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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 (완전판) -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1926년에 출간된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가 지금까지도 대단한 명성을 누리고 있는 이유는 범인의 정체를 둘러싼 트릭 때문입니다. 크리스티의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인데, 말 그대로 ‘트릭(trick,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사기행각의 대상이 살인사건과 관련된 범죄뿐만 아니라 다른 곳(!)까지 확장시켰다는데 재미(혹은 의미)가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언급은 책읽기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어 그만하렵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가 흥미로웠던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크리스티의 ‘속임수’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 작품의 핵심 트릭은 출간 당시의 파괴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범작 이상으로 명맥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은 탐정 푸아로와 용의자들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용의자들은 하나같이 사실을 말하는 것을 꺼려합니다. 물론 범인도 당연히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끝까지 거짓말 게임을 하죠. 푸아로는 용의자들의 진실과 거짓말을 하나씩 풀어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범인의 밝혀내죠.
용의자들이 사소한 거짓말을 하거나 사실을 100% 밝히지 않는 데에는 저마다 이해할 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거짓말이 하나 둘 모여 뒤엉키자 살인사건을 둘러싼 명확한 사실이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고 맙니다. 용의자들이 한 거짓말들의 틈바구니에 은근 슬쩍 숨은 거죠. 덕분에 범인을 수사한 멍청한 경관과 저처럼 어수룩한 독자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워합니다. 진작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눈치를 채고 결정적인 단서를 쫓는 푸아로가 모든 거짓과 진실을 가려줄때까지 꽤나 답답하면 말입니다.
용의자들이 범인을 감싸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은 한 가지씩 있고, 그것을 감추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사소한 거짓말들이 사건을 미궁에 빠트린 거죠. <오리엔트특급 살인사건>도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상황 때문 사건이 미궁에 빠지죠? 아니 비슷한 상황이지만 전혀 다른 의도였던가요? 확인해봐야겠네요. 아무튼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누구나 비밀은 있고,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는 인류의 역사상 가장 보편적인 진리를 흥미롭게 이용한 작품입니다.
참,참, 주인공의 누이로 등장하는 캐롤라인이라는 아줌마!를 빼놓을 수 없네요. 생각만해도 웃음이 나오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