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윈터의 망명 동서 미스터리 북스 124
로버트 리텔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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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윈터의 망명>은 ‘우아한’ 스파이 소설입니다. 이 작품에서 스파이 소설하면 떠오르는 숨 막히는 긴장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듯 합니다. 작품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르윈터의 망명>에 등장하는 첩보전은 마치 체스 게임 같습니다. 조용히 머리 속으로 수읽기에 골몰할 뿐, 핏대를 높이며 소리치거나 흥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제임스 본드같은 액션파 스파이하고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죠.

이들에게 첩보전은 이미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냉전의 장기화는 힘의 균형을 의미하고, 이는 곳 안정의 다른 이름이겠죠. 그래서인지 미국과 소련의 정보국 요원들은 각자의 직업에 적당히 충실한 듯한 인상입니다. 국익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보다 자신의 안위나 이해타산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죠. 그래서인지 타성에 젖은 정보국 요원들의 이면을 보는 것 같아 재미있었지만, 그만큼 극적 긴장감은 덜했습니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재미는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공산주의자들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야기 속 첩보전에 희생되는 인물 중에 자이체프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세계 체스 챔피언이자 지적 유희를 즐기는 수다스러운 사교계 리더이기도 합니다. 쉴 새 없이 떠드는 그의 입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자들(혹은 레닌주의자, 스탈린주의자)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데올로기에 대해 무지하고, 큰 관심도 없습니다. 하지만 사고의 틀에 따라 비슷한 상황을 얼마나 다르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자이체프의 지적인 수다를 들으며 교양을 쌓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르윈터의 망명>은 개인적으로 좀 심심했습니다. 고상하기는 하지만 고급스럽다고 하기엔 부족하고, 스파이 소설 특유의 비정함이 담겨있지만 르카레의 작품만큼 강렬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긴장과 서스펜스는 미약하고요. 여러모로 심심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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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7-31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장과 서스팬스가 미약한 작품이면 여름철에 읽기는 좀 그렇겠네요...
lazy devil님의 날카로운 비평은 가차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