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공포소설이라는 장르는 짧을수록 효과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공포 체험은 일종의 충격이고 전율입니다. 그런데 이 놈은 파급효과도 큰 반면 쉽게 흩어지고 둔감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비슷한 자극이 반복되면 그 강도가 떨어지기 마련이죠. 일종의 면역력이 생긴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섬뜩한 공포를 불러일으킨 공포소설을 돌이켜보면 대부분 중·단편들입니다. 물론 장편 중에서도 훌륭한 공포소설이 있죠. 하지만 그 작품에는 다른 무언가가 더 있습니다. 즉 충격 요법만으로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요소들로 독자들의 관심을 잡아두거나 공포를 배가 시킵니다. 스콧 스미스의 <폐허>는 공포를 불러일으킬 만한 좋은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소설의 장점은 그것뿐입니다. 멕시코 휴양지로 여행을 간 미국 젊은이들은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의 동생을 찾으러 오지 마을로 떠납니다. 하루 나절 색다른 경험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뜻밖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바로 밀림 한 가운데 고립된 것이죠. 그리고 무언가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칩니다. <폐허>는 무려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입니다. 하지만 그 많은 페이지를 메우고 있는 것은 반복되는 상황과 비슷비슷한 갈등뿐입니다. 꼼꼼한 세밀한 묘사는 등장인물을 둘러싼 분위기와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기에 별 감흥이 없습니다. 아니 이미 벌어진 일을 반복해서 묘사하고 있기에 점점 흥미가 사라집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가지고 있다면 거기에 걸맞은 컨텐츠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노련한 설발투수가 다양한 구질이나 완급조절, 패턴의 변화로 타자를 상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한 두 가지 구질로 한 두 이닝을 소화하는 불펜투수와는 분명히 다른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스콧 스미스는 고집스럽게 한 두 가지 컨텐츠로만 500페이지를 소화합니다. 그렇다고 그 공이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큼 위력적인 것도 아닙니다. 쓸만하지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솔직히 지루하게 읽었습니다. 스콧 스미스가 누구처럼 컨텐츠 부족으로 떨어지는 긴장감을 탁월한 입담으로 때울만한 ‘글빨’을 가진 작가도 아닌 지라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읽는 내내 <폐허>의 문제점에 대한 나름의 처방을 내려봤습니다. 전체 분량에서 삼분의 일 정도를 후딱 들어내고, ‘식물’(스포일러!!)에 대한 가공한 사연을 심어주면 어떨까? 아니면 아예 절반 정도로 줄이면 ‘식물’에 대한 미스테리가 더욱 충격적이지 않을까? 잔인한 독자는 언제나 제 멋대로 상상하고 결론 내기를 좋아하니까요. 그런데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든 <폐허>를 찾아보니 상영시간이 91분이더군요. 짧은 상영시간을 보니 호기심이 생기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