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인 - 자살 노트를 쓰는 살인자,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2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참 재미있다. 구성은 탄탄하고, 문장을 발 빠르고, 상황 묘사는 치밀하고, 인물들은 잘 정리되어있다. 한 작품밖에 읽지 않았지만 작가의 명성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툼하지만 끊임없이 책장을 넘기게 하는 재미있는 장르소설임이 분명하다.
책머리에 스티븐 킹의 서문이 실렸다. 스티븐 킹의 동료 작가들의 작품에 늘 후한 점수를 준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걸작이라고 치켜세우며 작가와 작품에 대해 최고의 찬사를 늘어놓는다. 그것도 기가 막힌 입담으로. <시인>은 재미있는 작품이고, 마이클 코넬리는 분명히 대단한 작가인 것 같지만 스티븐 킹의 칭찬에 동감하기 힘들다. 그의 말처럼 <시인>은 집안의 불을 전부 켜 놓고 읽어야할 정도로 무섭지도 않다. 스티븐 킹처럼 마지막 장면 때문에 충격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두 세 번 읽을 정도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이 책에서 유일하게 두 번 이상 읽은 것은 대목은 스티븐 킹의 추천사다! 스티븐 킹은 내가 아는 작가 중 서문을 제일 재미있게 쓰는 사람이다.) 동료 작가에 대한 스티븐 킹의 애정 어린 호들갑이다. 속지 말지어다.
꽤 재미있었지만 아쉽다. 우선 <시인>에는 유머가 부족하다. 600 페이지가 넘는 꽤 두툼한 분량을 코넬리는 스트레이트하게 몰아붙인다. 간혹 등장하는 농담은 인물들이 서로 주고받는 것들일 뿐 독자가 동참하고 즐기기에는 심심하다. 그러니까 독자를 위한 농담이나 유머가 부족하다.
누구는 코넬리의 문장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이도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아름다운 문장이란 자고로 행간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문장이 길든 짧든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작가만의 독특한 정서가 스며있어야 한다. <시인>의 문장은 좋은 스토리텔러의 문장, 잘 읽히는 문장이지 정서가 스민 문장은 아니다.(마이클 코넬리는 분명 훌륭한 기자였을 것이다!)
탄탄한 구성과 예상을 뒤엎는 반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결말이 전혀 충격적이지 않은 것은 독자가 ‘괴물’에 공감할 만한 시간을 전혀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독자의 시선이 비켜갈 수밖에 없는 인물을 ‘진짜 괴물’로 설정하고 이야기를 급히 마무리하는 것이 오히려 허탈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괴물에 대한 설명도 빈약하기 그지없다. <시인>이 삼부작의 첫 작품이라는 것도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 <시인>은 1996년작이고, 다음 작품 <시인의 계곡>은 2004년작이 아닌가?
‘시인’이라는 설정도 아쉽다. 포우의 시를 현장에 남기는 살인마라니 얼마나 흥미로운가? 그런데 시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그럴듯한 의미가 없다. 포우가 이 작품을 읽는다면, 왜 자기 시를 작품 속에 구겨넣을까?하고 궁금해 할 것이다.
주인공 존 매커보이의 쌍둥이 형, 숀 매커보이와 살인마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다. 아니 두 사람이 꼭 쌍둥이로 설정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이 두 가지가 독자들을 초반에 강력하게 잡아끄는 요인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더 개운치 않다.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탓일까?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너무 불평이 많은가? 그래도 눈에 거슬리는 건 거슬리는 거다. 최고라는 말이나 역작이라는 말이 홍보 문구가 아닌 자명한 사실로 다가오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