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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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는 재미있고 유쾌하지만, 어쩐지 뒷맛이 개운치 않은 소설입니다. 그 이유는 작품의 모호한 ‘색깔’ 때문입니다. 뜬금없이 무슨 시대착오적이고 짜증스러운 ‘색깔론’이냐고 타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쪽으로 튀어!>를 읽는 내내 ‘그래서 오쿠다 당신은 어느 편인데? 왼쪽이야? 오른쪽이야? 아니면 중간이야? 것도 아니면 도대체 뭔데?’라는 의문으로 어리둥절했습니다. 마치 주인공 지로처럼 말이죠.

‘책소개’에도 나와 있듯 <남쪽으로 튀어!>는 정치 혹은 권력 놀음에 찌든 어른들의 세계에 진입하기 직전인 14살 지로의 이야기입니다. 지로는 과격파 좌익 운동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뜻하지 않게 이른 나이에 ‘이념’과 조우합니다. 무정부주의자가 된 아버지를 비롯하여 공안, 좌파 운동가, 극우 운동가, 반정부 환경단체, 시대 순응자, 방관자, 떠돌이 아웃사이더 등 실로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깔의 사람들을 만나죠. 당연히 지로는 그들과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동안 조금씩 성장하게 되죠. 그러니까 <남쪽으로 튀어!>는 이른바 ‘성장소설’이네요.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정치적 인간’들이 하나같이 우스꽝스럽다는 겁니다. 물론 좌/우/중앙/아웃사이더/순응자 모두 골고루 우스꽝스럽게 그려졌다면 큰 불만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균형감각을 어째 흐리멍덩합니다. 극우세력은 매우 단편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으로 간단하게 ‘바보’로 만듭니다. 반면 좌파 세력은 매우 다양하고 구체적인 일화로 ‘바보’로 만들죠. 씽긋 웃으며 ‘메롱~!’하는 어투로 말입니다.

14살 지로가 본 세상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정치적 인간들로 가득한 바보왕국인가요? 그런 바보짓거리를 하는 사람들은 어리석기만 하고 개인적인 아픔 따위는 없을까요? 전복인가요? 투쟁인가요? 아니면 순응인가요? 방관인가요?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상향을 찾아 저 멀리 떠나야 하는가요? 글쎄 작가의 목소리는 그 어느 것도 아닌 것 같던데요.

<남쪽으로 튀어!>는 분명 재미있고,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하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가의 태도에는 불만입니다. 그 어정쩡한 태도 때문에 손을 내밀고 적극 동의하기도 어렵고, 대놓고 비판하며 싸움을 걸기도 힘듭니다. 재치 있는 캐릭터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가득하지만, 지극히 표면적이고 어정쩡하며, 자기 방어적입니다. 마치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바꿔 말하면, 누구한테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얄밉도록 영악한 초등학생을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재미있으면 그만 아니냐고요? 그러기에는 너무 묵직한 소재를 택한 것 같습니다. ‘순응자’인 저를 포함해서 세상 모두를 이렇게 무책임하게 바보로 만들 권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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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4-1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도 재미있게 읽을 책이에요^^
한동안 안보이시더니, 멋진 서평으로 돌아오셨네요~
지금까지 읽은 lazy devil님 서평중 최고입니다!! 성장소설로 바라보신 것도 공감합니다.
갑자기 다시 읽고 싶네요^^

lazydevil 2008-04-15 11:46   좋아요 0 | URL
반갑게 맞아주신 거 감사합니다. 근데 너무 과찬이시네요. 헐~~^^

쥬베이 2008-04-18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쿠다 히데오, 좋아하는 작가이긴 한데...
<오 수다>에선 독도관련 이상한 소리를 하더군요ㅋㅋㅋ 이 사람!!

lazydevil 2008-04-19 14:05   좋아요 0 | URL
그래요? 작가의 정치 혹은 역사관이 궁금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