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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평점 :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의 자전적 소설이자 "보부아르가 쓴 최고의 작품"이라고 사르트르가 극찬한 작품으로 1964년 발표되었다.
나는 보부아르가 여성 관련 철학서만 쓴 줄 알았는데, 이번에 을유문화사에서 아름다운 사진을 표지로 한 그녀의 소설이 나와서 문득 궁금해졌다.
사진은 1915년 촬영된 것으로 왼쪽부터 시몬, 어머니 프랑수아즈, 여동생 엘렌이다. 소피 마르소를 연상시키는 살짝 쳐진 눈매, 큰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 우아하게 컬을 넣은 긴 갈색 머리, 살짝 벌린 입의 8살 시몬이 너무나 예뻐서 사진을 한참이나 들여다 봤다. 어머니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어 이목구비는 잘 보이지 않으나 시몬이 어머니의 눈매와 머리카락을 닮았음을 알 수 있다. 장밋빛 뺨에 통통한 얼굴, 금발의 여동생 또한 사랑스러워 소설 속 묘사된 정많고 다정한 동생의 모습과 겹쳐진다.
어느 날 엄마가 욕실에서 넘어져 대퇴부 탈구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나와 여동생은 번갈아 가며 엄마를 돌보고 엄마는 수술을 받지만 진짜 병은 대퇴부 문제가 아닌 장 속에 자리잡고 있는 암, 그것도 최악의 육종암으로 밝혀진다.
엄마에게는 복막염 때문에 수술한거라고 말하지만,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며 통제되지 않는 절망감을 느낀다. 나는 서서히 죽어가는 엄마를 바라보며 그녀의 지나간 삶을 되돌아 본다. 나에게 엄마는 가부장제에 갇힌 전형적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충족되지 못한 갈망을 자식들에게서 보상받으려한 '소유욕과 지배욕'이 강한 엄마였다. 그로 인해 나는 엄마와 많은 갈등을 겪었고 관계가 악화되어 거리를 두고 지내왔는데, 그런 엄마가 지금 산송장이 되어서 시몬 앞에 누워있는 것이다.
엄마와의 이 뜻하지 않은 대면에서 나는 엄마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을 서서히 재정립하는 시간을 갖는다. 엄마의 육체적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며 가부장적 사회에 억눌린 열등한 여인이 아닌, 고통에 신음하고 살기 위해 애쓰고 죽기 싫어하는 '동물적 본능'을 가진 한 인간으로 엄마를 바라보게 된다. 나는 무심하게 던지는 엄마의 말 속에서 그동안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진짜 감정을 관례적인 행동 속에서 감추고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놀라기도 하고 때로는 감탄하면서 새로운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엄마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엄마가 참고 견뎌야 했던 경험을 이해하고자 한다.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복수심이 너무나 컸고, 치료해야 할 상처가 너무나 깊었던 까닭이다. 무언가를 할 때면 엄마는 늘 스스로를 포기해야만 했다. (...) 하물며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길 거부해 온 엄마가 어찌 나를 이해해 보려는 마음을 먹을 수 있겠는가? (...)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릴 때면 엄마는 무척 당황하곤 했는데, 이는 이미 주어진 틀 안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도록 교육받은 탓이었다. (p.96)
나는 죽음을 목전에 둔 이 환자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오랫동안 속에 담아 둔 후회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청소년 시절부터 대화를 나누지 않게 된 우리는 서로 너무나 다르고, 또 한편으로는 서로 너무나 닮은 탓에 끊어진 대화를 다시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엄마와 대화를 다시 나누게 된 것이다. 엄마가 몇 가지 단순한 말과 행동 속에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낼 수 있게 되면서부터, 완전히 식어 버렸다고 생각했던 엄마를 향한 내 오랜 애정이 되살아났다. (p.108,109)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희생하면서 살도록 교육받고 자란 엄마, 그 엄마의 지난 삶을 회상하며 이해하고 같이 느끼는 과정을 통해 나와 엄마를 가로막고 있던 벽은 허물어진다.
엄마 역시 '나처럼 삶을 사랑했고, 그래서 나와 마찬가지로 죽음에 대해 반항심'을 느끼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엄마가 나에게 보여준 진실된 모습은 나로 하여금 '엄마가 품고 있던 나를 향한 사랑의 따스함'(p.150)을 느끼게 한다.
이 소설은 죽어가는 이와 그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화해, 이해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죽음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철학적인 성찰도 보여준다.
육체적 고통은 온전히 환자만의 것이다. 내가 아무리 환자의 손을 꼭 잡아준다해도 그 고통을 나는 느낄 수 없다. 그러나 곁에서 그 차가운 손을 꼭 잡아줌으로써 환자 홀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죽음의 고통과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 사이의 연대이자 인간이 인간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순수하면서도 소중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 나는 죽음과 맞서 싸우던 엄마와 '세포 구석구석까지 연결'되어 있어, '엄마의 패배로 나 역시 쓰러지고 말았다'(p.151)고 말한다. 나는 육체적 고통과 두려움, 처절한 고독 속에서 신음하는 엄마와 함께하는 순간 '죽음의 신'을 본다. 엄마와 함께 죽음을 경험한 것이다.
가장 외롭고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서로 이해하지 못했던 이들이 나누는 연대감을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독후감을 마친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칠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p.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