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송곳니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노나미 아사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얼어붙은 송곳니>는 정말 화끈하게 시작합니다. 늦은 밤, 패밀리 레스토랑의 손님 하나가 돌연 불길에 휩싸입니다. 순식간에 불덩이가 되어버린 남자는 형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타버리고 말죠. 경찰은 자연발화처럼 보이는 이 사건이 철저하게 계획된 살인사건이라고 판단하고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합니다. 하지만 경찰은 용의자와 범행수법은 물론 피해자의 신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곤욕을 치룹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여자 수사관 오토미치 다카코입니다. 함께 사건을 수사하는 파트너는 전형적인 ‘꼰대’형 고참 형사인 다키자와죠. 두 사람의 불협화음은 이미 예측 가능한 일이지만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일념 아래 두 사람은 묵묵히 수사를 해 나갑니다.

강렬한 시작에 비해 이 작품의 진행은 의외로 담담합니다. 밝혀진 사건의 전모 또한 그리 놀라울 것도 없거니와 수사 과정 역시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마치 우리 현실 속의 사건 수사가 이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익숙하고 고단해보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작품에는 뒤통수를 후려치는 뜻밖의 반전이나, 거대한 음모, 사건을 둘러싼 기발한 트릭 따위는 없습니다. <얼어붙은 송곳니>는 그런 류의 미스테리 탐정소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에드 맥베인의 ‘87번 관서 시리즈’ 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전자를 기대(혹은 예상)했던 터라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실망은 순전히 책을 읽은 이의 오해 탓이지 작품의 문제는 아닙니다.

여형사 다카코를 둘러싼 도쿄 경시청 특별수사본부의 모습은 매우 사실적입니다. 범인의 흔적을 더듬어가는 다카코와 다키자와 콤비의 행보도 그러하고요. 에드 맥베인의 소설과 요코야마 히데오의 소설을 읽을 때에도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얼어붙은 송곳니>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작가는 분명 트릭보다 사실감을, 플롯의 유희보다는 전공법을 택한 듯 합니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종반부에 벌어지는 추격전입니다. 도심의 밤거리를 질주하는 도망자와 추격자를 압도적인 묘사로 긴박감 넘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의 야심이 충분히 드러나는 대목입니다만 숨가쁘게 펼쳐지는 스피드만 눈에 들어올 뿐 주인공 다카코의 심정은 십분 동감하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의 심리를 촘촘히 묘사하는 것이 돋보이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째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지극히 현실적인 것을 넘어서 통속적으로 느껴졌거든요. 솔직히 몇몇 상황은 TV 일일연속극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작품 외 이야기를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제작된 판형이 한 손에 쏙 들어올 뿐만 아니라 무게도 가벼워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며 읽기에 부담이 없더군요. 덕분에 불편함 없이 즐거운 책읽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본격 장르 소설은 그 어떤 분야보다 독자들의 책읽기 습관을 고려해야한다는 거...... 매우 상식적인 생각인 거 같은데 아직도 많은 출판사들이 고집스레 무시하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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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10-23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멋진 서평 잘 봤어요^^
<얼어붙은 송곳니>는 저도 서평을 썼던 작품이라 느낌이 다르네요...
영화서평에 '듀나님'이 있다면, 도서서평은 'lazydevil'님!!^^
서평 자주 좀 올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