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혼징살인사건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83
요꼬미조 세이시요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평점 :
이 책에는 요코미조 세이시가 쓴 두 편의 추리소설이 실려있습니다. 표제작 <혼징살인사건>과 <나비부인 살인사건>입니다. <혼징살인사건>은 약 180페이지 분량이고, <나비부인 살인사건>은 210페이지 분량의 작품입니다.
<혼징살인사건>은 일본식 전통가옥에서 벌어진 밀실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그 유명한 탐정 긴다이찌 고스케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이랍니다. 하지만 제 관심을 끈 것은 밀실살인에 관한 트릭이나 긴다이찌 고스케의 캐릭터가 아닌 요코미조 세이시의 글쓰기 스타일이었습니다.
<혼징살인사건>은 이야기속 이야기 형식의 작품입니다. 작중 화자는 미스테리 소설가입니다. 그는 혼징가문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여러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해갑니다. 그렇다고 화자가 전면에 들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 사건이나 인물에 주석을 다는 수준으로 슬며시 끼어들죠. 마치 자신이 실제 있었던 사건을 소설로 쓰는 듯 말이죠. 보르헤스의 소설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기법이죠.
이런 특징은 <나비부인 살인사건>도 비슷합니다. 다만 <나비부인 살인사건>에서는 작중 화자가 신문기자이고, 자신이 취재한 사건을 미스테리 소설로 재구성한다는 것을 명확히 밝히며, 이야기속 주변 인물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홈즈 시리즈의 왓슨처럼 말입니다. 게다가 <나비부인 살인사건>에서는 사건의 용의자 중 한 사람이 쓴 수기를 시쳇말로 쌩으로 인용합니다. 이런 기법은 등장인물의 심리적 상황을 쫓아가는 데에는 분명히 방해가 되는 요소입니다. 하지만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단서를 여러 시각으로 보여준다는 면에서 작가가 노리는 지적 미스테리와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이후 작품들도 비슷한 기법을 이용하는지 궁금해지는군요.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요코미조 세이시가 모범으로 삼은 미스테리 소설 작품을 노골적으로 언급한다는 점입니다. <혼징살인사건>의 경우 등장인물이 <노랑방의 수수께끼>이나 <모자수집광사건>, <프레이그 코트 살인> 같은 작품을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나비부인 살인사건>에서는 이야기가 절정에 다다를 즈음 앨러리 퀸의 미스테리 소설의 예를 들며 독자에게 뜬금없다 싶을 정도로 느닷없는 제안을 합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전에 사건의 진실을 추리해보라는 거죠.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가로서 자신감과 배포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이 작품들이 요코미조 세이시의 초기작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 패기가 놀랍습니다. 역시 대가답습니다.
두 작품 모두 특별히 정교한 트릭이 돋보이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거칠고 투박하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럼에도 <혼징살인사건>은 흥미로웠습니다. <나비부인 살인사건>은 <혼징살인사건>에 비해 좀 장황하고 산만하달까요... 아무튼 별(★) 하나는 <나비부인 살인사건>이 까먹은 것은 분명합니다.
사족 덧붙이면, 이 책의 표지말죠... 홀라당 벗은 여인네가 묘한 자세로 콘트라베이스 케이스 속에 들어가 있는 그림말이에요. 역시 동서미스테리 시리즈! 다시 한번 오가며 지하철에서 읽기 민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