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린의 전쟁 같은 휴가
벤 파운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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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 중 구조담이야말로 희생과 구원을 아우르는 인간 정신의 가장 고결한 지점이며 따라서 태생적으로 가장 숭고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포레스트 검프>,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거쳐 최근의 <핵소 고지>에 이르기 까지 '전쟁'과 '구조'는 미국적 휴머니즘을 선전하는 가장 강력한 소재였다. 벤 파운틴의 <빌리 린의 전쟁같은 하루>도 그런 구조담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정치적 선전 도구로서의 의도가 다분한 어설픈 휴머니티에 칼을 들이댄다. 전쟁의 직간접적 피해자나 미국의 패권주의에 냉소적인 외부인들의 시선이 아닌 내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쟁의 부조리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조롱한다. 흥미로운 점은 전쟁 자체를 향한 일방향적 야유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이야깃거리를 둘러싼 사회 각계의 행동 양상을 통해 미국 사회를 다양한 측면에서 풍자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은 이라크 전쟁에 파병된 '브라보 분대'가 승전 기념으로 짧은 휴가를 얻게 되어 미국 전역을 여행하는 이야기다. 분대원들은 영웅으로 칭송되어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는데 그 시끌벅적한 환대 속에서 사회 각층의 인물들은 전쟁을 향한 개인적 신념에서 모순과 허구를 드러내게 된다. 요란한 일련의 사건들보다 더 소란스러운 것은 주인공 빌리의 내면이다. 승전 여행 내내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며 대중을 감화시킬 어떤 제스처나 연설을 종용받지만, 정작 그의 내면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대한 고민보다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의 문제에 더 닿아있다. 이처럼 외부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시끌벅적한 사건들과 빌리의 내면의 불일치, 이러한 충돌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소설에서 전쟁은 소설적 배경이기보다 미국 사회를 투영하는 메타포 내지는 객관적 상관물이라 하는 편이 더 맞겠다. 인류의 비극,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투쟁하는 인간들의 실존적 내면 따위의 본질에는 무심한 채, 이해 득실만을 따져 '전쟁 영웅'이라는 좋은 소재를 이용하려는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풍자의 핵심이다. 이 인물 군상들은 미국 전체를 대변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전쟁이라는 행위에 용맹과 승리, 영광 따위의 허울 좋은 말들을 얹어 인류의 참상을 화려하게 포장하기에 급급하다. 브라보 분대의 행로는 어느 모로 보나 전쟁의 선전용임에 분명하다.

헐리우드로 상징되는 미국의 자본주의도 한 몫 거든다. 흥행성을 담보로 자본이 움직이고, 분대원들의 죽음과 생사를 가르는 전선은 자본 주의의 논리로 값이 매겨진다. 전쟁의 본질은 일찌감치 멀리 재껴버리고 자본의 논리로만 판단하는 헐리우드의 생태와 홀린 듯이 그 논리에 동조해가는 대원들의 모습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미국적인 코드들의 현란한 연쇄와 비속어의 남발, 불쑥 끼어드는 불규칙적인 의식의 흐름은 소설의 생동감을 더한다. 무엇보다 잘 써진 소설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전쟁 구조담이라는 뻔한 클리셰를 교묘하게 비틀어 미국 사회 전반의 허위 의식을 폭로하는 도구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헐리우드의 국제적 흥행 덕분에 미국 우월주의에 서서히 세뇌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통쾌한 한방을 날리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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