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을 쫓는 모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문학사상사 / 199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을 15년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책 속지에 ‘1993년 7월 5일’이라는 메모가 적혀있더군요. 하루키가 쓴 소설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은 1998년으로 기억합니다. 네 권으로 출간된 <태엽감는 새>이었지요. 그 오륙년 사이 하루키의 소설을 즐겨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확실히 하루키 소설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열다섯 살을 더 먹은 지금 읽어보아도 여전하더군요.

<양을 쫓는 모험>은 좋아하는 하루키 소설 중 하나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본격적인 작품세계는 <양을 쫓는 모험>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는 하루키의 이후 작품에서 거듭해서 엿볼 수 있는 상상력의 키워드가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그것은 하드보일드 탐정소설, 리처드 브라우티건, 레이먼드 카버 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굳이 하나하나 꼬집어 이야기하면 제목의 ‘모험’은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에서 따온 유희이며, ‘양’은 리처드 브라우티건 식의 상상력이 잉태한 산물입니다. 또한 로스 맥도널드 식의 화법을 즐기는 주인공 ‘나’는 세상과 늘 일정한 거리를 두는 인물입니다.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레이먼드 카버가 인식한 외롭고 쓸쓸한 세상과 흡사하죠. 이렇게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다양한 요소들은 ‘비주류’라는 정서로 한데 묶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입니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 하루키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현실적으로 평범한 부류’와 ‘비현실적으로 평범한 부류’.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바로 후자에 속한 인물들입니다. 그래서 비극이 시작되는 거죠. 지극히 현실적인 태도만을 요구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 그들은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평범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 섞이지 못하고 부유하듯 떠다닙니다. 아무튼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하루키 식 분류법에 따르면 어디에 속하는 지 말이죠.
 
제가 읽은 하루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늘 비현실적으로 평범한 부류입니다. 그들이 나이를 먹음에 따라 20대에서 30대로, 다시 40대로 옮아갈 뿐 입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으로 볼 때, 철이 없고 한심하긴 매 한가지입니다. 아마 이런 반복되는 전형성이 하루키 소설을 더 이상 읽지 않게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읽은 <태엽감는 새>가 무척 흥미로웠는데도 말이에요.

<양을 쫓는 모험>을 다시 읽은 이유는 온다 리쿠의 <클레오파트라의 꿈> 때문입니다. 두 소설이 매우 흡사한 설정을 가지고 있고, 홋카이도라는 공간적 배경도 같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탐정소설의 플롯을 가지고 온 것뿐만 아니라 사건의 진상이 역사적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역사적 인식 면에서 두 작품은 서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양을 쫓는 모험>은 부족하나마 뚜렷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것이 옳건 그르건 간에 말이죠. 반면 <클레오파트라의 꿈>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현재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에만 주목합니다. 정말 그뿐입니다.

하루키의 소설은 90년대 우리 문학에 ‘가벼움’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입니다. 당시 활동하던 젊은 작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기성세대는 그들이 의도적으로 견지한 ‘가벼움’에 대해 걱정했습니다. ‘깊이’를 상실한 문학에 대한 반감이었던 거죠. 그런데 요즘 출판계의 주류가 되어버린 일본 소설들과 비교하면 하루키의 작품은 전혀 가볍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벼움을 적절히 포용할 줄 아는 넉넉함이 엿보이는 작품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다시 읽은 하루키의 소설이 반가웠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쥬베이 2008-10-23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알라딘은 이런 글을 이주의 마이리뷰로 안 뽑고 뭐하는지...
좋은 글입니다^^ (첫 문단에 lazydevil님 나이를 짐작하게 하는 문구가..ㅋㅋ)

2008-10-24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