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에프 모던 클래식
애니 프루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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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은 위험하고도 무심하다. 이 꼼짝도 않는 거대한 대지 위에서는 , 제아무리 사방에서 불행한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진대도, 인간사의 비극이라는 건 한없이 보잘것없어 보일 뿐이다. (p.123)

<브로크백 마운틴>은 애니 프루 (Annie proulx 1935~)가 1999년 발표한 단편집으로 총 11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원제는 <Close Range: Wyoming Stories 1>으로 미국에서 열 번째로 큰 주이자 60만도 안되는 가장 적은 인구가 사는 와이오밍을 배경으로 한다. 인디언어로 '대초원'이라는 뜻의 와이오밍은 로키산맥과 중부의 대평원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옐로스톤 국립공원도 있어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지만 인간이 살기에는 그 자연의 힘이 만만치 않은 곳이다.


쪽빛의 산봉우리, 끝없이 펼쳐진 잔디밭 평원, 몰락한 도시들처럼 떨어져 굴러다니는 돌덩이들, 너울너울 타오르는 하늘, 광활하고 거친 이 땅의 자연은 절로 인간의 영혼에 전율을 일으킨다. 이는 마치, 느낄 수는 있지만 귀로 들을 수 없는 깊은 저음과도 같다. 내장에 박힌 날카로운 발톱같다. (p.123)


<브로크백 마운틴>이 담고 있는 11편의 이야기는 이런 와이오밍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연과 그 거친 자연 속에서 투쟁하며 살아가야 하는 특별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책을 펼치면 어느 '은퇴한 와이오밍 목장주'가 한 말이 제사(題詞)로 나온다


보통의 현실은 이곳에 해당되지 않는다. 

Reality never been of much use out here.


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와닿지 않았는데, 다 읽고 나면 내가 사는 '보통의 현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삶이 이곳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펼쳐짐을 알 수 있다. 

11편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죽 벗긴 소 The Half-Skinned Steer

작가 존 업다이크가 '금세기 최고이 단편'이라고 칭송한 작품으로 지긋지긋한 자신의 삶, 근본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했던 한 남자가 '황량하고 냉혹한 겨울빛 속에서' 마침내 깨닫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운명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그가 또 한 번 틀렸음을, 가죽 벗긴 그 수송아지의 붉은 눈은 여태껏 그를 계속 응시해 오고 있었음을. (p.37)


-진흙탕 인생 The Mud Below

'오헨리 단편소설상' 수상작으로 일단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이야기. 가족으로 인한 유년의 상처를 지니고 있는 로데오 선수 다이아몬드 펠츠. 로데오 선수로서의 고달픈 삶과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위험한 소를 타는 한 남자의 외롭고도 목적없는 삶을 그린 작품. 


삶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그 칼날보다는 느렸지만, 더하면 더했지 덜 날카롭지는 않은 것 같았다. (p.98)


-경력 Job History

와이오밍의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주인공 리랜드 리. 그는 평생을 가족을 부양하느라 13개의 직업-돼지치기, 정비공, 트럭 운전 등-을 전전하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 이런 리랜드의 삶을 시간 순으로 나열, 요약해서 보여주는 짧은 소설. 


아무도 뉴스에 귀 기울일 시간은 없다. (p.112)


-블러드 베이 The Blood Bay

1880년대 유난히도 추웠던 와이오밍의 겨울, 세 명의 카우보이가 얼어죽은 카우보이 한 명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체는 혹독한 추위에는 맞지 않은 고급 부츠를 신고 있었고 마침 부츠가 절실히 필요했던 한 명의 카우보이는 칼로 정강이를 잘라 얼어붙은 부츠를 챙긴다. 그 후 세 명의 카우보이는 추위를 피해 어느 노인의 오두막에 머물게 되고, 거기서 한 편의 블랙 코미디가 펼쳐진다. 블러드 베이는 노인이 키우는 성질 더러운 말의 이름!


-지옥에선 모두 한 잔의 물을 구할 뿐 People In Hell Just Want A Drink Of Water

와이오밍, 래러미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두 가정, 던마이어家와 틴슬리家의 이야기. 

그러나 한 가정은 살아남고 한 가정은 무너진다. 이런 두 종류의 가정이 미국의 그 광활한 서부에 얼마나 많았을까...강한 남성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것을 결여한 한 인간에게 가해지는 잔인한 폭력을 작가는 와이오밍의 무자비한 자연과 함께 놀랍고도 강렬하게 보여준다. 냉혹하지만 너무나 잘 쓴 소설.


사람이 만든 것은 뭐든 유한의 시간 동안만 머물렀다 사라질 뿐이다. 중요한 건 오로지 대지와 하늘이다. 매일 끝없이 되풀이되는 아침의 여명이다. 그렇게 당신은 그 이상 신이 우리에게 베풀어야 할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p.124)


-세상 끝자락의 레드월 목장 The Bunchgrass Edge Of The World

와이오밍, 레드월 평원에 있는 한 목장 투헤이(Touhey)家의 이야기. 와이오밍에서 처음 목장을 시작한 레드 노인, 그의 아들 알라딘과 며느리 와우네타, 알라딘의 세 자녀, 오탈린, 셴, 타일러가 이 가족의 구성원이다. 셴과 타일러는 라스 베가스로 떠나고 '400리터들이 프로판 가스통에 육박하는 체격'(p.159)의 눈에 띄는 오탈린은 혼자 남아 목장 일을 하며 외로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모든 것이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어 무력감에 빠진 오탈린은 도청기로 다른 사람들의 전화 내용을 엿들으며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환청이 들려 주변을 살펴보니 낡아서 버려진 트랙터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게 아닌가! 그리고 그날부터 둘은 친한 친구가 되어 매일 대화를 나누고 어느 순간 그녀의 마음 속에 뭔가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삶이라는 희망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버티는 힘이다. 바로 그거다. 오래 버티고 서 있다 보면 언젠가 앉을 때가 오는 법이다. (p.194)


-어느 박차 한 쌍 Pair A Spurs

광우병과 기상 이변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와이오밍의 시그널에 실력있는 박차 장인이 들어오고 그가 만든 박차는 어느 목장주에게 삼백 달러에 팔린다. 그리고 이 박차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피할 수 없는 비극적 이야기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와이오밍의 대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음탕한 욕망 속에서 펼쳐진다. 


"이 박차에는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어. 반드시 누군가가 '접촉'해 올 거다."(p.210)


-외딴 해변 A Lonely Coast

'보통 사람들이라면 대게 스스로 사그라지게 둘 만한 것들도 통제 불가능한 대재앙으로 만들어 버리는'(p.256) 사람들의 막장 비극.

오랜 시간 외부와 고립된 채로 가축을 돌보며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살아서 그런 것인가?

'와이오밍 사람들은 워낙 신체 접촉을 좋아하고 다혈질에 성미가 급하며 육체적 욕구가 강하다'(p.264)고 화자는 말한다. 그래서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보다 '어두운 충동'에 쉽게 굴복하는 것일까?


이곳에서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곳이 얼마나 외로운 곳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p.265)


-와이오밍의 주지사들 The Governors Of Wyoming 

목장일에 관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가족과 거리감을 느끼던 샤이 햄프는 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나 '치명적인 폭설'로 인해 가족 모두를 잃은 그는 아버지의 예언대로 목장을 지키기 위해 다시 와이오밍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는 소사육을 반대하는 미스터리한 환경운동가를 좇아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려고 하지만 이는 그저 자신의 '마음속 회계장부에 쌓인 악을 상쇄하는 역할'(p.330)일 뿐이고, 자신도 통제하기 힘든 '흥분과 역겨움'이 교차하는 욕망앞에서 목적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샤이에겐 이 모든 일이 쉽지 않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외부의 힘에 의해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한 남자의 비극적인 이야기. 


이곳은 외부 착취자들과 공화당 지지자들인 목장주들, 그밖에 자연 풍경으로 뒤죽박죽된 25만 평방킬로미터의 개판이었다.(p.289)


-다음 주유소까지 앞으로 90km  55Miles To The Gas Pump

목장지기 남편이 죽은 후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접근이 금지되었던 다락방을 '허기진 욕망'(p.344)을 주체할 수 없는 아내가 뜯어낸다. 아내가 발견한 것은 그동안 신문에 나왔던 실종된 여성의 시체들...

단 두 페이지의 아주 짧은 이야기, 그러나 소름돋는 마지막 문장!


너무 외딴 곳에 떨어져 살면, 각자 알아서 재밋거리를 찾아야 하는 법이다. (p.344)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

2005년 이안 감독이 영화로 만든 동명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원작소설이다. 설명이 필요없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 당시 영화를 봤었는데 그때만 해도 동성애에 대해 너무 무지했었기 때문에 영화가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놀란 마음이 와이오밍의 아름다운 자연과 이제는 볼 수 없는 히스 레저의 명연기와 지금 아주 많이 좋아하는 배우인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를 감상할 마음의 여유를 앗아가지 않았나 싶다. 

북플의 어느 분은 이 작품을 읽고 펑펑 울었다고 해서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었는데 다행히(?) 울지는 않았지만, 셔츠가 포개져 있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대자연은 남자끼리 서로 성적으로 끌리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나오는 말인데 이 책을 읽으며 이 말이 떠올랐다. 잭과 에니스가 만약 도시의 공장에서 만났다면 이런 끌림이 있었을까? 서로를 향해 유일하게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 브로크백 마운틴은 잭과 에니스에게 치유와 쾌락의 장소이자 안식처였을 것이다. 

이제야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나에게 다가온 브로크백 마운틴. 


11편 이야기 모두 와이오밍이라는 '특이하고도 특별한 장소'에서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 애니 프루는 무자비한 자연이 지배하는 와이오밍에서 '자기 몸은 자기가 알아서 돌보는 것'(p.197)이라는 성문화 되지 않은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강렬하면서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만약 이 책의 저자를 몰랐다면 당연히 남자가 쓴 소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자가 남성의 세계를 이렇게 잘 안다니 놀라웠다. 남성 작가 중에 여성의 세계를 이 정도로 묘사할 수 있는 작가는 누가 있을까? 아마도 프루스트? (안 읽어봐서 모르지만 버지니아 울프가 이 분이 여성성이 강하다고 한 말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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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4-12 19: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브로크백 마운틴이 영화로 만들어져 저는 여지껏 이 소설이 장편소설인줄 알았어요.
여성이 쓴 작품이라 더 궁금해요^^

coolcat329 2022-04-12 20:51   좋아요 3 | URL
작가가 코네티컷 출신인데 어떻게 미국에서 가장 사람이 적게 사는 주로 가서 거기 이야기를 썼는지 참 놀랍더라구요. 씩씩하고 강한 여성인거 같아요. 페넬로페님도 파워 오브 도그 좋아하셨으니 이 소설도 추천합니다 ~

청아 2022-04-12 2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 읽다가 저도 프루스트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프루스트라고 하셔서 반가웠어요🖐 ㅎㅎㅎ 미국하면 도시보다는 이런 곳을 여행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쿨캣님 리뷰 읽고보니 만만치 않은 곳이네요. 부츠 이야기도 그렇고 다락방의 시체들도 충격입니다. 저도 빠른 시일 내 읽어보고 싶네요^^*

coolcat329 2022-04-12 20:56   좋아요 2 | URL
앗 저도 반가워요~~ㅋ
저는 와이오밍은 못가봤지만 그 아래 접해있는 콜로라도는 가봤어요. 비도 거의 안오고 건조해서 코피터지고 바위, 굴러다니는 무슨 덤불들 등 젊은 사람이 살 곳은 못되더라구요.단 하나 좋은건 어딜봐도 엽서 그림같은 배경의 로키산맥이에요😁
그래도 그곳은 나름 도시였는데도 무료한데 와이오밍은 진짜 너무너무 고립감느낄거 같아요.
미미님도 좋아하실거 같아요.

mini74 2022-04-12 2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평이 다 좋네요 ㅎㅎ 저도 막연히 장편일거라 생각했는데 ㅠㅠ 넘 궁금합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

coolcat329 2022-04-12 20:58   좋아요 2 | URL
파워 오브 도그 좋아하신 미니님도 좋아하실거 같아요.
와이오밍 여행간 기분이 들 정도로 아주 잘 쓴 소설이에요.

그레이스 2022-04-12 21: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흐르는 강물처럼의 배경도 아마 이 부근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뭏든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그린 작품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좋았어요.

coolcat329 2022-04-12 21:57   좋아요 3 | URL
아 흐르는 강물처럼도 이 곳이군요.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이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모습은 늘 슬픈 현실입니다. 좋은 밤 되세요~

잠자냥 2022-04-12 2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든 단편이 정말 다 훌륭하죠. 시간이 지날수록 레드월 목장의 오탈린의 그 절절한 외로움이 기억에 남습니다.

coolcat329 2022-04-13 07:04   좋아요 1 | URL
네~오탈린! 이 책에 나오는 몇 안되는 여자 인물 중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외로움은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과는 차원이 다른 ㅠㅠ
저도 모든 이야기가 다 좋았습니다~

2022-04-12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olcat329 2022-04-13 07:08   좋아요 1 | URL
아 브로크백이 워낙 유명하니 장편으로 생각하실 법 해요. 시핑 뉴스 저 읽다가 중단했는데 당시 저에게 문제가 있던거 같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