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테말라 (2020)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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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산미, 깔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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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5-27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맛에 관한 건 완벽하게 개인 취향입니다만, 알라딘 커피는요, 제 입맛에 너무 과하게 로스팅한 것 같더라고요. 좀 덜 태운 건 안 파는지....참, 늘 머뭇거리게 만듭니다. ^^;;

coolcat329 2020-05-27 14:32   좋아요 1 | URL
잊을만하면 새로운 커피가 나오니 또 재미가 있더라구요. 이 커피는 과테말라인데 로스팅 과하지 않고 산미도 있으니 한번 드셔보셔요~~산미가 싫으시면 비추구요😅
 
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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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나에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이미지는 이 책에 나온 다음의 묘사와 상당히 비슷하다.

 

겨울밤에 예루살렘의 건물들은 검정색 배경 앞에 얼어버린 회색의 형상처럼 보인다. 억눌린 폭력을 잉태하고 있는 풍경. 예루살렘은 때로 추상적인 도시가 된다. 돌과 소나무, 그리고 녹슨 쇳덩이들.(p.23)

 

회색빛, 억눌린 폭력, 뭔가 명확하지 않은 추상적인 느낌, 돌, 쇳덩이...이런 단어들이 이스라엘과 겹쳐진다.

 

어느 겨울날 아침 아홉시에 나는 계단을 내려오다가 미끄러졌다. 한 낯선 청년이 내 팔꿈치를 잡아주었다. (p.7)

 

지질학을 공부하는 미카엘과 히브리 문학을 공부하는 한나의 첫 만남은 이렇게 설레이는 우연으로 시작된다. 두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상대방의 모습에 끌리게 되고 서로를 알아갈 새도 없이 바로 결혼을 한다. 미카엘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던 한나는 결혼과 함께 찾아온 임신과 출산, 그로인해 공부를 중단해야 하는 현실과 만나며 서서히 병들어가기 시작한다.

'하루하루의 음울한 똑같음' 속에서 알 수 없는 슬픔에 젖어 들며 한달치 생활비를 쇼핑으로 써버리는 등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소홀히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나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미카엘은 다 참아내며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는다. 이런 미카엘의 모습이 한나를 더 견딜 수 없게 만들고 두 사람 사이에는 '냉정한 균형','불편한 타협' 만이 남는다.

 

우리는 이렇게 앉는다. 나는 냉장고 옆에 등을 기대고 밝은 푸른색 직사각형 모양의 부엌 창문을 마주본다. 미카엘의 등은 창을 향하고 있고 그의 눈에는 냉장고 꼭대기의 빈 병들이나 부엌 문, 복도의 일부, 그리고 욕실 문이 비친다.(p.169)

 

마주보고 앉아 있지만 서로 바라보는 곳은 다른 두 사람. 소통하지 못하는 부부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인상깊었다.

하지만 나는 같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한나에게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한나의 내면심리을 좇아가며 읽어야 하는 책이기에 그녀의 감정을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그녀가 몽상속에서 추구하는 세계가 너무 허황되고, 여자가 결혼 후 겪는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증을 감안하더라도 그녀의 변덕과 불안은 그 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런 한나를 다 받아주고 가정과 학업에 최선을 다하는 미카엘이 바보같아 보였다. 현실에 이런 남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작품은 이스라엘 예루살렘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배경으로 두 남녀의 만남과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 작가 아모스 오즈는 내 문학 속 주인공들은 '현실과 꿈을 조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며 별을 보다 실족하는 이상주의자들이다'라고 했는데, 이 작품은 바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나는 '냉담한 도시' 이자 '억눌린 폭력을 잉태'하는 도시인 예루살렘에서 사는게 힘들다. 그녀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 '이본 아줄라이'가 되어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그 결핍을 채우려 한다. 그 꿈 속에서 자신은 여왕이자 황제이며 음모에 대항해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하지만 한나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스라엘이며 미카엘의 아내이다.

제목 '나의 미카엘'이 어느 순간 '나의 이스라엘'로 느껴지는건 이상을 추구하는 한나에게 이스라엘과 미카엘은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거부할 수 없는 실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나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시간을 환기하고 기억에 집착하며 죽음을 두려워한다. 현실에 발 붙이지 못하는 한나에게 시간의 흐름은 견뎌야 하는 고통이다.

이런 한나의 모습은 당시 전쟁으로 암울하고 불안했던 이스라엘의 모습과 겹쳐진다. 예루살렘 도시의 묘사와 한나의 내면묘사가 뒤섞이고 현실과 꿈이 뒤섞이는 이 작품은 그 자체로 한나이기도 하다.
현실과 꿈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한 '실족한 이상주의자'를 이토록 우울하고 불안하게 당시 이스라엘의 분위기와 연결지어 보여준 아모스 오즈.

쉽게 공감할 순 없었지만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을 균형된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그의 노력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한나와 미카엘의 대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거죠?"

"당신의 질문은 무의미해.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야. 그냥 살고 있지. 그걸로 끝이야." (p.265)

 

나는 미카엘의 말에 더 수긍이 가지만 단순히 '그냥 산다'고 말하는 건 어딘가 서글픔이 느껴진다. 내 삶에 질문을 던지는 또 한 권의 책이다.

 

아! 꼭 하고 싶은 말. 책 뒷표지에 아서 밀러의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라는 추천사가 있는데, 이건 러브 스토리가 절대 아니다. '아름다운 서정시'라는 말도 조금은 부적절하다. 차분한 글이지만 서정시가 주는 아름다움보다는 한나의 불안정한 감정이 지배적이라 우울하고 침체된 문장에 깔리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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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0-05-26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솔직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가슴에 손을 얹고 얘기하자면, 이 책, 재미 없었습니다. ㅋㅋㅋ

coolcat329 2020-05-26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ㅋㅋ 저도 동감입니다🤣🤣🤣 제가 폴스타프님 글 읽고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사뒀는데 이건 좀 다를거라 기대해 봅니다.
 
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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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페루가 배출한 세계적인 작가로 2010년 노벨문학상을 받기까지 했는데, 난 이 작가를 작년에야 알게 되었다. 우연히 중고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사두었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했다.

 

1988년 발표한 이 소설은 페루의 수도 리마의 한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등장 인물은 주인 리고베르토와 아들 알폰소, 리고베르토와 재혼한 아내 루크레시아, 하녀 후스티니아나이며 이야기는 리고베르토의 저택에서 펼쳐진다.

루크레시아는 아름다운 40세 여인으로 처음에 리고베르토와 재혼할 때 의붓아들인 알폰소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까봐 걱정했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생일 축하해요, 새엄마!

돈이 없어서 선물은 준비 못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꼭 일등할게요. 그게 내 선물이 될 거예요. 새엄마는 이 세상에서 최고예요. 가장 예쁜 사람이고요. 나는 매일 밤 새엄마 꿈을 꿔요.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요! (p.13)

 

자신의 생일날 의붓아들이 손으로 쓴 편지를 받고 아들이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는다. 내가 루크레시아였어도 정말 기뻐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다음부터 이야기는 순수와 욕망, 도덕과 금기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참으로 요사스럽게 전개되니 직접 읽어보시길...

 

온몸을 훑어대는 에로틱한 묘사, 새엄마와 의붓아들의 사랑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묘사와 이야기 구성에 저속한 외설이라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더 밝고 건강한 성적 유희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고전명화부터 현대 추상화까지 유명 미술작품들을 이야기 중간중간에 삽입하여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와 연관지어 풀어나감으로써 작품에 풍성함을 더하는 독특한 서술방식이었다. 처음에 나오는 그림부터 나의 시선을 압도, 또 그 그림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요사의 유머와 자연스러운 상상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루크레시아 남편인 이 리고베르토라는 사람은 또 어떤가!

자신의 육체를 정화하는 그만의 '느리고도 복잡한 작업'이 있으니 이 또한 읽어보시길 바란다.

 

비록 너무 늦게 알게 된 작가이지만 이 분의 다른 작품들도 꼭 읽고 싶다. 일단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사두었다. 조만간 읽게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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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5-23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주 좋아라하는 작가랍니다.

저는 <판탈레온>으로 입문했답니다.

초기작인 <녹색의 집>이 좀 재출간
되었으면 싶은데 소식이 없네요.

최근 모 출판사에서 비교적 초기
작품인 <까떼드랄>을 출간해서 쟁여
두긴 했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네요.

coolcat329 2020-05-23 13:31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 글 읽어서 좋아하시는거 알고있었는데 판탈레온으로 입문하셨군요! 기대가 더 커지네요😚

Falstaff 2020-05-23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책 읽으셨네요. 이 작품의 후속작이 <레고베르토 씨의 비밀 노트>입니다. 그것도 꽤 흥미롭습니다. 에곤 쉴레의 그림을 좋아하시면 읽으실 만한데, 한 가지 염병할 건, 얇은 책이 두 권으로 되어 있다는 거.... 웬만하면 중고책 사서 읽으셔요.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0-05-23 21:20   좋아요 1 | URL
아! 꼭 읽어 보겠습니다. 폴스타프님 글 읽고 후속작 에서 요 발칙한 알폰소녀석이 루크레시아를 찾아간다는걸 알았네요.중고를 알아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
 
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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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이다. 각 이야기는 발표된 시기가 다른데, 책 속 순서대로 <초봄>은 1913년,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은 1908년, <종말>은 1914년에 각기 발표되었고 1915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다시 발표되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크눌프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천성이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험한 노동을 하지 않아 아름다운 손을 가졌고, 걸음걸이는 날렵하며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밝음을 가진 인물이다. '직업도 없는 방랑자로서 불법적이고 비천한 존재'(p.15)였으나, 사람들은 크눌프를 보며 자유를 꿈꿀 수 있고 '집을 즐겁고 밝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방문을 감사해한다.

 

속세의 관점에서 보면 크눌프의 삶은 비루하고 한심해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자유와 방랑에는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정직함이 있다.

첫번 째 이야기 <초봄>에서 크눌프는 무두장이 친구의 집을 방문한다. 남편은 성실하고 아내는 사랑스러우며 집안은 따뜻하다. 겉보기엔 이렇게 안온한 가정이지만 친구의 부인은 남편 몰래 크눌프를 유혹한다. '예절바르고 근사한' 크눌프와 비교해 투박해 보이는 남편에게 화가 난다. 이것이 세속적인 인간 세상의 민낯이다. 친구는 크눌프에게 방랑을 멈추고 한 곳에 정착하라고 하지만 어린 아이같이 순수한 크눌프는 이런 세상에서 사는게 힘들었을 것이다. 적당히 더러워야 세상살이가 쉬운 법이니까.

 

두번째 이야기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은 '즐거운 청년시절' 여름 한 때 크눌프와 이곳 저곳을 함께 여행하던 '나'의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행 중 사랑과 우정, 인간의 영혼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몫을 철저히 혼자서 지고 가는 것'이라고 말한 크눌프에게 동의하지 못했던 나는 그가 떠난 후 '고독'이라는 쓰라린 감정을 처음으로 맛보게 된다.

 

그러나 이런 크눌프도 죽기 전에는 자신의 인생에 의문을 갖는다.

자신의 지난 삶에서 그 어떤 의미도 찾지 못하는,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외롭고 비참할것이다.

하지만 헤세는 크눌프를 그렇게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는다.

크눌프는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을 만난다. 그에게 따진다. 왜 프렌치스카가 떠나고 내가 망가졌을때 날 죽게 하지 않았냐고. 밝고 유쾌한 크눌프에게도 못 이룬 사랑은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이었었던 것이다. 그는 아름다웠던 순간들 보다는 오로지 이루지 못한 프란치스카와의 사랑에만 집착하고 괴로워한다. 하느님은 크눌프에게 그가 잊고 있던 아름다운 시간들을 되찾게 해준다. 또한 크눌프가 많은이들을 웃게 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자유를 그리워하게 했다는 사실도 일깨워준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p.134)

 

하느님이 마지막에 묻는다.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느냐?"

"네. 모든 것이 제대로 되었어요."(p.135)

 

하느님의 음성은 어머니처럼 다시 첫사랑 헨리에테처럼, 또 다시 두번째 애인 리자베트의 음성처럼 들려오고 그는 편안하게 죽음을 기다린다.

참으로 따뜻한 결말이다. 하얀 눈위에 누워 드디어 마음의 평안을 얻고 죽음을 기다리는 크눌프의 모습이 그려진다.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의 순간, 이렇게 평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젠 '잠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다면...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고 끝맺으려 한다.

<초봄>에서 크눌프는 재단사 친구에게 성경이야기를 하며 이런 말을 한다.

 

"성경의 여기저기에서 난 꼭 아름다운 그림책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네."(p.37)

 

나야말로 헤세의 이 책을 보며 '아름다운 그림책'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낯선 도시에 와서 외로워하는 하녀를 위해 건너편 창문에서 휘파람을 불어주는 크눌프의 낭만적인 모습, 친구 부인의 유혹을 피해 몰래 집을 빠져나가는 재밌는 장면, 젊은 시절 함께 방랑하던 친구와 교회묘지에 누워 이야기 나누는 모습 그리고 수북이 쌓인 눈 위에서 평온히 눈 감는 마지막 모습까지 장면 장면이 따뜻한 그림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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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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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헝가리 작가 서보 머그더(1917~2007)의 책이다. 1987년 발표된 이 작품은 그녀를 세계적으로 알렸고 2003년 프랑스 페미나 상, 2015년 미국에 출간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작가인 '나'와 가정부 사이의 20여년에 걸친 이야기라는 것만 알고 읽기 시작, 첫 장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에메렌츠를 죽인 것은 나였다. 그녀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구원하고자 했다는 말도, 여기서는 그 사실 관계를 바꿀 수 없다.'(p.10)

 

내가 죽였다는 고백이 너무 갑자기 튀어나와 놀람과 동시에, '왜 죽였을까? 도대체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궁금증이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한 동력이었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화자인 '나'는 전업 작가로 전향하면서 집안일을 도와줄 가사도우미가 필요하다. 마침 친구가 한 명의 여성을 추천하는데 그녀가 바로 '에메렌츠'이다. 친구는 추천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돈은 중요하지 않고 그녀가 우리를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나는 에메렌츠와의 첫 만남에서 역시 범상치 않음을 느낀다. 고용주인 내가 갑(甲)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이것저것 따져보며 갑의 위치에 있다. 마침내 그녀의 시험에 합격한 나는 그녀를 고용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에메렌츠는 보통 가정부와는 다르다. 급료는 본인이 일해본 후 결정하며, 근무시간도 들쑥날쑥해서 하루 종일 보이지 않다가 밤 늦게 나타나 새벽까지 청소를 하기도 하고 폭설이 내려 계속 눈을 쓸어야 할 때는 며칠씩 집에 나타나지 않다가 눈이 그치면 와서 밀린 일들을 한다. 하지만 결과는 늘 완벽하고 내가 요구하는 것 이상을 해낸다. 그녀는 '노동에서 기쁨을 느꼈고, 노동을 즐겼으며, 일이 없는 시간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다. 잠도 누워서 자지 않고 '연인들의 의자'라 불리는 작은 소파에서 선잠을 자는게 전부다.

한편 아픈 이웃에게 영양식을 갖다 주고  길을 잃고 헤매는 동물들의 주인을 찾아주며 눈이 오면 거의 모든 집 앞의 눈을 쓰는 등 동네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지역 사람들 모두 이런 그녀를 좋아하고 경찰도 그녀를 신뢰한다.

 

그러나 에메렌츠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한다. 근무 시간 외에 자신을 성가시게 하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들과도 일상적인 이야기 외에는 나누지 않는다. 무표정한 얼굴, 월급 외에 별도의 사례는 거절, 칭찬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엔 일만하는 그녀가 두려웠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그녀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등 혼란스럽다.

 

어느 날 남편의 수술로 심란한 나에게 에메렌츠가 따뜻한 와인을 건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세 살도 되기 전 돌아가신 아버지, 전쟁이 일어나자 입대한 새아버지도 전사, 너무나 사랑하던 쌍둥이 동생이 그녀가 보는 앞에서 번개에 맞아 검은 숯덩이로 변한 일,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우물에 몸을 던지는 등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끔찍한 일들을 겪은 에메렌츠.

'나'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이야기해준 그녀와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지만 다음날 다시 냉담한 태도의 그녀의 모습에 상처를 받는다.

 

이런 식으로 그녀와 '나'는 20여년이란 세월을 함께 하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겪는다. 에메렌츠가 자신의 특별한 손님을 '나'의 집에서 대접하려다 그 손님이 약속을 취소하자 엄청난 욕설과 분노로 절규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길거리에 버려진 귀가 부러진 강아지 조각상을 집에 들여놨다가 한바탕 난리도 나고, 친구 폴레트의 자살에 에메렌츠가 도움을 준 일 등을 겪으며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 그녀의 감춰진 삶을 조금씩 알게되고 그만큼 감정적으로 가까워진다. 그 가운데 그녀가 왜 침대에 누워 자지 못하는지, 그녀가 한 때 약혼도 했었지만 제빵사였던 그 약혼자는 과꽃혁명 때 몸이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에메렌츠 마음의 문은 조금씩 열리는 반면 실제 그녀가 사는 집 문은 그 누구에게도 -단 한 번의 경찰 수사만 빼고 - 열리지 않고 늘 굳게 닫혀 있다. 그 누구도 그녀의 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다 딱 한 번 '나'에게 그 문이 열린다. 왜 나에게는 자신의 집을 보여줬을까. 그녀의 금지된 세계를 본다는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크리스마스 전날 나는 에메렌츠가 눈을 쓸고 있는 것을 본다. 나는 그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TV를 줬고 그녀가 그 선물을 받아들여 너무나 기뻤다. 근데 그녀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와서 눈을 쓸고 있는 것이다. 나는 '마치 하늘이 우리 얼굴에 그 선물을 내던지기라도 한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쉬지 않고 일하는 그녀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나와 남편. 그러나 나는 그 장면을 애써 외면하며 크리스마스의 따뜻함과 달콤함 속으로 빠져든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길 청소에 온 힘을 쏟은 에메렌츠는 심한 독감에 걸린다. 그러나 이제 그만 쉬라는 나의 말에 그렇게 돕고 싶으면 당신 집이나 잘 건사하라고, 눈이 쏟아지는 동안 자신은 눈쓸기를 멈출 수 없다고 한다.

반면 때마침 나는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빛을 보게 된다. 사진촬영, 인터뷰, 거기다 에메렌츠가 없기에 늘어난 집안일을 하느라 매우 분주하다. 병이 깊어진 에메렌츠는 더이상 길에서 보이지 않는다. 집안에 틀어박혀 의사는 커녕 자신에겐 '휴식만이 필요할 뿐'이라며 그 누구의 방문도 원하지 않는다. 에메렌츠가 너무나 걱정된 나는 그녀를 돌보기 위해 여러가지 제안을 하지만 그녀는 한결같이 자기를 가만히 놔두라며 누구든지 들어오는 사람은 손도끼로 죽을 수 있다며 나를 공포에 떨게 한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점점 절정으로 향하고 두문불출하는 에메렌츠를 더는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에서, 그녀를 집에서 나오게 해 병원에 보내려는 '작전'이 계획된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한 번 훑어 보면서 에메렌츠가 '나'를 처음 만나 했던 이 말에 나의 눈이 오래 머물렀다.

 

"누구의 것이든 더러운 속옷은 빨지 않아요."(p.15)

 

서양 속담에 "Don't wash your dirty linen in public."이란 말이 있다. 직역하면 남들 앞에서 더러운 속옷을 빨지 말라는 뜻으로 여기서 'dirty linen'은 개인의 내밀한 곳, 밝히지 말아야 할 치부를 뜻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이 있다. 그것이 타인에게 다 드러났을 때 인간은 수치심을 느낀다.

에메렌츠는 남의 집안일을 하는 가정부이지만 늘 '격식을 갖춘 복장'을 하고 있다.

늘 머릿수건을 쓰고 '검은 소매가 긴 고운 천으로 만든 옷'에 '끈 달린 에나멜 가죽신'을 신는다. 식탁에서 손님들을 접대할 때도 그 모습은 매우 품격있다.

반 인텔리주의자로서 교육받길 거부하고 평생을 노동을 하며 살아왔지만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존엄을 목숨처럼 지켜왔다. 처음에는 이 말이 자존심이 강한 가사도우미의 단순한 말이라 생각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이 말이 얼마나 그녀의 가치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게 되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는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치부가 있고 그것은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그녀의 가치관을 말이다.

 

에메렌츠의 삶은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평생을 육체노동을 하며 정직하게 살았고 주변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줌에 있어서도 그들의 가장 소중한 부분은 지켜주고자 했던 그녀는 내가 소설에서 만난 인물 중 가장 품격있는 인물이다.

 

에메렌츠가 평생을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그녀의 문이 그토록 오랫동안 닫혀져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녀를 죽게 놔둘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책 속의 화자처럼 책을 읽는 '나'도 참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당신은 사랑할 줄 모르지요. 나는, 그런데도 어쩌면 당신이 그것을 알 것이라 생각했어요."(p.339)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소통하며 믿는다는건 무엇인지,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결코 쉽게 답할 수 없는 그 어떤 메시지를 이 책은 에메렌츠라는 강렬한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서늘하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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