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는 입담이 뛰어난 작가가 아닙니다. 미문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성 있는 문체로 독자를 사로잡는 작가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크리스티는 추리소설 작가답게 매 작품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독자와 만납니다. 아이디어가 크리스티 작품의 생명이죠. 솔직히 그녀의 작품을 읽다보면 아이디어 빼면 평이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물론 종종 매력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다른 작가들에 비해 출중하게 압도적인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크리스티는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다지 큰 고민 없이 술술 작품을 써낸 작가인 듯 합니다. 부담 없이 글쓰기 자체를 즐기는 유형의 작가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그만큼 크리스티의 문체는 사뿐사뿐 거리는 맛이 있습니다. 기괴한 살인현장을 다룰 때조차 크리스티 특유의 경쾌함이 느껴집니다. <부머랭 살인 사건>도 작지만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여느 작품에 비해 유독 편안한 마음으로 쓴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크리스티는 이 작품을 걸작이나 역작으로 남기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을 겁니다. 그냥 떠오른 아이디어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발전시키는 것을 즐기자! 그것으로 충분해! 뭐 이런 기분으로 쓰지 않았을까요?(추측은 독자의 자유이자 행복한 권리입니다.^^) 작품의 원제 ‘그들은 왜 에반스에게 묻지 않았을까?’가 바로 이 작품의 유리알 유희같은 아이디어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한 남자가 남긴 마지막 말이 바로 이 작품의 원래 제목입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실족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죽기 전에 왜 이런 뜬금없는 한마디로 남기고 죽었을까요? 정말 궁금하지 않나요? 궁금증에 못 이겨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새 작품은 끝이 나고 맙니다. 크리스티의 미끼에 완전히 걸려든 셈이죠.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을 읽을 때 범인이 누구인가에 그다지 큰 호기심을 느끼지 않는 편입니다. 의외의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편이죠. 이런 저에게 꼭 들어맞는 작품은 아니지만 끝까지 흥미를 가지고 읽기에 충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