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표적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2
로스 맥도날드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3월
평점 :
품절


<움직이는 표적>은 케네스 밀러가 로스 맥도널드라는 필명으로 낸 첫 작품이자 탐정 루 아처가 독자들과 공식적으로 소개된 첫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출간된 것이 1949년이니까 루  아처의 완성된 캐릭터가 소개된 <위철리 부인>(1961), <소름>(1964), <지하인간>(1971)과는 제법 시차가 있습니다. 그만큼 루 아처의 모습도 다른데 이 점이 낯설어 실망스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우선 <움직이는 표적>의 루 아처는 매우 수다스럽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루 아처는 수다스럽기보다 혼자말로 넋두리를 늘어놓는 탐정입니다. 그 넋두리는 대게 독자에게만 들려주는 것이죠. 그런데 <움직이는 표적>에서는 틈만 나면 극중 인물들에게 입심을 자랑합니다. 얄미운 농담을 늘어놓으며 한참을 깐족거리는데, 때론 자기도 민망했는지 몇 차례나 말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며 자책하며 머쓱해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루 아처는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다소곳함이 있는 탐정입니다. 내면에 자리한 상처가 그를 그렇게 만든 듯한데, 때때로 여성성이 엿보일 정도 섬세하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움직이는 표적>의 루 아처는 그렇지 않더군요. 상대방에게 못된 농담을 직접 내뱉을 뿐만 아니라 매우 ‘마초적’입니다. 종종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수컷스러운 본능을 여과 없이 드러내더군요. 다소곳한 아처에 익숙해진 터라 그가 터프한 척하면 수컷 본능을 드러낼 때마다 조금 웃겼습니다.

루 아처는 매번 얻어맞고 필름이 끊기는 탐정으로 유명하죠. 그런데 <움직이는 표적>에서는 그 정도 심하더군요. 상대방과 제법 여러 차례 주먹다짐을 합니다. 심지어 총질도 하고, 자동차 활극도 선보입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다른 작품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액션맨’으로서의 능력이 두드러집니다. 그런데 여전히 낯설어요. 알고 있던 루 아처의 이미지가 아니거든요.

바보 같은 구닥다리 번역이지만 이렇게나마 루 아처의 데뷔를 볼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케네스 밀러는 27년 동안 로스 맥도널드라는 필명으로 20편의 루 아처 시리즈를 발표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성실하고 부지런한 작가입니다. 그가 그려낸 루 아처의 이미지도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믿음직스럽습니다. 아무쪼록 루 아처 전집까지는 아닐 지라도, 루 아처 선집라도 제대로 된 번역으로 출간되었으면 합니다, 제발. 젠장~~! 욕이 나올 정도로 간곡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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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9-06-30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루 아처 시리즈를 간절히 보고 싶어요.

lazydevil 2009-06-30 21:4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만약 20편의 루 아처 시리즈가 발간되면 평생 함께 할 좋은 친구를 얻은 기분일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