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윌리엄 트레버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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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정이 가는 현대문학 단편선 시리즈. 

<대프니 듀 모리에>,<플래너리 오코너>,<그레이엄 그린>에 이어 네 번째로 읽은 책은 <윌리엄 트레버>이다. 

2년 전 구입한 책으로 반 정도 읽다가 내려놓은 책을 이번에 마음 먹고 하루에 한 편씩 읽었다. 총 23편을 담고 있는데, 어쩌면 하나같이 다 그렇게 쓸쓸하고 애잔한지, 마음에 와닿지 않은 작품이 단 하나도 없었다. 23개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다 손에 잡힐 듯 느껴지고,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 후회, 욕망, 두려움, 슬픔 등이 나에게도 전달되어 그 아픈 마음들을 어루만져 주고 싶었다.


윌리엄 트레버(William Trevor 1928~2016)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20대 중반까지 살다가 재직 중이던 학교가 파산하자 1954년 영국으로 이민을 간다. 카톨릭교도가 90%나 되는 아일랜드에서 개신교도로, 영국에서는 아일랜드인으로 살면서 늘 차별받는 이방인으로 살아야 한 그이기에 그의 작품에는 한결같이 소외당하고 외로운 인물들이 나온다.  


첫 이야기 <욜의 추억>에서는 부모의 사고로 불운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지닌 남자가, <탁자>에서는 돈과 일에 매여 살며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 속에서 자위하며 공허한 삶을 사는 가구 중개인이, <펜트하우스>에서는 지나친 양심과 교양에 사로잡혀 고스란히 덤터기를 쓰는 한 순진한 노처녀가, <탄생을 지켜보다>에서는 우연히 어떤 부부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노부인이,  <호텔 게으른 달>에서는 하이에나 같은 젊은 부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노부부와 늙은 하인이, <학교에서의 즐거운 하루>에서는 부모의 무관심과 짓궂은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그 어디에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데가 없는 외로운 사춘기 소녀가, <마흔 일곱 번째 토요일>에서는 50대 능구렁이 같은 남자의 거짓 사랑에 속아 젊음을 허비하고 있는 한 20대 여인이, <로맨스 무도장>에서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는 안타까운 여인이, <오, 뽀얀 뚱보 여인이여>에서는 자기기만에 빠져 수동적 삶을 살다 주변인들로부터 무시당하는 여인이, <이스파한에서>에는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외로운 두 남녀가, <페기 미한의 죽음>에서는 어린 시절에 겪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평생을 죄책감을 갖고 독신으로 사는 남자가, <복잡한 성격>에서는 자신을 누군가가 이해해주길 바라는 인간미가 없다는 컴플렉스를 가진 남자가, <오후의 무도>에서는 오랜 친구의 죽음으로 혼자 남아 공허함 속에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한 중년 여인이, <또 한 번의 크리스마스>에서는 국가간의 분쟁으로 수십년간 이어져온 집주인과의 우정에 금이 간 부부가, <결손 가정>에서는 늙어서 남들에게 피해주고 싶지 않아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피해를 입는 가엾은 노인이, <토리지>에서는 통쾌한 복수극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외로워 보이는 토리지가, <예루살렘의 죽음>에서는 평생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외롭게 살아가는 남자가, <그 시절의 연인들>에서는 냉혹한 현실과 로맨틱한 사랑 사이에서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된 쓸쓸한 두 연인이, <멀비힐의 기념물>에서는 존재감 없는 한 남자가 남긴 어떤 물건으로 인해 와르르 망신살 뻗치는 돈 많고 잘난척 하는 인간들이, <육체적 비밀>에서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의기투합하여 결혼한 외로운 중년 남녀가, <또 다른 두 건달>에서는 자신의 도덕적 나태함을 후회하는 한 청년이, <산피에트로의 안개나무>에서는 사람이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의미를 주는 사람들과 장소를 추억하며 그 소중함을 깨닫는 남자가, <삼인조>에서는 돈 때문에 모욕과 경멸을 참고 살아야만 했던 젊은 부부가 나온다.


이렇게 23편의 이야기를 다 나열한 이유는 정말 모든 작품이 다 나나 내 주변 사람들, 아니면 어딘가 반드시 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말대로 '칼같이 예리하지만 동시에 불가사의한 부드러움을 지닌 소설적 시선'을 모든 소설에서 느낄 수 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암울하고 슬픔을 동반하지만 트레버는 거리를 두고 묘사할 뿐 감상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을 향한 그의 눈빛엔 그 어떤 냉소도 조롱도 없다. 무심한듯 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그의 사진 속 모습처럼 소설 속에서도 느껴진다.


<축복받은 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줌파 라히리는 "윌리엄 트레버 단편집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작품에 견줄 만한 이야기를 단 한 편이라도 쓸 수 있다면 행복하게 죽겠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라고 말했다. 


노벨 문학상만 빼고 수많은 상을 받은 아일랜드 작가 윌리엄 트레버, 이 가을에 정말 잘 어울리는 훌륭한 단편집이다.


이 소설에서 베스트 5를 뽑아본다. (정말 어려운 선택...)


1.로맨스 무도장 

2.결손 가정

3.산피에트로의 안개나무

4.그 시절의 연인들

5.이스파한에서

(보너스 재미보장 2편 - 토리지, 멀비힐의 기념물)


<그 시절의 연인들>에서 노먼과 마리가 사랑에 빠졌던 1960년대, 영국의 술집에서 들리던 비틀즈의 'Eleanor Rigby'...가사가 트레버의 소설집과 어쩌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Ah, look at the all the lonely people

아, 저 외로운 사람들을 보세요


All the lonely people, where do they all come from?

저 외로운 사람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요?


All the lonely people, where do they all belong?

저 외로운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속해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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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1-18 17: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이 단편집 넘 재미있게 읽었어요 *^^* 전 로맨스무도장이 참 좋았어요. 쿨캣님 리뷰 읽으니 다시 감동이 ㅎㅎ 넘 좋습니다 *^^*👍

coolcat329 2021-11-18 17:30   좋아요 3 | URL
앗! 미니님도 로맨스 무도장이시군요! 저는 2년만에 다시 읽어도 역시 이 작품이 계속 마음에서 떠나질 않더라구요.

새파랑 2021-11-18 18: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싶어요~!! 장바구니에 담아놨는데 아직 못샀는데 쿨캣님 리뷰 보니 필수각이네요 ^^ 노벨상 빼고 다 받은 작가네요~!

coolcat329 2021-11-18 21:47   좋아요 3 | URL
네~단편소설의 정석같아요~새파랑님 감상평도 기대하겠습니다🙂

잠자냥 2021-11-18 2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가을에 읽어서 더 좋은 윌리엄 트레버! ㅎㅎ

coolcat329 2021-11-18 22:20   좋아요 2 | URL
🍂 네~100프로 공감합니다~

페넬로페 2021-11-18 23: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현대 문학 단편집은 표지도 넘 마음에 들어요. 그런 이유로 읽지도 않고 책만 사놓고 있어요.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도 좋다고 했는데 다시 찜합니다^^
근데 내년 가을에 읽어야하나요?
잠자냥님 권유로 올 가을엔 소세키를 읽었거든요^^

coolcat329 2021-11-19 09:38   좋아요 2 | URL
네~표지도 참 구매욕을 자극합니다😍
제 생각엔 겨울에 읽어도 좋을거 같습니다.☺
저야말로 소세키를 내년 가을에 읽어볼까싶습니다.

페크pek0501 2021-11-25 15: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단편집을 장바구니에 담겠습니다. 올해 마지막 구매에 고려해 보려고요. ^^

coolcat329 2021-11-29 07:45   좋아요 1 | URL
네~^^ 단편의 정석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