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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타 행진곡 - 제86회 나오키 상 수상작
쓰카 고헤이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가마타 행진곡>는 시종일관 경쾌하고 활기찬 작품입니다. 우선 등장인물이 모두 그렇습니다. 중심인물인 긴짱은 물론이고, 화자인 야스와 고나쓰도 심각하고 진지한 것을 애써 외면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둘러싼 상황이 녹녹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야스와 고나쓰의 삶은 암담하기 짝이 없고, 긴짱의 미래는 위태위태하기만 합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웃고, 떠들며, 억지 미소를 지으며,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다독거립니다. 물론 상황은 점점 악화 일로를 걷고, 마음 깊은 곳에 쌓인 응어리는 당장이라도 웃고 있는 얼굴 위로 삐죽 튀어나올 듯 합니다.
책소개에 잘 요약된 것처럼 <가마타 행진곡>은 배우들의 이야기입니다. 위태위태하지만 어쨌든 기회를 잡은 주연배우 긴짱, 한때 잠시나마 빛을 봤던 여배우 고나쓰, 엑스트라만 10년째인 만년 단역배우 야스의 이야기죠. 작가는 그들의 일상이 정말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마치 실제 인물을 만나는 것처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전형적인 ‘비호감’ 캐릭터인 긴짱과 어리석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는 인물인 야스, 도무지 동정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한심한 여자인 고나쓰를 이해할 순 없지만, 미워할 수도 없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죠. 이 만큼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출중한 능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마타 행진곡>의 또 다른 장점은 뛰어난 ‘대사’입니다. 본업이 희곡작가이자 연극 연출가인 탓인지, 이 작품의 ‘대사발’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단문으로 무장한 인물들의 대화는 참기름을 발라놓은 듯 구수하고 매끈하게 이어집니다. 정말이지 그 묘미가 있습니다. 작품의 말미, 야스가 뱉어내는 서너 페이지에 거친 긴 술주정은 그야말로 압권인데, 작가의 솜씨가 번뜩이는 순간이죠.
그런데, 너무 짧습니다.(대략 원고지 600매 분량? 장편소설의 커트라인을 겨우 넘긴 수준입니다.) 좋은 캐릭터와 흥미로운 설정, 재미있는 해프닝이 계속 벌어지는데...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쉽게 와 닿지 않습니다. 이걸 분량의 문제로 치부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하지만 뭔가 훅이 없이 어물쩍 이야기는 끝나버리고, 기억에 남는 것 앞서 침이 튀게 칭찬한 생생한 인물들뿐입니다. 그러니까 책장을 덮는 순간, ‘그런데 이 사람이 뭘 한 거지? 이제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되어야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드의 시즌 파일럿을 보고 난 직후처럼 재미는 있는데 감질 나는 느낌 있잖아요.
아래 리뷰를 보니 긴짱의 캐릭터를 무척 싫어하시는 분이 적지 않더군요. 심지어 화가 난다고 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긴짱이 비호감이라는 것은 동의합니다. 현실에 이런 인간이 곁에서 절 괴롭힌다면, 진지하게 살인을 고민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이고, 이 작품이 코미디인 관계로, 용서할 수 있고, 오히려 사랑스러웠습니다. 나쁜 놈, 그러나 미워하진 않겠다. 뭐 그런 감정인거죠. 아무튼 다행이야, 긴짱을 현실에서 만나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