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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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 제목처럼, 혹은 주인공 윌리 로먼(Willy Lowman)의 이름처럼 한 소시민의 몰락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희곡이다. 이 개인적 비극의 원인에 접근하기 위해 힘들게 미국 현대사 장면들을 뒤적일 필요가 없다. 미국 사회의 특수성과 한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 가져온 비극이라 하기에는 너무 낯익은 풍경들이 씬(scene)마다 펼쳐지는터라 시공을 초월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한 집안의 가장이자 퇴락한 세일즈맨 윌리의 생애 마지막 24시간 정도가 이 희곡이 묘사하는 시간의 층위다. 그러나 현재의 인식속에 과거의 기억들이 무작위로 끼어 들면서 극은 윌리 인생의 전체을 아우른다. 극 초반 무작위로 섞여 있던 과거와 현재가 그 의미를 획득하는 것은 극의 중후반을 지나서지만 윌리의 인식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처음부터 눈치챌 수 있다. 그는 꿈과 현실의 부조화를 회피하기 위해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힌 모습이다. 그러나 극이 진행되면서 그 영광스런 과거의 장면조차 그의 소망이 윤색해 놓은 허상임이 드러난다. 현실이 각박해짐에따라 과거의 일들이 그의 꿈과 결합하여 왜곡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또 그 왜곡된 과거는 현실에 완벽하게 영향을 주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상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비프가 자신의 초라한 과거를 직시하는 순간은 가장 비극적인 순간이면서 동시에 가장 통쾌한 순간이기도 하다. 마침내 자신을 둘러싼 왜곡된 신화가 벗겨지면서 온전히 그 자신으로서 살아갈 가능성을 마주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의 각성은 윌리의 현실도피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로 인해 부자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다면 비프가 현실을 외면하려는 아버지의 태도에 맞장구를 쳐주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어떤식으로든 윌리에게 닥친 비극은 결국은 일어났을 것이다. 왜냐하면 윌리의 비극은 윌리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차원의 비극이기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가 그들의 객관적인 자질을 왜곡시키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낯선 풍경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그 허황된 꿈으로 인한 왜곡이 온전히 개인의 탓이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의 중요한 부분이다. 윌리가 만들어낸 허상은 온전히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이상(理想) 이다. 그 이상은 세일즈맨이라는 윌리의 직업을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난다. 기계를 조립하고 곡식을 생산하는 일과 달리 세일즈맨은 자신의 이미지를 파는 직업이다. 다시 말해 실체가 없는 허상을 가지고 타인을 속이는 일이다. 평생을 왜곡된 이미지만 팔아왔던 세일즈맨 윌리는 시대에 밀려 더 이상 팔 것이 없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인데, 그는 팔지 못할 거짓 이미지를 끊임없이 만들어 냄으로써 현실을 부정하는 식으로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고자 한다. 그렇게 구축해왔던 허상의 세계마저 무너져내리자 더 이상 팔 것이 없어진 이 세일즈맨은 자신의 생명을 파는 것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남김없이 소진해버린다. 몇 차례 도약을 꿈꾸었음에도 결국 정해진 수순을 따라 완전하게 몰락해버리는 소시민의 삶이 지금 현실과도 너무 맞닿아있어 더 큰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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