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평점 :
<흑뢰성>은 166회 나오키 상 수상과 함께 최초로 일본 미스터리 4개 부문을 석권, 무려 9관왕을 달성한 요네자와 호노부(1978~)의 장편 역사 추리 소설이다. 묵직한 느낌의 책을 좋아하는 나는 제목과 표지, 무엇보다 9관왕이라는 타이틀에 처음부터 끌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재미있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들려와 읽어볼까 하던 차에 알라딘 이웃인 레삭매냐님의 리뷰가 이 책을 바로 집어 들게 만들었다.
소설은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 시대 통일을 눈앞에 둔 1578년 겨울을 배경으로 한다. 오다 노부나가의 장수로 전쟁에서 여러 무공을 세운 아라키 무라시게는 반역을 일으켜 아리오카성에서 농성을 벌인다. 이런 무라시게에게 노부나가의 군사(軍師)인 구로다 간베에가 투항을 권유하러 찾아오지만 무라시게는 간베에를 흑뢰성(黑牢城 지하감옥)에 가둔다. 여기까지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간베에가 아리오카성에 갇혀 있던 대략 1년의 시간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작가는 그 1년의 시간을 4개의 미스터리로 채워 넣는다.
<흑뢰성>은 영미권에서 후던잇(whodunit)으로 불리는 본격 추리물이다.
인(因)과 과(果) 사이에 있는 네 장의 이야기마다 각기 다른 트릭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노부나가의 군대가 점점 압박해오는 상황에서 도와주기로 한 모리 가문의 군은 오지 않고 기괴한 사건들이 일어나니 당연히 성 안은 혼란과 의심으로 술렁이고 군사들의 기강도 흐트러져 성주인 무라시게는 반드시 사건을 풀어야 하는 상황.
무라시게는 고민 끝에 지략이 뛰어난 간베에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음침한 지하 감옥에서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돈다. 간베에는 매 사건마다 의미심장한 힌트를 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라시게는 사건을 다시 점검하면서 추리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독자도 같이 추리할 수 있어 재미있다. 너무나 오랜만에 정교한 트릭의 본격 추리물을 읽다보니 나 또한 오랜만에 머리를 썼는데, 아! 4장에서 내가 범인을 맞췄다는 거 아닌가!!! 사실 1장부터 막연한 심증으로 '그 자'를 쭉~ 의심해 왔는데 논리적으로 설명은 못했지만 역시나 나의 의심이 맞았던 것이다.
<흑뢰성>은 초반에 살짝 진입 장벽이 있는 소설이다. 왜냐하면 조선 시대도 아니고 일본의 전국 시대가 배경인 왜색(倭色)이 매우 짙은 작품으로 그 시대의 계급 체계와 지명(현 지명과 다름), 문화, 가치관을 잘 알지 못하면 처음엔 조금 이해하기가 힘들다. 무사들의 이름도 엄청 많이 나와 헷갈리고 무엇보다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가치관과 신념이 지배하는 시대라 글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 이해하기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러나 초반의 이 장벽만 넘으면 나도 모르게 아기자기한 정교한 사건에 빠져들게 된다. 전국 시대라는 큰 스케일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품 같은 사건들이 이 소설이 가진 또 다른 매력이다.
가끔 머리를 쓰기 위해서 본격 추리물을 읽어줘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