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의 재
프랭크 매코트 지음, 김루시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안젤라의 재>는 아름답고, 진솔하고, 서정적이고, 애달프고, 유머러스하고, 몽환적이기도 한 훌륭한 회고록이다, 진심으로.  

소설가들은 종종 사람들이 흔히 하는 “내가 살아온 삶을 소설로 쓴다면 수십 권은 될 거다”라는 말을 예로 들며 소설을 설명하기도 한다. 소설은 창작이고, 예술이기에 ‘인생=소설’이 될 수 없다. 즉 인생역정을 고스란히 옮기는 것은 소설로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거다. 장정일이 해석하는 ‘구월의 이틀’처럼 소설가는 기나 긴 삶 속에서 ‘이틀’을 포착하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동의한다. 일기와 소설은 본질적으로 다르니까. 그런데 프랭크 매코트의 회고록 <안젤라의 재>는 이를 무색케 한다. 이 책은 여느 소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시종일관 반복되는 주인공의 일상사는 소설가들이 포착한 ‘이틀’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다.

<안젤라의 재>는 그 어떤 소설 못지않게 문학적 향기가 넘친다.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본, 현제시제로 묘사된 1930년대 아일랜드의 빈민가는 아름답고 시적이며, 순수하고 유머러스하다! 그렇다고 이런 문학적 향취 때문에 이 책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작가의 태도, 그것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안젤라의 재>에는 회고록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코멘터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프랭크 매코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냥 보여준다. 곧 사라질 기억의 집을(작가는 이 회고록을 예순여섯에 출간했다.)의 찬찬히 더듬어 하나하나 묘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현학을 과시하기 위해 주석을 달거나 억지로 의미를 덧대는 짓거리를 하지 않는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예순을 넘긴 작가가 아니라, 오로지 1930년대 아일랜드에 자라고 있는 어린 프랭크 매코트이다. 독자는 그때 그 시절의 프랭크 매코트의 순수한 눈으로 아일랜드를 보고 사람들을 만난다.  
 
<안젤라의 재>에서 만날 수 있는 건 1930년대의 아일랜드 사람들만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의 우리들도 만날 수 있다. 호인이지만 무책임하고 술주정뱅인 프랭크 매코트의 아버지 말라키는 우리네 아버지랑 꼭 닮았으며, 가난을 온몸으로 감당하던 안젤라는 우리의 어머니이고, 이들과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이웃들은 우리의 이웃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프랭크 매코트의 회고록은 아주 특별한 무언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소설로 쓰면 오십권은 족히 될 거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진부한 인생역정을 옮긴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유머러스하다. 이건 전적으로 어린 아이의 눈으로 삶을 묘사한 작가의 솜씨 때문이다. <안젤라의 재>에서 우리는 노작가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유년 시절의 프랭크 매코트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순수함을 맛본다. 프랭크 매코트는 진정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다.

<안젤라의 재>를 읽으며 떠오른 생각 몇 가지.

1. 가난과 전쟁, 환란의 최대 피해자는 늘 여자와 아이들인가?
2. 커다란 절망 앞에서 남자는 여자에 비해 무기력하며, 도피적인가? 아내와 자식이 굶고 있는데도 일당을 술집에서 탕진하는 말라키 매코트. 무책임이 몸에 밴 모습.
3. 종교가 과연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그 구원이란 항상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닐까?
4. 아무리 혹독한 시절이었을 지라도 돌이켜보는 과거는 아름다운가? 이는 상처에 대한 극복을 전제로 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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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4-27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나왔을때 Angela' ash 라는 제목으로 눈구경을 하도 많이 해서인지, 저도 읽은 줄 착각할 뻔 했어요. 아이들의 시각, 아이들의 관점이 도입되면 이야기가 많이 순화되고 아름다워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마지막 네가지 문항을 보니 요즘 술술 읽히는 책만 일부러 골라 읽고 있는 중인 저는 조금 있다가 읽어야할 듯 하네요.

lazydevil 2010-04-27 22: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분명히 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가난마저 아름답게 보이나봐요.
근데 이 작품 정말 술술 읽히는 작품이에요.
종종 웃기도 하고요, 적지 않은 분량이 후르륵~(무슨 라면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