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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바라는 기도 ㅣ 밀리언셀러 클럽 48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평점 :
도무지 패트릭 켄지가 어떤 인물을 종잡을 수 없습니다. <가라, 아이야, 가라>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비를 기다리는 기도>는 정도가 심합니다.
전작에서 앤지와 헤어진 켄지는 싱글의 신분을 씁쓸히 누리고 있습니다. 어느 날 카렌이라는 아가씨가 스토커를 쫓아달라며 찾아오죠. 켄지는 부바와 함께 무지막지한 완력을 앞세워 스토커를 혼내줍니다. 당해도 싸다싶은 놈이지만 켄지와 부바의 폭력과 협박은 분명히 지나칩니다. 더티 해리 식의 과격한 해결! 이것은 <비를 기다리는 기도>에서 켄지가 보여줄 컨셉인가싶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랬습니다.
이 사건은 6개월 후 카렌의 자살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그런데 어쩐지 누군가 치밀하게 꾸민 상황에 떠밀려 카렌이 자살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켄지는 카렌이 죽기 전 요청한 도움을 한차례 외면했다는 죄책감에 못 이겨 사건을 조사합니다. 그리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건과 사고를 배후 조종한 얼굴 없는 살인마의 존재를 감지하게 되죠.
<비를 바라는 기도>에 등장하는 켄지는 조울증 환자 같습니다. 때로는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독을 짊어진 남자처럼 센치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다가 돌연 분노를 표출하죠. 아주 폭력적인 방법으로요. 그 와중에도 쉬지 않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늘어놓습니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스탭을 밟아야할 지 모르겠더군요. 이렇게 폭력과 농담, 분노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이상한 상황을 낄낄거리며 신나라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바로 켄지와 앤지, 부바 트리오입니다. 도대체 저들이 뭐 때문에 목숨을 걸고, 뭐 때문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는지, 그 상황에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좋다고 키득거리는 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켄지는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요?
비교해보면 <가라, 아이야, 가라>는 좋은 작품입니다. 켄지의 캐릭터를 선뜻 이해하기 힘들기는 그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비를 바라는 기도>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앞선 작품에서 켄지는 이성과 감정, 행동의 불일치로 고민하는 우유부단한 캐릭터라면, 이 작품의 켄지는 분열증을 겪고 있는 환자같습니다. 웃어야할 때와 울어야할 때를 구분 못하고, 조금 전까지 자기가 울었다는 사실도 기억 못하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지는 환자말입니다.
시종일관 불만을 털어놓았지만 이 작품은 경우에 따라 재미있게 읽힐 수 있습니다. 폭력과 분노, 농담 등의 요소가 골고루 섞여 있고, 흥미로운 캐릭터도 등장하니까요. 하지만 데니스 루헤인이라는 이름값을 생각하면 실망스럽습니다.
역자는 데니스 루헤인의 대표작이 <미스틱 리버>나 <살인자들의 섬>이 아니라 켄나와 제나로 시리즈라고 믿어 의심치 않더군요. <미스틱 리버>는 읽지 않아서 모르겠고, <살인자들의 섬>이 대표작이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가 데니스 루헤인의 대표작이라지만 <비를 기다리는 기도>가 그의 대표작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다섯 편짜리 시리즈물 말고 두 편 밖에 내놓지 않은 작가에게서 시리즈물이 대표작이라고 단언하는 것도 좀 웃기기는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