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든발 12시 30분>을 흔히 도서추리물이라고들 하죠. 여느 탐정소설과는 달리 범인이 사건을 저지르는 과정을 먼저 보여주고, 완전범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덜미를 잡히는 구성이죠. 범인이 누굴인지 조급증을 내곤 하는 독자, 혹은 논리적 사건 수사의 묘미보다는 살인사건을 얽힌 심리적 서스펜스를 즐기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장르인 것 같습니다. 크로프츠의 <크로이든발 12시 30분>이 도서추리라는 장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와 별개로 책장을 덮은 첫 느낌은 심심하다는 겁니다. 범인의 심리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완전범죄를 위한 계획이 놀랍다거나 치밀하지도 않습니다. 범죄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범행동기도 밋밋하고요. 2차 범죄는 다소 우발적이기도 해요. 다행히 깔끔하고 속도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말미에 실려있는 해설을 보면 도서추리라는 장르가 오스틴 프리먼의 <노래하는 백골>(1912년작)에서 처음 실험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 찰스의 심경을 드러내기 위해 오스틴 프리먼의 작품에 대해 언급하기도 합니다. 이걸 보면 프리먼의 작품이 이후 등장한 도서추리 형식의 범죄물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한 듯 합니다. 그런데 전 아무래도 도서추리라는 형식이 <노래하는 백골>이 아닌 <죄와 벌>의 영향 아래 있지 않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품의 주인공 찰스가 살인을 저지르기로 결심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겪는 심경의 변화나 죄의식, 수사과정의 압박에서 겪는 분열 등이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와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게다가 <죄와 벌>이 1866년에 발표된 작품이잖아요. 뭐 제가 <노래하는 백골>을 읽지 못했고, <죄와 벌>이 살인과 죄의식을 다룬 최초의 소설도 아니기에 개인적 오해로 그치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오해를 한 이유는 이 작품을 읽기전에 도서추리라는 형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 때문인 것 같습니다. <크로이든발 12시 30분>은 1934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작품 탓인지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읽는 내내 시대적 간극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보다 앞서 출간된 해밋의 <몰타의 매>나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전혀 그렇지 않은 것과도 비교가 됩니다. 하긴 새로 번역된 작품보다 동서 시리즈는 유난히 골동품 냄새를 많이 풍기는 것 같습니다. <몰타의 매>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새로 번역 출간된 작품으로 읽었거든요. 한가지 덧붙이면, 이 책 어디를 뒤져봐도 작가인 크로프츠의 온전한 이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크로프츠는 아일랜드 출신이고, 온전한 이름은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Freeman Wills Crofts), 1879년에 태어나서 1957년에 사망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