 물었다.

"첫날에는 한 마리 잡았고요, 이튿날에도  한 마리, 그리고 셋째 날엔 두 마리나 잡았어요."

"아주 잘했구나."

"이젠 할아버지하고 같이 나가서 잡기로 해요."

"그건 안 돼. 내겐 운이 없어. 운이 다했거든."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운은 제가 갖고 가면 되잖아요." 소년이 대꾸했다.

 

단순히 큰 물고기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닌 자신을 극복해 내는 그 과정이 노인에게는 중요하다. 비록 노인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빈 손으로 돌아왔지만 떠나기 전의 노인과 돌아온 후의 노인은 분명 다른 사람일 것이다. 노인은 분명 평생을 이런 신념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곁에는 그런 노인을 믿고 존경하는 소년이 있다.

 

앙상한 뼈를 드러낸채 배에 묶여 있는 청새치는 노인이 바다에서 무엇을 했고, 어떤 시련을 견뎌냈는지 보여주는 빛나는 상징이다.

자신의 운명에 당당히 맞서 그 '한계를 온몸으로 껴안는' 산티아고를 보며 그의 말처럼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임을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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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7-05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산티아고 노인 정말 좋아해요. 바다에서 싸우고 터덜터덜 돌아와서 뼈만 남은 청새치와 함께 돌아온 노인이 모습... 그리고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라는 말... <노인과 바다>는 어릴 때 읽었을 땐 이게 뭐야 싶었는데, 나이 들어 다시 읽으니 헤밍웨이 최고작으로 꼽힐 만 한 작품이에요. 정말.

coolcat329 2019-07-05 12:20   좋아요 0 | URL
네, 20대들은 ‘이게 뭐야?!‘ 할 수도 있을거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좋은점도 있네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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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풍부한 사유를 하게 만드는 책이다.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 중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답은 없다. 그저 인간은 이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인간실존에 대한 고민을 4명의 남녀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실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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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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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보잘 것 없는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

 

그 유명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안 읽고-요즘 읽고 있다- 처음 만난 쿤데라의 작품이다. 그의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삶의 가벼움, 하찮음, 무의미함에 대한 생각이 응축된 시집같은 책이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리얼리즘 소설과는 다른 특이하면서도 매우 지적인, 철학적 사유를 담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어렵다면 어려운 소설이겠으나 술술 잘 읽히기는 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거의 다 읽었는데, 온전히 이해하기엔 어려운 책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술술 읽힌다. 그에 비하면 이 작품은 가벼운 느낌이지만, 독서 토론에서 다룬다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에겐 그런 경험이 필요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쿤데라는 삶의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나는 머리가 무거워 힘들다.

 

쿤데라가 85세에 쓴 작품으로 어쩌면 그의 유작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85세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나로서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인상적인 구절을 적어본다.

 

p.58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p.147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여기, 이 공원에, 우리 앞에,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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