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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1 - 소장판
아다치 미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곧 다가올 월요일을 준비하며 저마다 휴식을 취하는 일요일밤 11시, 개인적 아픔(?)을 달래기 위한 마취제로 퇴근길에 충동적으로 빌린 만화책 몇 권. 내게 만화귀신이 씌워놓고 말았다.
출근길 어김없이 고개를 상하를 끄덕이며 졸던 내가 아침시간 내내 말똥말똥 눈을 뜬 채 출근을 한다. 왜냐고? 만화 볼려구!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어도 간혹 내릴 곳을 놓칠 뻔하여 허겁지겁 지하철 문을 나선다. 왜냐고? 만화 보다가! 밤이면 다음날 출근시간이 기다려지고, 사무실에서는 빨리 퇴근 시간을 기다린다. 왜냐고? 차안에서 만화 볼려구!
하긴 며칠 미친 듯이 만화에 열광했다고 당장 만화광이 될 리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이야기하는 이 만화는 확실히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었다. 이런 세계도 있구나. 이런 즐거움도 있구나.
'H2'의 스토리는 통속적이다. 그런데 이 통속적인 이야기를 꾸려가는 작가 아다치 미츠루의 솜씨는 정말 대단하다. 그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지 결말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손을 놀 수 없게 만든다.
아다치의 탁월함은 캐릭터를 만드는 힘에 있다. 만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저마다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 히로는 이름처럼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야구영웅. 헌데 그는 경기의 승패나 기록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단지 야구를 좋아하며 게임을 즐기는 평범한 야구소년일 뿐이다. 실제로 히로는 갑자원에서 히데오와 대결하는 것이 목적이지 우승기나 우승컵 따위에는 별 집착을 보이지 않는다.
단지 고등학생일 뿐인데 벌써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히로. 이상하게도 이렇게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전혀 어색하거나 거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유인 즉 아다치는 비현실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를 일상적인 상황과 너무나 잘 조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히로와 히카리를 둘러싼 가족과 친구들은 만화 속에 등장하지만, 그래서 다소 과장되어 있지만, 당장이라도 주위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리고 찾고 싶은 평범하지만 이상적인 인물들이다. 평범하지만 이상적이라! 그래서 그들은 매력적이다.
'H2'의 또 하나의 놀라운 점. 이야기의 갈등과 긴장감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전형적인 악당이 나올 법한데 이 만화에는 악당이라고는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무슨 천사표 만화도 아니고 이게 뭐람! 초반 구제불능 악당 비스무레하게 등장하는 키네(내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는 곧 히로의 없어서는 안될 친구가 되고, 승리를 위해 갖은 야비한 수단을 마다하지 않는 또 다른 야구천재 히료타조차 결국 미워할 수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니까 'H2'에는 버릴 만한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는 것.
이렇게 캐릭터의 절묘하게 소묘한 덕에 'H2'는 탁월한 대중을 획득하는데... 이 정도에서 그쳤다면 'H2'는 그냥 평범한 베스트셀러 만화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열성적인 지지자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다치 미츠루의 감수성과 그것을 극대화시키는 연출력이다.
'H2'전편에는 아디치 미츠루만의 독특한 감수성이 흐르고 있다. 그것은 평범한 일상에 숨어있는 미묘한 감정의 떨림을 잡아내는 섬세함이다. 그 감수성이 비록 사소하고, 가벼운 것일지라도 'H2'를 다른 만화와 차별화시키는 가장 큰 힘이자 탄탄한 열혈지지자를 만들어낸 저력이다.
사실 나도 그 점 때문에 이 만화에 반했는데, 그 섬세함이 단아하고 참신한 연출과 맞물려 발휘하는 재미와 감동은 웬만한 영화를 찜쪄 먹을 수준이다. 아니 이 만화를 보면서 만약 아다치가 영화감독이 되었다면 이와이 슌지가 울고 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요즘 이 만화의 소장을 꿈꾼다.... (200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