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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퀴즈 플레이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스퀴즈 플레이>를 다시 읽었습니다. 초판이 2000년 8월에 발행되었고, 곧바로 구입하여 읽었으니 거의 만 9년 만에 다시 읽은 셈입니다. 벌써... 9년입니다.
9년 전, 그러니까 <스퀴즈 플레이>을 읽던 그 시절, 폴 오스터에 빠져 있었습니다. 앞서 출간된 <문 팰리스(달의 궁전)>을 시작으로 <리바이어던(거대한 괴물)> <미스터 버티고(공중곡예사)> <뉴욕 삼부작> 등의 작품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시기입니다. 이후 <동행>은 기대만큼 못했지만 <우연의 음악>은 좋았고요. 산문집인 <굶기의 예술>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스퀴즈 플레이>를 집어 드는데 주저하지 않았죠. 좋아하는 작가의 습작소설을 읽는 것마저 즐거워했던 시절이었던 거죠.
9년 전 <스퀴즈 플레이>를 읽은 때는 폴 오스터를 기대하고 읽었지만 탐정소설이 보였습니다. 탐정소설은 물론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던 때입니다. 그런데도 기억에 남는 것은 주인공 맥스 클라인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위협을 무릅쓰고 동분서주하던 것과 살인사건을 둘러싼 트릭이었습니다.
한 가지 더. 그간 수차례 탐정소설 읽기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악연을 <스퀴즈 플레이>가 끊어주었던 겁니다. 엉뚱하게도 폴 오스터의 습작을 읽으며 ‘탐정소설도 재미있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된 거죠.
다시 <스퀴즈 플레이>를 읽을 때는 하드보일드 소설을 기대하고 읽었지만 오히려 폴 오스터가 또렷하게 보이더군요. 그러니까 하드보일드 소설 특유의 정서보다는, 예기치 않게 탐정소설을 쓰게 된 무명작가 폴 오스터의 고단한 삶이 더 잘 읽혔습니다.
이 작품을 쓸 당시 폴 오스터는 생활고와 싸우던 무명작가였습니다. 주인공 맥스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은 돈벌이를 목적으로 <스퀴즈 플레이>를 쓴 폴 벤저민(폴 오스터의 필명)과 고스란히 겹치더군요.
이혼한 아내와의 가슴 아픈 사연과 아들 캐시에 대한 애정은 작가의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거나, 다가올 미래를 예언하고 있는 듯합니다. 폴 오스터의 실제 사생활과 주인공 맥스의 사생활이 얼마나 겹치는지 따위의 가십거리를 캐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답지 않게 탐정의 사생활이 절절하게 소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건수사와 하등에 필요 없는 부분인데도 말입니다.
맥스 클라인은 분명히 필립 맬로우나 루 아처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들보다 훨씬 자기연민에 빠진 인물입니다. 맥스 클라인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사건을 수사하고, 사건 속에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고, 여러 인물들과의 만남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건해결은 단지 빌미일 뿐입니다. 맥스가 목숨을 걸고 사건에 달려드는 것은 가학적인 존재확인법인 셈입니다.
폴 오스터가 <스퀴즈 플레이>를 출판업자에게 건냈을 때 “탐정소설적 요소만 빼면 뛰어난 심리 스릴러가 될” 거라는 반응이 나온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겁니다. 감추기 힘든 문학적 상피성이 드러난 것이죠. 다른 탐정소설과 ‘조금은’ 달랐고, 탐정소설을 좋아하지 않던 그 시절에도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폴 오스터는 <빵굽는 타자기>에서 <스퀴즈 플레이>를 두고 “이 장르 소설로서는 그동안 내가 읽어온 수많은 작품보다 나쁘지 않아보였고, 몇몇 작품보다는 훨씬 좋아보였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스퀴즈 플레이>는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을 흉내 낸 꽤 괜찮은 폴 오스터의 습작입니다. 하지만 <스퀴즈 플레이>는 큰돈을 벌어다주지 못했습니다. 크고 작은 난관을 겪은 끝에 겨우 출판되었고, 그 결과 폴 오스터의 손에 쥐어진 돈은 9백 달러가 고작이었으니까요.
탐정소설을 좋아하게 된 지금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스퀴즈 플레이>가 성공하였다면 폴 오스터의 인생을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는 장르소설 전문 작가의 길로 접어들어 아직도 맥스 클라인 시리즈를 쓰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뉴욕 삼부작>이나 <문 팰리스>같은 작품을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폴 오스터가 <뉴욕 삼부작>과 <문 팰리스>를 쓰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9년전 <스퀴즈 플레이>를 읽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폴 오스터를 읽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또한 폴 오스터 덕분에 탐정소설을 읽게 된 것은 아니지만 폴 오스터 덕분에 탐정소설의 재미를 일러준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독자인 저도 많은 것이 바뀌게 되었겠죠. 많은 것이 말이죠.
아무튼 저는 지금 탐정소설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