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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학기 ㅣ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잔학기>는 스물 다섯 살 남자에게 1년 1개월간 납치 감금되었던 열 살 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소녀가 감금된 1년 1개월간 어떤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다. <잔학기>는 끔찍한 사건을 겪은 이후 소녀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매우 ‘모호한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보르헤스의 소설처럼 <잔학기>는 작품 속의 작품 형식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런 형식은 의미를 풍성하게 만들고 다층적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기능을 합니다.
‘잔학기’는 소설가인 주인공 고미 나루미가 25년 전 겪은 납치 사건을 수기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그런데 고미 나루미는 ‘잔학기’를 남기고 실종되고, 남편은 ‘잔학기’를 출판사에 보냅니다. 남편은 아내의 글을 공개하는 이유를 짤막하게 밝힌 글과 아내가 ‘잔학기’를 쓴 계기가 된 편지 한 통을 ‘잔학기’와 함께 동봉합니다. 이 편지는 25년 고미 나루미를 납치했던 납치범이 보낸 편지죠. 이렇게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잔학기>는 남편의 글, 납치범의 편지, 고미 나루미가 쓴 ‘잔학기’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아니 한 가지 더, 작품 말미에 남편이 출판사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 한 통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기리노 나쓰오 작품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잔학기>도 후다닥 읽어버렸습니다.(그만큼 읽는 재미는 보장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다 읽고 나도 도대체 주인공이 납치되었던 1년 1개월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납치범은 왜 어린 고미 나루미를 납치했는가? 납치범의 숙소 뒤 켠에서 발견된 여성의 사체는 누구인가? 공범은 있는가? 실종된 고미 나루미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납치범과 주인공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잔학기>는 사건을 둘러싼 그 어떤 진실도 일러주지 않습니다.
아마도 진실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가해자와 피해자는 함구로 일관합니다. 그런데 25년 만에 피해자인 고미 나루미가 입을 연 거죠. 재미있는 건 피해자의 직업이 ‘소설가’라는 점입니다. 피해자는 사실을 기록한다고 몇 차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5년 만에 쓴 ‘잔학기’는 작가가 임의로 자르고 덧대고 가공한 진실일 뿐입니다.(소설가는 거짓말이 공인된 직업이죠.)
피해자는 당연히 자기가 겪은 끔찍한 상황을 똑바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랬다면 자신의 일생을 지배한 그 기억으로부터 진작 자유로웠을 겁니다. 그 ‘경험’은 고미 나루미의 발목을 여전히 움켜쥐고 있고, 고미 나루미가 그것을 사실 그대로 고백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잔학기>는 여성지 독점 수기처럼 추측과 호기심만 증폭시킬 뿐 아무런 진실도 이야기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기리노 나쓰오는 왜 이런 선정적인 사건을 소재로 어줍지 않은 ‘수기’를 썼을까요? 기리노 나쓰오는 사건을 둘러싼 잔인한 호기심과 선정적인 추측에 대한 조롱이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즉 ‘납치범이 주인공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렸는가?’를 보여주기보다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추악한 호기심이 주인공을 어떤 상처를 주었는가?’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나는 그때도 굴욕을 느꼈다. 모두들 멋대로 사정을 짐작하고 무슨 일을 당한 건지 마음대로 상상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아이가 그런 복잡한 감정을 아느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아이만큼 굴욕에 민감한 존재는 없다. 굴욕을 받아도 해소할 수단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p.82)
부끄럽게도 주인공이 냉소를 퍼부었던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추잡하고 선정적인 호기심으로 ‘잔학기’를 읽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스물다섯 살 납치범과 열 살 난 소녀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과 상상력이 서둘러 책장을 넘기게 만들었던 거죠. 독자인 저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가해자였던 겁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잔학기’는 번번이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고 말을 자르고, 말길을 돌리곤 했습니다. 그나마 선정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 대목들도 나중에 보니 고미 나루미(소설가!)가 지어낸 허구였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보기 좋게 물을 먹은 거죠.
게다가 작품 말미에 덧붙여진 남편의 편지는 또 한 번 독자들의 믿음을 송두리째 뒤흔듭니다. 우리가 읽은 ‘잔학기’는 수기(진실)가 아니라 소설(허구)일 지도 모른다는 거죠. 결국 ‘잔학기’는 우리가 한껏 상상하고 즐겼던 것을 진실을 빙자해 보여준 허구일 뿐입니다. 그 와중에 ‘나를 망친 것 납치범이 아니라 당신들의 추잡한 호기심이야!’라는 고미 나루미의 전언이 모호한 형식으로 곳곳에 숨어 있었던 거죠.
<잔학기>를 단순한 범죄 소설로 읽는다면 이런 모호함은 치명적인 결함이죠.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밝혀진 진실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모호함 덕분에 <잔학기>는 통속성에서 벗어나 곱씹어 볼만한 작품으로 거듭납니다. 보르헤스 이래(아니 그 전부터) 많은 작가들이 이미 써먹었던 수법이지만 기리노 나쓰오의 ‘성깔’과 어우러지니 꽤나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