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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ㅣ 펭귄클래식 123
프로스페르 메리메 지음, 송진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팜 파탈의 대명사 카르멘은 비제(G. Bizet 1838~1875)의 오페라로 유명하다. 오페라 《카르멘》중 카르멘의 아리아 <하바네라>를 유투브에서 보다가 원작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érimée 1803~1870)는 프랑스 파리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지만 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여러 언어에 능통하여 푸시킨의 작품을 번역하고 투르게네프와 교우하는 등 프랑스에 러시아 문학을 알리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그가 가장 두드러지게 활동했던 분야는 고고학으로 26년 동안 역사 기념물 총 감독관으로 재직하면서 고고학 답사를 위하여 이탈리아, 스페인, 코르시카 등을 여행했는데, 이 때의 경험이 그의 대표작인 <카르멘>과 <콜롱바>로 결실을 맺었다.
이 책에는 표제작 <카르멘>과 <콜롱바> 두 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1845년 발표된 <카르멘>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을 배경으로 집시 여인 카르멘과 군인 돈 호세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보수적인 바스크 출신의 돈 호세는 성실한 군인으로 세비야의 담배 공장에서 경비를 서다가 공장에서 일하는 아름다운 집시 여인 카르멘을 알게 되고 그녀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사로잡히게 된다. 돈 호세는 그녀가 악녀임을 알지만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은 그를 점점 파멸로 몰고 간다. 카르멘이라는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돈 호세와 목숨보다 자유를 중요시하는 카르멘의 이야기가 메리메의 절제된 문장을 통해 더욱 강렬하게 그려진다.
카르멘이 어떤 여자인지 대사 몇 개를 적어본다.
"특히 명령은 질색이야. 내가 원하는 건 자유로운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야. 나를 막다른 길로 몰지 마."(p.70)
"우리는 양배추나 심자고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 팔자는 이방인들의 돈으로 사는 거야."(p.71)
"조심해. 누군가 나한테 어떤 걸 금지하면 나는 그걸 바로 행동에 옮겨."(p.72)
"우리 사이는 이제 끝났어. 당신은 남편으로서 나를 죽일 권리가 있어. 하지만 카르멘은 언제나 자유로울 거야. 보헤미안으로 태어나서 보헤미안으로 죽을 거야." (p.77)
<콜롱바>는 메리메가 1840년 발표한 작품으로 나폴레옹의 고향 코르시카를 배경으로 한다. 카르멘이 자유를 포기할 수 없는 여인이라면 콜롱바는 복수심에 불타는 여인이다.
["제 상복을 벗기는 사람은 저쪽 여자들에게 상복을 입혀야 해요."(p.162)]
델라 레비아 가(家)의 딸 콜롱바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 바리니치 가에게 복수할 날만을 고대하는데, 오빠인 오르소 중위가 고향으로 돌아 오자 이제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며 오빠에게 방데타(vendetta 친족에 의한 복수)를 하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프랑스에서 지낸 오르소는 코르시카의 오랜 관습인 방데타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며 주저하고, 여동생의 비난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콜롱바는 이런 오빠를 복수에 끌어들이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데, '코르시카의 옛 관습을 대변하는'(p.124) 콜롱바의 활약이 흥미롭다.
두 소설 중 나는 <콜롱바>를 더 재미있게 읽었다. 처음으로 알게 된 코르시카 섬이 복수의 피로 얼룩진, 인간의 원시적인 본능을 품고 있는 땅이며, 그것을 온 몸으로 표출하는 콜롱바가 카르멘 못지 않게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