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으로 향하다>는 매튜 스커더가 나오는 1992년 작품입니다. <800만 가지 죽는 방법>과 무려 10년의 시차가 있는 작품이죠. 그런데 젠장...!! <800만 가지...> 이후 매튜 스커더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힘없는 독자들은 그냥 닥치고 고맙게 생각하며 읽어야죠. 똑같이 밀리언셀러 클럽이라는 딱지를 달고 출간되었는데 책마다 이름을 ‘매트’에서 ‘매튜’로 바꾸건 말건 말이죠. ‘매트’가 ‘매튜’의 애칭이다 어쩐다는 설명 따위는 기대도 안합니다.그냥 감사할 따름이죠.(참고로 <세계 서스펜스 걸작선1>에서는 ‘스커더’를 ‘스쿠더’로 성고문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매튜는 이제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고, 전작에 잠시 등장한 일레인이 여자친구가 되었군요. <800만 가지>는 워낙 강렬했습니다. 알콜 중독자이자 무면허 탐정인 매튜 스커더라는 인상적인 캐릭터가 쏟아내는 고독과 자책감은 뉴욕이라는 거대도시의 끔찍한 상황과 어우러져 절망의 끝이 무엇인지 혹독하게 보여줍니다. 그래도 살아야겠다고 눈물짓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다가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나네요. 연쇄살인마를 쫓는 탐정이 질질 짜고 그러거든요. 로렌스 블록의 최고 작품일 것이 분명한 <800만 가지>은 매튜 스커더 시리즈의 다른 작품이 고파지게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본작의 문제가 아니라 전작 때문이죠. 시속 160km의 불같은 광속구를 보고 난 후 시속 149km 짜리 직구가 시시하게 느껴지는 그런 경우죠. 여러모로 <800만 가지>에서 볼 수 있었던 로렌스 블록 스타일의 작품입니다.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 사이사이에 속도감 넘치는 대화가 적절히 삽입되죠. 황소걸음으로 사건을 추적하는 매튜 스커더의 뚝심도 그렇구요. 의뢰인이자 파트너로 등장하는 범죄자의 캐릭터가 매력적인 것도요. 매튜를 돕는 뒷골목 출신의 흥미로운 캐릭터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800만 가지>보다 밋밋합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평범한 하드보일드 탐정소설과 다른 건, 당연히 로렌스 블록의 작가적 역량이겠지만, 작품 곳곳에 감정적인 트임이 존재합니다. 작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매튜와 일레인의 대화가 대표적입니다. 이 부분을 읽는 동안 너무나 기쁜 나머지 독자인 제가 구원을 받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매튜와 일레인의 관계 속에서 삶은 희망 같은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인물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네 평범한 삶에 고스란히 적용되는 보편적인 희망의 원리 말입니다. 좀 거창하죠? 다른 하나는 역시 매튜 스커더 시리즈는 평범한 탐정소설과는 다르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역시 매튜 스커더에게는 알싸한 맛이 있어요. <800만 가지>를 휙휙 다시 넘겨보며 생각해보니, 매튜 스커더를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순서를 뒤바꿔 <무덤으로 향하다>를 읽고 난 다음 <800만 가지>를 읽어도 되겠다는 싶더군요. 알콜 중독자 매튜 스커더의 필사적인 생존기만 놓고 보면 오히려 더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저처럼 149km짜리 직구가 밋밋하게 느껴지지도 않을 거고요. 암튼 또 다른 매튜 스커더 시리즈를 기대해봅니다. 그 이름이 ‘매트’든 ‘매튜’든 ‘스커더’든 ‘스쿠더’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