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번 써봅시다>가 제목이니 당연히 책을 한번 써 보라는 이야기겠거니 했지만,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쓰기보다 우선 읽으라는 일침으로 들린다. 물론 이 책은 작법책의 흔한 순서대로 소재 찾기, 장르별 글쓰기, 퇴고하기, 투고하기의 순서로 책이 탄생하는 절차 방법을 충실하게 기술하고 있어 글쓰기 가이드로서 부족함이 없다. 그럼에도 정말 내가 책을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쉽지 않을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작가는 '책 한번 써'보자는 꿈같은 얘기를 환상적으로 포장하기보다 우리가 책을 내기 힘든 진짜 이유를 냉정하게 분석한다.
우리나라에서 내 책 하나를 갖는 가장 빠른 방법은 아마도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열심히 구독자를 모아 유명해진 뒤 컨텐츠를 활자화하는 것일테다. 어떤 글을 어떤 방식으로 써내느냐는 다음 문제다. 이렇게 책을 내면 홍보도 저절로 된다. 읽어줄 최소한의 독자도 확보된다. 그러나 유튜브 인플루언서들이 낸 책으로만 가득 찬 베스트셀러 목록을 상상하면, 아무리 독서 문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무심하게 웃어 넘기기는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책들이 계속 세상에 나오고 심지어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꾸준히 오르는 이유는 우리 독서 공동체의 빈약함 때문이라고 이 책은 지적한다.
책도 상품이라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하면 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책이라고 뭐 다르겠는가. 부당하다고 부르짖을 일도 아니고 한심하다고 개탄할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책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책이 가진 대체불가능한 효능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활자를 독해하고, 텍스트의 의미를 해석하고, 그것을 사회 문화적 맥락에서 내면화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이 모든 것이 한 개인의 독자적인 사고과정 안에서 이루어진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유일한 매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할을 해 왔던 책이 단순한 영상의 활자화 혹은 SNS 포스트의 영구 소장용 매체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마땅히 개탄해야할 일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책'과 요즘 떠오르는 '활자화'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도 없다. 두 가지는 이미 장르가 다르고 수용 방식과 효과가 다른 별개의 매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책(혹은 책의 모양을 한 어떤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양질의 책을 감식할 수 있는 안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그 기능을 하는 우리의 독서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 독자들이 믿고 책을 고를 수 있는 판단 기준은 전무하며, 우리의 서평 문화도 빈약하다. 책 서평을 위한 공간에 책 표지의 세련됨과 종이질의 견고함을 칭찬하는 '상품리뷰'가 장악하는 웃지 못할 광경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읽을 만한 서평이 사라져가고 있는 이유마저 그것을 읽어줄 뷰어가 줄어들고 있는 탓이다. 서평이 인터넷상에서 인기콘텐츠가 되는 일은 아주 드물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책 쓰기에 대한 도전은 절망적이다. (유명인이 아닌 이상)못 쓴 책은 세상에 빛을 보기 어려울 것이며, 잘 쓴 책도 그 진가를 알아보는 독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대로라면 예비 작가의 가장 큰 걸림돌로 간주되는 우리나라의 공모 및 등단제도가 오히려 책을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예비 작가는 보수적인 제도의 벽 앞에서 한 번 좌절하고, 급작스럽게 떠오른 트렌디한 출판 문화에 또 한번 좌절하게 된다. 이 거대한 아이러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독서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해야 할 것이다. 책 하나 내겠다고 일단 유명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유명한 해외 서적들 중에서는 한 출판사 편집자의 뛰어난 감식안 덕분에 세상에 빛을 본 전 세계적 베스트셀러도 있고, 유명 스타의 북클럽에서 발굴되어 널리 읽힌 책도 심심치않게 보인다. 우리에게도 책의 효능에 대한 신념, 좋은 책을 가려내는 감식안, 그 감식안의 폭 넓은 공유가 가능한 독서 공동체가 마련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책을 많이 읽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런 세상이 오면 그 때는 진심으로 책 한번 써 보라고 권하는 일도 흔한 풍경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