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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아이들 1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9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달랑 세 작품만 놓고 보자.(<광대 살리마르>, <피렌체의 여마법사>, <한밤의 아이들> 세 작품만 읽었으니까.)
<광대 살리마르>가 최고다. 인도의 역사를 환타지, 박식함, 수다로 능청스럽게 엮어내는 솜씨에 그야말로 입을 닥치고 감탄만 했다. 거기다가 심장을 뜨겁게 하는 감동의 순간까지 있었으니, 돌이켜보면 <광대 살리마르>는 루슈디 최고의 작품이다.
그러지만 말이다, 조금만 더 생각하면, 아니 조금만 더 읽어보면, 이게 좀 그렇지 않다. <광대 살리마르>의 작품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최고의 작품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루슈디라면 죽고 못 사는 독자라면, 함께 나이를 먹으며 그의 행보를 쭉 지켜본 동시대 독자라면 <광대 살리마르>를 윗길로 치지는 않을 것이다. ‘최고의 작품 <광대 살리마르>’는 순전히 늦된 독자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니까 ‘삼십대의 소지섭’을 첫만남으로 기억하는 나같은 사람말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천재성이 소란스럽게 요동치는 데뷔작 <한밤의 아이들>로 루슈디를 처음 만난 독자라면, 응당 <한밤의 아이들>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을 것이다.
루슈디를 알고 싶으면, 인도를 알고 싶으면, 인도에 가보고 싶다면, 인도 영화를 보다 잘 이해하고 싶다면, <한밤의 아이들>을 읽어야 한다. <한밤의 아이들>을 읽은 후 인도와의 만남을 어떻게 시작해야할 지 알 것 같았다. 루슈디는 시종일관 인도의 삶에 대해 들려준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인도의 새역사가 시작된 순간부터,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로 찢겨진 굴곡의 역사를 호들갑스럽고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기록하며 풍자한다. 아픔의 역사를 한편의 유쾌한 소동극인 마냥 떠들어댄다. 이제 나는 인도에 대해 비로소 조금 알 것 같다.
달랑 세 작품만 놓고 보자.
루슈디는 늘 인도만 이야기한다. 그런데 매 작품에서 보여주는 인도는 이형동체의 모습이다. 그래서 인도를 만나는 맛과 재미가 다르다.
<한밤의 아이들>이 인도의 근현대사를 42.195 킬로미터로 요약한 마라톤 같은 작품이다. 반면 <광대 살리마르>는 카슈미르의 아픔과 미국의 위선에 초점을 맞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이고, <피렌체의 여마법사>는 무굴제국의 영광과 쇠락을 그린 매혹의 시대극이다. 이들 작품에 비춰지는 인도의 모습은 그야말로 만화경 속 이미지 같다. 이슬람 문화와 힌두 문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뒤섞인 인도는 힌두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만큼이나 변화무쌍하다.
진심으로 인도에 가보고 싶어 한 적이 없다. 기회가 되면 한번 가봐야 할 곳 정도랄까? 아마 공짜 항공마일리지를 당장 써야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인도는 절대 삼등 안에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루슈디가 바꿔 놓았다. 겁 많은 여행자에게 인도는 여전히 두려운 곳이지만 <피렌체의 여마법사>에 묘사된 무굴제국의 옛 수도, 비운의 도시 시크리의 실제 모습을 보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루슈디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