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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슬립 ㅣ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평점 :
“(내가) 얼마나 돈에 탐욕스러운지 하루 이십오 불과 주로 기름 값하고 위스키 값에 들어가는 활동비 조금에 그걸로 뭘 하나 생각한다니까. 그 돈에 내 인생을 걸고 경찰들이나 에디 마스와 그 부하들한테 미움 사는 일도 감내며 총탄에 돌진하고 곤봉에 머리를 얻어 맞고 당신 같은 사람에게도 고맙다고 하는 거요. (…) 이 모든 일을 하루 이십오 불을 받고 해주는 거요.”
이 얼마나 위악적인 태도입니까? <빅 슬립>에서 필립 말로는 상대방을 이렇게 윽박지릅니다.
<빅 슬립>을 다시 읽은 이유는 로스 맥도널드 때문입니다. 고진감래라고, <지하인간>의 뻔뻔스러운 번역을 꾹 참고 읽어낸 후 얻은 울림이 제법 묵직했기에, <빅 슬립>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분명히 두 번째 읽는 작품인데도 완전 새롭더군요. 챈들러는 불과 여섯 편의 필립 말로 시리즈를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본인의 게으름과 저질 두뇌 덕분에 여섯 편만으로 당분간은 실컷 필립 말로의 ‘하드보일드’한 모험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챈들러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문체입니다. 주인공 ‘나’(필립 말로)의 눈으로 본 세상과 ‘나’의 입에서 뱉어진 밉살스러운 농담들을 말입니다. 필립 말로 시리즈는 ‘하드보일드’ 소설답게 상황에 대한 묘사와 대화들이 매우 냉소적입니다. <빅 슬립>의 경우 후반부에 이르면 비정함이 진저리처질만큼 싸늘하게 베어나죠. 그런데 묘하게 감상적이고 축축한 느낌입니다. 따뜻하진 않지만 결코 얼음장처럼 차갑거나 건조하지 않습니다.
해밋의 <몰타의 매>와 비교하면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합니다. 이건 맥도널드의 루 아처 시리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1인칭 시점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해밋이 3인칭 시점으로 샘 스페이드의 활약을 추적하는 것과 달리 챈들러와 맥도널드는 1인칭 ‘나’의 시점으로 사건을 따라갑니다. 아무래도 직접 화자로 나서는 1인칭 시점이 주인공의 심리를 더욱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감정에 쉽게 동화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똑같이 밉살스럽게 빈정거려도 필립 말로와 루 아처가 샘 스패이드에 비해 덜 냉혈한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해밋과 맥도널드를 언급했지만, <빅 슬립>을 읽으며 떠오른 작가는 오히려 제임스 M 케인이었습니다. 케인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와 <이중배상>이 욕망 앞에 무너지는 어리석은 인간상을 그린 뜨거운 하드보일드 소설이라면, <빅 슬립>은 차갑고 축축한 하드보일드 소설입니다. 생전에 챈들러와 케인이 서로를 씹으며 언쟁을 벌였다지만 두 작가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동시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작가들임에는 분명합니다. 다만 필립 말로라는 불멸의 캐릭터를 창조했다는 점 때문에 후대로 갈수록 챈들러에 대한 대접이 더욱 후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덧붙임, 다음은 '거대한 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동서미스터리문고 판 번역입니다. 앞서 인용한 부분과 같은 곳인데 비교해보니 재미있군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긁어모으지. 난 욕심이 너무 많아서 일당 25달라에다 경비를 합친 돈을 받고 일을 하지. 그나마 휘발유와 위스키 값에 다 날려버리고. 그리고 생각할 게 있으면 딴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혼자 생각하고, 경찰과 에디 마스 같은 사람들의 미움을 무릎쓰고 총탄 사이를 피해다니면서 펀치를 얻어맞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지요."
늘 그렇듯 독자는 역자와 편집자를 믿을 수 밖에 없어요. 다른 언어로 탈바꿈하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일일이 살펴볼 수 없기 때문이죠. 저자 역시 독자와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자와 독자의 바램은 한가지 일겁니다. 온전히 작품을 만나보는 거! 늘 까다로운 작업을 도맡아 하는 이 땅의 역자와 편집자의 한결같은 화이팅과 책임의식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