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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과 악몽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8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도련님과 악몽>은 ‘쇼트 쇼트 스토리’라는 생소한 장르가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 지 충분히 보여주는 이야기 묶음입니다. 작가 호시 신이치는 그야말로 이 장르의 절대덕목인 촌철살인 공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담긴 이야기는 쉽고 재미있게 읽힙니다. 어찌나 술술 읽히는 지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만만하게 보일 정도입니다. ‘별 고민 없이 쉽게 쓴 단편이구나!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어리석은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니까요.
솔직히 부러운 마음입니다. 판권을 뒤져보니 ‘1962’이라는 출판년도가 보이더군요. 그 당시 이렇게 앞서가는 이야기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생산’될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획일화와 몰개성의 두 갈래 길을 오가고, 엄숙주의와 억압, 혹은 자기 연민의 틈바구니에서 허우적거린 우리의 ‘이야기 판’의 과거를 생각하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1962년이라니! <도련님과 악몽>에 실린 이야기는 지금 읽어도 조금도 철지난 감이 들지 않습니다.
호시 신이치의 이야기에는 인간에 대한 통찰이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작품의 전체를 감싸는 재치 이면에서 예리한 송곳 같은 철학이 숨어있다는 뜻이죠. <도련님과 악몽>에 실린 대표작 중 하나인 ‘우주의 네로’는 정말이지 섬뜩한 우화입니다. “요즘 TV 프로그램은 시시해.”라는 대화로 시작하는 이 짧은 이야기는 인간 내면에 자리한 폭력성, 대중매체의 선정성과 그 폐해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정말 1962년 산(産) 이야기 맞나요?
뭐 워낙 분량이 적은 이야기 모음집이다보니 그러기는 하겠습니다만, 한 손에 꼭 들어오는 편집도 마음에 듭니다. 책 말미에 실린 해설도 재미있었는데, 시리즈 전권에 이런 해설이 하나씩 붙어있다니 이것도 좋은 볼거리네요. 아무튼 호시 신이치의 플라보시 시리즈를 소개해준 분께 감사드려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