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소설가 김연수가 말하는 소설을 쓰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내가 소설 쓸 일은 없겠지만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소설가가 말하는 소설에 관한 책은 늘 궁금하다.

별 기대 안하고 첫 페이지를 펼쳐 읽다가 풉! 하고 나도 모르게 터져서 그 전에 읽던 책(플래너리 오코너의 세계에서 잠시 휴식이 필요)을 잠시 중단하고, 유쾌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1년 동안 완독하기로 새해 결심을 하고선 2개월이 지나도록 47페이지에 머무르자 '나는 쉬고 싶지, 다른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까지 찾고 싶지는 않다'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김연수가 너무 귀여웠다.

 

자신의 다양한 경험과 일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자연스럽게 소설과 연결지어 '어떻게','어떤 자세로' 글을 써야 하며 어떤 시선으로 삶을 바라봐야 하는지 시종일관 자조섞인 유머와 진지함을 오가며 보여준다. 낄낄거리며 웃다가도 어느새 줄을 긋고 싶지만 빌린 책이라 못하고 노트에 쓰고 있는 나를 자주 발견.

 

p.54

이 삶이 멋진 이야기가 되려면 우리는 무기력에 젖은 세상에 맞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만 한다. 단순히 다른 삶을 꿈꾸는 욕망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한다. 불안을 떠안고 타자를 견디고 실패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지금 초고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소설가에게 필요한 말은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자는 것이다. - 제1부 열정,동기,핍진성

 

p.141

소설을 쓰겠다면, <크리스마스 캐럴>의 마지막 장면을 항상 기억하기를. 어떤 인간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바뀔 수있다는 것. 그 사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다는 것. 달라진 사람은 말, 표정 및 몸짓, 행동으로 자신이 바뀌었음을 만천하에 보여준다는 것. 그러므로 소설을 쓰겠다면 마땅히 조삼모사하기를. 아침저녁으로 말을 바꾸고 표정을 달리하고 안 하던 짓을 하기를.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제2부 플롯과 캐릭터

 

 

제목은 '소설가의 일'이지만 글을 읽다 보니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소설을 어떻게 쓰느냐'가 아닌 '내 삶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아름답게 쓸 수 있는가' 라는 중요한 물음.

내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려면, '평범한 일상을 강렬하게 맛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허기지게 늘 바보처럼' 나의 사소하고도 별 볼일 없는 일상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스스로에게 뭐가 들리고 뭐가 보이는지 물어봐야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생각보다는 감각에 빠지기를 갈망해야 한다.

 

 

p.174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이 말은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미문의 인생이다. 소설 속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추잡한 문장은 주인공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인생을 뻔한 것으로 묘사할 때 나온다. 사랑하지 않으면 뻔해지고, 뻔해지면 추잡해진다. 

 -제3부 문장과 시점

 

p.217

시간이 날 때마다 지금 뭐가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지, 어떤 냄새가 나고 어떤 맛이 나는지, 자신에게 묻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라도 쓸 수 있다면, 그걸 문장으로 쓰자. 자기가 지금 뭘 보고 듣고 만지고, 또 어떤 냄새와 어떤 맛이 나는지.

 - 제3부 문장과 시점

 

김연수의 소설은 한 권도 읽어 보지 않았지만 마치 소설을 읽은 것처럼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삶을 어떤 시선과 자세로 바라보고 느끼며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소설에 푹 빠진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허구가 아니다.'

가장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독자'로서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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