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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방 ㅣ Mr. Know 세계문학 2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전망 좋은 방>은 E. M. Forster (1879~1970)가 1908년 발표, 작가가 자신의 가장 유쾌한 작품이라고 평한 소설이다. 주인공 루시가 두 남자, 조지와 세실을 만나며 당시 영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관습과 자기 내면의 열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결국에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유쾌한 사랑 이야기로 한 여성의 성장 소설로 볼 수도 있다.
더 이상 중세가 아닌 근대가 추구하는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두 남녀의 갈등과 사랑이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영국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소설의 제목인 '전망 좋은 방'은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의 전경이 보이는 방으로 루시가 사촌 언니 샬럿과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을 갔을 때 간절히 원했던 방을 말한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니 그녀들에게 배정된 방은 아르노 강이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 아닌 전망이 전혀 없는 방이었던 것. 이때 같은 펜션에 묵고 있던 에머슨 부자가 선뜻 자신들의 '전망 좋은 방'과 바꾸자고 제안을 하고 이 무례한 제안을 반 강제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지금 상식으로는 이 제안이 왜 무례한지 모르겠으나 당시 영국에서는 남의 대화에 끼어들어 숙녀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천박한 행동이었던 듯하다. 이런 영국의 답답하면서도 융통성 없는 관습, 거기서 생기는 위선은 책을 읽으면서 계속 나오기 때문에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재미가 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여기서 말하는 '전망'이 그저 단순한 전망이 아닌 당시 영국 사회에 짙게 드리워져 있던 인습과 규율에 반대되는 정신, 즉 인간을 세상의 중심에 놓은 르네상스 정신을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작가가 이 소설의 첫 장소로 피렌체를 선택한 이유는 피렌체야 말로 인간의 자유와 본성을 중시하는 르네상스 문명이 태어난 도시이기 때문이다.
사랑 이야기가 중심에 있지만 당시 영국 사회 계층 간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도 담고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뒤에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는 포스터의 문장이 상당히 냉정하면서도 유머러스하다고 하는데, 나는 읽으면서 크게 유머를 느끼지 못해서 '책이 너무 구판이라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 그런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1985년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 영화는 웃겼는데, 루시의 약혼자로 나오는 세실 역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가 재밌었고, 세 남자가 옷을 다 벗고 호수에서 목욕하다가 산책하던 루시와 세실, 루시 어머니에게 들키는 장면에서는 가장 크게 웃었다. 근데 세 남자의 전라(全裸)가 뒷모습이 아닌 앞모습 그대로 다 드러나 정말 놀랐다.
포스터의 책은 처음 읽었는데, 사랑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지만 당시 영국의 인습에 얽매인 시대상과 가치관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펜션 베르톨리니 '전망 좋은 방'에서 피렌체의 아름다운 전경을 바라보는 루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