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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눈꽃 에디션)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작별하지 않는다>는 <채식주의자>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한 강 작가의 책으로 작년 2021년에 출간되었다. 5월 광주를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에 이어 또 하나의 가슴 아픈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지 74년째 되는 날이다. 오늘 윤석열 당선인이 보수 정당 출신 당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제주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부디 '무고한 희생자의 넋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겠다'고 한 자신의 말을 꼭 지켜,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보상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소설가 경하의 꿈 속 장면에서 시작한다. 산으로 이어져 있는 벌판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있고 그곳에 경하가 서 있다.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p.9) 생각하며 나무들과 봉분들 사이를 걷고 있는데, 어느 순간 발등까지 물이 차오른다. 경하는 물에 잠기는 무덤들을 바라보며 뼈들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꿈에서 깬다.
한강 작가는 첫 두 페이지에 걸쳐 있는 이 꿈 이야기를 2014년 6월에 썼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힌다. 소설 속에서 소설가 경하는 이 꿈을 2014년 어떤 도시의 학살을 다룬 소설을 발표하고 꿨다고 하는데, 그 시기는 한강 작가가 2014년 5월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시기와 거의 일치, 아마도 작가가 실제로 꾼 꿈이 아닌가 싶었는데 실제로 작가가 이런 꿈을 꿨다고 한다. 일단 꿈 이야기를 써놓고 2018년에 가서야 그 다음을 이어 쓰기 시작해 2021년 발표했으니 세상에 나오기까지 꽤 오래 걸린 작품이다.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던 12월의 어느 날 경하는 인선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는다. 제주도에 혼자 사는 인선이 목공일을 하다가 손가락 두 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해 서울의 병원에서 봉합 수술을 받은 것이다. 병원으로 와 달라는 인선의 부탁에 경하는 급히 병원으로 찾아가는데 인선은 뜻밖의 부탁을 한다. 제주 집에 홀로 남겨진 앵무새를 돌봐 달라는 것.
경하는 당장 제주집으로 가달라는 인선의 부탁이 당황스러웠지만, 그 부탁이 너무나 간절하고 완강해 바로 제주로 향한다. 그러나 제주는 대설주의보와 강풍경보가 발효된 상태로 경하는 우여곡절 끝에 폭설을 뚫고 인선의 집에 도착한다. 그리고 경하는 폭설로 고립된 인선의 집에서 70여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그에 얽힌 인선의 비극적인 가족사와 만나게 된다.
19살에 온 가족을 다 잃고 붙잡혀 15년 형을 살고 나와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간 인선의 아버지, 역시 학살로 부모와 동생을 잃고 생사불명의 오빠를 찾는 일에 남은 생을 바친 어머니 정심의 삶이 내리는 눈처럼 경하의 마음에 쌓여 서서히 스며든다.
작가는 이 소설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p.329 작가의 말)고 말한다. 고통으로 가득한 이 소설이 '지극한 사랑'으로 연결되는 건 왜일까? 경하에서 인선을 거쳐 인선의 어머니 정심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서로에게 가닿고 싶은 마음, 즉 '지극한 사랑'의 마음이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가닿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끊임없이 내리는 눈을 배경으로 초현실적으로 묘사된다. 그것을 묘사하는 작가의 문장은 한없이 시적이고 몽환적이다.
뻐근한 사랑이 살갗을 타고 스며들었던 걸 기억해. 골수에 사무치고 심장이 오그라드는……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 (p.311)
한국 소설을 읽을 때는 편한 마음이 되는데, 이 소설은 쉽게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다. 시적인 문장과 책 전체에 걸쳐 계속 되풀이되는 눈에 대한 묘사, 특히 제주 방언을 그대로 실은 점 등이 이 책을 천천히 읽게 만들었다. 학살 장면을 증언하는 제주 방언을 읽을 때는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읽느라 더 속도가 느려졌는데, 빨리 읽어 넘길 내용이 아닌지라 오히려 작가가 이 점을 노린게 아닌가 싶었다.
조금은 지루하고 난해한, 많이 무거웠던 소설. 그러나 작별할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
4.3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다시 한번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유가족 보상을 위해 다음 정부가 오늘 추념식에서 한 약속을 지켜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