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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 An Inspector Morse Mystery 1
콜린 덱스터 지음, 이정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하루에 맥주 3천cc와 담배 한 갑반을 착실히 해치우고, 일주일에 위스키 3병을 거르지 않는 생활양식을 고집하는 모스 경감. 결국 위궤양과 위출혈로 병원신세를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은 돌연 병원에 입원하게 된 모스 경감의 흥미진진한 병원생활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아시다시피 모스 경감은 마음에 드는 여성이라면 나이를 불문하고 데이트 허락을 얻어낼 수 있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50대 독신남입니다. 옥스퍼드 일대에서 가장 유능한 형사이면서, 바그너를 사랑하고, 출중한 십자말풀이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샬롯 브론테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련해질 정도로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이니 그럴 만도 하죠. 하지만 실상은 타블로이드 잡지의 가십 기사는 물론 때때로 도색잡지도 즐겨 읽을 뿐 아니라,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열 여자 마다하지 않는 바람기 다분한 주책남이기도 합니다.
이런 모스가 병원에서는 어떻게 지내냐고요? 제 버릇 어디 가나요? 무서운 수간호사의 감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건 수사, 연애, 독서, 십자말풀이, 게다가 위스키까지!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않고 치밀하고도 은밀하게 즐기는 모스 경감. 그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모스가 파헤치는 사건은 120년 전 옥스퍼드 운하를 오가는 배 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미결사건도 아닙니다. 사건 직후 체포된 세 명의 용의자가 잡혔고, 그 중 두 명에게 교수형이 언도되었죠. 모스는 우연히 이 사건을 다룬 책을 읽다가 의문점을 발견합니다. 결국 과거 자료를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하여 숨겨진 진실은 밝혀냅니다.
모스가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은 정말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는 듯 합니다. 사건과 관련된 증인이나 용의자를 만나는 것은 불가능 한 터. 사건과 관련된 먼지 날리는 자료들만으로 진실이라는 모자이크를 완성하지요. 물론 이 자료를 구하기 위해 직위를 이용하여 동료 형사 루이스를 부려먹고, 미남계(?)로 미모의 도서관 사서의 발품을 팔게 하죠.
기록에만 의존해 오래전 발생한 사건을 해결하는 설정 탓인지 긴박감이나 극적 몰입은 약합니다. 하지만 작품 전체의 재미와는 별개인 것 같습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료 형사 루이스를 부려먹고, 틈틈이 어여쁜 간호사들에게 수작을 걸며, 도서관 사서와 벌이는 미묘한 신경전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솔직히 십자말풀이같은 살인사건은 여기에 양념으로 추가된 듯한 느낌입니다. 이 모든 것인 병원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한 모스 경감의 ‘혼자 놀기 놀이’의 일부들인 셈이죠.
모스 경감의 ‘혼자 놀기 놀이’를 지켜보는 거, 즐거웠습니다. 심지어 키득거리며 웃기까지 했으니 만족한 셈입니다.
참, ‘불쌍하고 착한 샬롯’이라고 뇌까릴 정도로 모스의 가슴을 언제나 아련하게 만든다는 샬롯 브론테. 갑자기 브론테 자매의 작품이 읽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