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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울린다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94
제임스 M. 케인 지음, 박기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평점 :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번 울린다>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제야 이 작품을 보게 되었을까요?
이 책에는 (고맙게도) 두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와 <이중보상>이 그 작품이죠. 모두 작가의 매력이 듬뿍 담겨 있는데, 시간의 간극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뛰어납니다.
제임스 M. 케인이 1934년에 쓴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는 어둡고 파괴적인 욕망으로 점철된 작품입니다. 챈들러는 케인을 ‘더러운 것을 더럽게 쓰는’ 작가라고 헐뜯었다고 하는데 작품을 읽어보면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이 소설은 파렴치한 밑바닥 인생이 날생선처럼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펄떡거리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니까요. 개인적으로 챈들러를 좋아하지만 케인에 대한 그의 험담은 ‘질투’의 다른 얼굴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 프랭크와 콜라는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진부한 비유지만 화려한 유혹을 거부하지 못하고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인물들입니다. 윤리와 도덕을 저버린 이들의 거침없는 행태가 때론 거북살스럽고 불쾌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쉽게 책장을 덮을 수 없는 이유는 파멸의 길을 걷는 어리석은 두 주인공에 대한 공감과 동정심 때문입니다.
아무리 윤리와 도덕으로 중무장을 한다고 해도 인간의 내면에는 어둡고 저속하며 끈적거리는 무언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프랭크와 콜라의 반사회적이며 부도덕한 행위는 우리의 이성과 도덕관념을 자극하여 불쾌감을 느끼게 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어두운 욕망을 일깨웁니다. 그들이 저지른 짓을 사회적으로는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내면에 숨어있는 욕망의 목소리는 두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심지어 추락을 목전에 둔 그들의 몸부림을 동정하기까지 합니다. 독자인 저는 주인공들의 파렴치하고 더러운 게임에 복잡한 심정으로 최후까지 끌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힘이 넘치는 간결한 문체로 주인공들의 심리를 강렬하게 묘사하는 케인의 솜씨도 한몫을 했죠.
함께 실린 <이중보상>은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와 형제 같은 작품입니다. 솔직히 뜻하지 않게 불성실한 책읽기를 했는데도 대단한 흡입력으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중보상>의 주인공 허프는 프랭크처럼 작정을 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을 택합니다. 다만 허프는 프랭크와 달리 좀더 절제되고 담담한 태도로 욕망과 손을 잡습니다. 철저한 준비로 완전범죄를 꿈꾸지만 우리의 삶에는 예기치 않은 변수가 존재하죠. 아무리 철저히 수읽기를 한다고 해도 운명이 계획한 길을 완벽하게 읽어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은 이것마저 알고 있는 듯합니다. 이런 주인공이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는 무려 네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그중 1980년대 초반에 제작된 잭 니콜슨과 제시카 랭 주연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는 꽤 잘 알려진 작품이죠. 이 책의 표지로 쓰인 영화 스틸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보다 1942년작 <강박관념>이 더 유명하죠. 이 작품은 이탈리아의 거장 루치노 비스콘티의 전설적인 데뷔작으로 지금도 회자되는 작품입니다. 케인이 쓴 원작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주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아무튼 그런데도 전 케인이 쓴 원작은 물론, 영화로 제작된 네 편의 작품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제가 그동안 뭘 읽고, 뭘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그물망이 참으로 성기긴 성긴 모양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늦었지만 케인의 원작을 읽었습니다. 원작만 읽고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은 그냥 ‘통과’할 생각이었죠. 그런데 이게 웬걸, 작품을 다 읽고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늦었지만 비스콘티의 <강박관념>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뒤에 실려 있는 <이중보상>(<이중배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리 와일더가 연출하고 레이먼드 챈들러가 각색한 영화 <이중배상>도 꼭 찾아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