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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칼의 날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93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석인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프레드릭 포사이스는 데뷔작부터 자신의 역량을 100% 발휘한 작가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읽은 <어벤저>와 <자칼의 날>의 간극은 무려 30년이 넘습니다. <자칼의 날>이 1971년작이고, <어벤저>가 2003년작이니까요. 그런데 두 작품은 마치 연이어 발표된 작품처럼 닮아있습니다. 그러니까 프레드릭 포사이스는 데뷔작에서 이미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았고, 충분히 보여주었던 거죠.
<자칼의 날>은 프랑스의 대통령 샤를 드골의 암살기도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작품 속에 그려지는 당시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은 대부분 사실일 것이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대부분 실존 인물일 것입니다. 이는 분쟁지역을 돌며 취재기자로 활약했던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취재를 통해 파악한 실제 상황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것이죠. 그 상상력은 작가적 상상력이라기보다 기자다운 통찰력에 기반을 둔 것인 듯 합니다. 그러니까 <자칼의 날>에 등장하는 모든 상황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거나, 일어날 법한 상황들인 거죠.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자칼의 날>의 역자 후기에서 작가 스스로 문체나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문학적 향기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자칼의 날>이나 <어벤저>에서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작가는 짧은 문장과 군더더기 없는 표현으로 전개되는 상황을 속도감 있게 묘사하는데 주력합니다. 마치 월간지에 실린 르포 기사처럼 말이죠.
중요한 것은 이런 글쓰기 스타일이 포사이스가 택한 소재와 잘 맞아떨어져 매우 개성 있고 흥미진진한 장르소설을 탄생시켰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방대하고 다양한 자료를 한편의 이야기로 멋지게 구성했습니다. 사건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탁월한 통찰력으로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완성한 거죠. 동물적인 분석력과 뛰어난 구성력이 문학적 상상력을 압도한 순간이죠.
단 두 작품을 읽었을 뿐입니다만, <자칼의 날>과 <어벤저>를 읽으며 작가의 정치적 세계관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야기가 정치적인 소재를 다룬 첩보 스릴러물인 지라 당연한 일이죠. 적어도 두 작품에서 포사이스의 노골적인 정치적 성향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포사이스는 대립한 각 집단의 복잡한 역학관계와 갈등의 뿌리를 추적할 뿐 어느 한쪽을 노골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오히려 극으로 치닫는 양쪽 모두에게 은근히 냉소적인 야유를 보내곤 합니다. 그런데 가끔 극우집단에게 연민을 느끼는 듯 한 어투가 엿보입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연민’말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두 작품만으로는 짐작하기 힘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