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좋아합니다. 다 타버린 시가를 질겅질겅 씹어대는 무법자의 모습을 보고 반했습니다. 범죄자들을 향해 매그넘45를 무지막지하게 쏘아대는 강력계 형사에도 열광했고, 낡은 캐딜락에 침팬지를 태우고 텍사스 촌구석을 누비고 다니는 썰렁한 코미디조차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사람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제목 <인빅터스>, 그러니까 ‘굴하지 않는~’라는 뜻의 이 제목은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몫입니다.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요?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시작된 이스트우드의 감독 필모그래피는 그야말로 경이롭습니다. 특히 <미스틱 리버> 이후 더욱 확고해진 세계는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클린트 할아버지는 이른바 ‘예술’을 하는 감독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최근 작품은 흔해빠진 감상을 자극하는 신파에 가깝죠. 그런데 정말 오묘합니다. 진부하기 그지없는 신파가 마음을 움직이니 말이죠. 민망하게도 이 아저씨의 영화를 보며 눈물 주르륵 주르륵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인빅터스>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가슴 한 켠이 짠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조화일까요?
아마도 클린트 할아버지의 신파에는 삶을 꿰뚫는 비범함이 담겨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은 예술가의 직관이기도 하고, 팔십 평생을 살아온 현인의 지혜가 스며있기 때문일 겁니다.
클린트 할아버지의 최근작들을 보면 기교 따위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그냥 막 찍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에요. 각 씬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고 그냥 보여줍니다. 구차한 설명이나, 치장, 잔머리는 집어치우고 정공법으로 밀어붙입니다. 머리를 쓰기에 나는 너무 늙고 피곤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세련된 것하고는 거리가 멀죠. 달리 말하면 투박해요.
그런데 단 한 장면도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있기에 감정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게다가 매 작품에 출연하는 연기자들은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요. 결국 거칠고 투박한 신파는 후반으로 갈 수록 힘을 발휘합니다.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거죠. 진정한 장인입니다.
여기에 세상을 보는 건강한 영혼이 작품에 담겨있습니다.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미지는 매우 보수적입니다. 비록 미국의 가장 보수적인 장르인 서부극의 아이콘이고(비록 변종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스타가 되었지만!), 법보다 총을 먼저 들이미는 강력계 형사의 캐릭터로 유명합니다. <그랜토리노>의 주인공 코왈스키 영감처럼 꼬장꼬장한 보수적인 백인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강해요.
그런데 그는 작품을 통해 늘 관용과 용서, 통합을 이야기하며,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습니다. 결코 제스추어 같지 않아요. 이는 그의 마지막 걸작이 될 지도 모를 <그랜토리노>에 가장 잘 드러나고 있죠.
<인빅터스> 역시 <그랜토리노>와 궤를 같이 합니다. 흑인 대통령, 백인 럭비팀 주장의 이야기죠. 이 영화에서 클린트 할아버지는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요. 선은 있으나 악당은 없습니다. 비극의 중심에 있지만 희망을 보여줍니다.
즐겨 들리는 모님의 블로그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읽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크고 작은 도시국가들은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싸움을 멈추지 않았는데,
|
|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그리스는 다만 두 가지 사실에 의해 일종의 정서적 공동체로 단결되어 있었다. 하나는 서사시였고, 다른 하나는 4년마다 한 번씩 올림피아 체전에 참가한다는 관습이었다.
- 허버트 조지 웰스 <웰스의 세계문화사> p99 |
|
|
|
|
즉 서사시(예술)와 올림피아(스포츠)가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는 건데, <인빅터스>는 순진할 정도로 이 두 가지에 충실한 작품입니다. 신기한 것은 이것이 그냥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화라는 점이고, 신기할 것도 없는 것은 우리도 이와 비슷한 것을 경험했다는 겁니다. 굳이 월드컵 축구, WBC 야구, 올림픽 등등 길게 열거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빅터스>를 보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넬슨 만델라를 보며, 어떤 대통령이 떠올랐습니다. 모건 프리먼과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며 나이를 늙는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럭무럭 피어올랐던 생각을 모조리 정리할 순 없지만 한가지만은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진심으로 여든 살이 된 이 할아버지 감독님이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작품이 남기는 것이 많은 사람들을 위한 축복일 테니까요.(갑자기 주성치에게도 이런 말을 해주고 싶네요. 제발 클린트 할아버지처럼 쉽게 쉽게 영화 좀 찍으슈~~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