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일전에 읽은 <남쪽으로 튀어!>에 평가가 야박했던 것 같았습니다. 독특한 인물과 흥미로운 사건들이 어우러진 경쾌한 이야기였거든요. 그런데 유쾌한 웃음 뒤에 감춰진 배배 꼬인 정치색이 거슬렸습니다. 우파를 깔아뭉개는 듯 하면서도 좌파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세계관이 불편했던 거죠. 오쿠다 히데오, 이 작가 어쩐지 겉보기와 달리 의뭉스러운데 있다고 혼자 판단해버렸던 겁니다. <한밤중에 행진>을 읽었습니다. 솔직히 필요(???)에 의해 읽었는데... 그럭저럭 재미있었습니다. 여전히 코믹한 인물들이 나오고 장애물 경주를 하듯 시종 출렁거리는 이야기도 그런대로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전에 읽은 <남쪽으로 튀어!>에 비해 못 미치더군요. 인물도, 사건도, 에피소드도 그냥 재미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끝’입니다. 은근히 딴지를 걸고 싶어지던 <남쪽으로 튀어!>와 사뭇 다른 책읽기였습니다. 엄청난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인기작가 오쿠다 히데오인데, 그의 작품을 불과 두 작품 밖에 읽지 못했는데, 감히 이야기해봅니다.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은 재미있다’는 말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재주가 있는 작가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작품을 읽고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의 반절은 입담입니다. 작가의 입담이 좋은 소재와 만나고, 좋은 인물을 만들어냈을 때 진짜 재미있는 작품이 탄생하겠죠. <남쪽으로 튀어!>가 그 경우인 것 같습니다. 반면 그렇구 그런 소재를 다루고 있고, 그렇구 그런 인물이 등장하는 <한밤중에 행진>은 평범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도 <한밤중에 행진>이 ‘재미있다’는 착각에 빠뜨리는 것은 바로 입담 때문입니다. 가슴이 아니라 입 때문인 거죠. 오쿠다 히데오는 적당히 식은 라면발을 삼키는 듯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짧은 문장과 스피디한 사건 전개, 재치 있는 상황묘사... 이런 것들 때문에 그의 작품을 후루륵 읽게 되는 거죠. 그렇지만 이런 작가의 기교가 평범한 작품을 재미있는 작품으로 등업시킬 순 없습니다. 다만 잘 읽히는 작품으로 치장할 수 있는 거죠. 소설은 토크쇼가 아니기에 입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최소한의 가슴이 필요합니다. 겨우 두 작품 읽었습니다. 섣부른 판단이 틀릴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한 편을 더 읽어보기로 하고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작품을 주문했습니다. 부디 그 작품은 ‘<남쪽으로 튀어!>의 경우’였으면 좋겠습니다. 딴죽을 걸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도 뒷맛이 남는 작품을 읽은 것이 훨씬 즐겁거든요. 아무튼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