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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최악>은 오쿠다 히데오가 쓴 진짜 소설입니다. <최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진짜입니다. 그들이 겪는 사건도 진짜입니다. 디테일도 진짜입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결말 역시 진짜입니다. 이번만큼은 진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쿠다 히데오는 작정하고 <최악>을 쓴 것 같습니다. 이번만큼은 진짜 이야기를 쓰겠다.
오쿠다 히데오의 탁월한 대중성은 가벼움에 있습니다. 이 사람은 무엇이든 살랑살랑 가볍게 이야기하는 재주가 있습니다. 적어도 앞서 읽은 작품들의 공통점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심각한 상황도 피식 웃음이 터지는 해프닝으로 보입니다.
인물들도 그렇습니다. 평범한 인물의 한 면을 부각시키고 과장합니다. 그 결과 인물은 평범함을 벗어던집니다. 특이하고 황당한 캐릭터가 되는 거죠. 이들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면 특이하고 황당하게 과장된 일면만 적극 반응합니다. 그래서 남들과 다르게 행동을 하는 거죠. 그래서 이야기는 엉뚱하고 재미있게 흘러갑니다.
<최악>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적인 인물들이 현실적인 문제로 시달립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세 인물은 너무나 평범합니다. 스무 살 내기 양아치, 이십대 중반의 여자 은행원, 콩알만 한 공장을 운영하는 사십대 사장. 이들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독자가 알고 있는 양아치와 여자 은행원, 사장님을 대입해도 무방합니다. 그들이 겪는 사건들도 결코 새롭지 않습니다. 각 분야(?)에서 겪을 만한 그렇고 그런 문제일 뿐입니다. 그런데 왜 ‘최악’일까요?
그들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쓰나미가 아닙니다. 뜻하지 않은 만루 홈런을 맞고 역전을 허용한 투수의 상황이 아니라, 볼넷과 실책, 빗맞은 안타가 계속되며 매 이닝이 점수를 빼앗기며 힘겹게 경기를 이끌어가는 투수의 상황입니다. 이닝을 거듭할 수록 점수 차는 더욱 벌어집니다. 전세를 역전시킬 희망은 점점 멀어지는 거죠. 한계 투구수는 진작 넘었지만 교체할 투수도 없기에 마운드를 지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깨에도 이상 징후가 느껴지는군요.
아...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라는 작품에서 70이닝을 던진 선댄스 키드라는 투수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포수 부치 캐시디에게 한 말이 떠오르는군요.
“팔이 없어져 버렸어... 눈이 안보여... 60회쯤부터는 부치 소리가 나는 곳으로 던졌어. 부치 이 시합 어떻게 돼 가고 있지? 도중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내가 말한 건 정말로 일어난 일일까?”
최악입니다.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시련은 인간을 도리어 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거죠. 반면 작지만 거듭되는 일상적인 테러가 더욱 견디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조금씩 조금씩 잠식당하는 것, 이것이 바로 최악으로 가는 상황인 거죠.
<최악>을 읽는 동안 줄곧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최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