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투혼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양준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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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가즈오
불타는 투혼

 

이나모리 가즈오 / 양준호 옮김 / 한국경제신문 /215

 

일본에는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나모리 가즈오, 마쓰시다

고노스케, 혼다 소이치로 보통 이 세사람을 든다. 너무나 유명한 인물들이고

특별히 경영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인생을 본받고 싶어지는 인물들이다.

이책은 그중 이나모리 가즈오가 쓴 경영론이다. 그것도 나이가 들대로 든 최근에 새롭게 쓴 책이다. 그는 1932년생이다.


일본에는 워낙 신급의 경영자들이 많은 듯 한데 경영이론은 모르지만 일본과

미국의 경영스타일은 전부터 많이 달랐다. 우리나라에 미국 MBA가 들어오고

인기를 누릴무렵은 인간관계와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식 경영이 물러나고 새로운 기법과 통계로 무장한 서구경영이론이 판칠 때였다. 그러다 미국식 경영이

퇴조하는 기미가 보이고 다시 일본식 경영방법이 조명되는 시기도 있었다.

경영이란 결국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기 때문에 지역의 정서와 문화가 결합된

그 나라만의 방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경영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리더십인데 미국식 최신 경영이론을 아무리 들여온들 권위주의와 독선이 밴

우리풍토에서 경영자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는한 결과는 마찬가지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새 책이 주는 공감은 이런 점에서 비롯된다. 그는 경영기법이나 이론을 전혀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최신의 분석으로 돈을 버는 신개념

금융자본주의를 비판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일에 임하는 사람의 마음자세다.

경영자나 근로자가 다른 마음이라도 안된다. 모두 한마음으로 일을 이루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일러 불타는 투혼이라고

부른다. 책의 제목이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누구인가. 세라믹회사인 교세라를 창업하여 세계굴지의

기업으로 만들고 KDDI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노년에 도산에 직면한 일본항공

(JAL)을 무보수로 맡아 3년만에 흑자전환을 이뤄낸 진짜 경영의 신이다.


삼성전자의 스승이었던 소니를 비롯한 일본의 전자회사들은 지금 명맥을 걱정할 정도가 됐다.  한때 과학적 신경영의 표본같던 도요타는 부침을 거듭했다.

경영신의 이념을 계승한 마쓰시다 - 내쇼날은 어떠한가. 소니가 거의 몰락한

반면 내쇼날은 현재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이나모리나 마쓰시다는 어떤 점이

다를까.

회사의 주인은 누구일까. 구미에서 이런 질문은 답이 정해져있다. 바로 주주다.

한국도 거의 이렇게 생각한다. 이나모리나 마쓰시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주주보다 고객보다 종업원이 우선이다. 직원을 가족처럼 여기고 불황기에도

정리해고를 단행하지 않았다. 모두 한마음이 되고 경영자의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을 해냈기 때문에 성공한 기업가가 되는

것이다.

 

책은 6장으로 구성되었다. 이나모리의 경영이념이나 가치관이 나와있고 

교세라의 경험담이 약간, 일본항공의 역전 사례가 약간 들어있다.

저자의 주안점은 반드시 이기겠다는 강한 의지다. 불황에 맞서서 이겨내려는

의지를 불타는 투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마음가짐에는 분명한

목표 목적의식이 있어야한다고 본다. 그것은 이익을 내겠다는 금전적인 목표가

아니고 대의(大義)를 추구하는 것이다. 올바른 윤리관을 가지고 사람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이야기

처럼 들리는 덕으로 경영하라든가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라든가 사람의 마음을

바꾸라든가 하는 주장이 실려있는데 이것이 구름잡는 소린지 아닌지는 직접

읽어봐야 안다. 회사는 망해도 거액의 연봉이나 퇴직금을 챙기는 월가의 경영자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자본주의의 본모습이 이익이 아닌 직업소명설에 있음을

주장하고 세상을 위한 도전에 나설 것을 권한다.

 

결국 노경영자의 주장은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인데 최근의 경영서에 나온 흐름과 다를바 없다. 원칙과 초심이 모든 것에 앞선다. 어떤 것을 원칙으로 삼을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나모리처럼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이나모리 가즈오는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박사의 넷째 사위라고 하니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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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의 진실을 밝힌다 - 개정판
최문형 지음 / 지식산업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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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시해의 진실을 밝힌다   

최문형 / 지식산업사  / 2001년판

 

1988년 쓰노다 후사코의 <민비시해>가 한국에서 출간되고 1992년 최문형교수와 몇몇 학자들이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라는 논문집을 출간했다. - 쓰노다 후사코의 <민비시해>는 그뒤 1999년 제목을 바꿔 <명성황후; 최후의 새벽>이라는 책으로 재발행되었는데 현재 이도 절판되었다. - 그후 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져 현재까지 많지는 않지만 여러종의 연구서들이 간행되었다. 이 책은 2001년 최문형교수가 종합적이면서 체게적인 논지로 저술한 연구서인데 학술서의 모양을 갖춘 대중서이다.  많은 주석을 달았지만 모두 미주로 돌려 읽는데 신경쓰이지는 않다.


이 책의 논지를 간추려 말하면,  왕비시해사건은 일본공사 미우라의 단순하고 과격한 성격탓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깡패들이 난입해 벌어진 우발적 살인도 아니다. 불안정한 국내외 정세속에서 왕권의 안정을 이루지 못하던 고종과 민왕비가 러시아와 일본의 각축전에 말려들어 인아거일(引俄拒日)을 하려다가 일본정부의 교묘한 계획하에 이루어진 국제범죄사건이다.


학술서를 표방하지는 않았으므로 이책에서 최문형교수는 민왕비에 대한 애정을 곳곳에서 표현하고 있다. 때문에 민씨척족세력의 폐해상을 거의 서술하지 않았다. 민씨정권에 대한 상황표현도 “무능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실제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하여 상당히 동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비참하게 살해딘 왕비에 대한 동정심일수도, 왕후의 비범한 능력과 남자를 능가하는 결단력을 아까워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일국의 왕비가 국제관계 파워게임의 희생양이 되었으니 제대로 된 나라라면 있을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국제관계 정책의 운용과 조정을 국왕도 아니고 신료도 아닌 황후가 전면에 나서 행사해야만 될 이유가 있었던가? 그렇다고 뚜렷한 철학이나 어떤 혜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인재를 키운 것도 아니다.  오직 시아버지 대원군에 대한 반감과 원한이 민왕후 집권의 원동력이었다. 고종은 대체 뭘하고 있었을까?     

 

이 책에서 알수 있는 사실들

 

근대 일본은 사쯔마번(가고시마현)과 쵸슈번(야마구치현) 양대 세력의 대결장이다. 양대 지역의 벌족과 무사가 근대 일본을 확립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도모, 이노우에 가오루는 모두 쵸슈번 출신의 동지였다.

 

1894년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요동반도와 타이완을 강제로 할양받았으나 곧바로 러시아 주도로 독일과 프랑스가 함께한 삼국간섭에 부닥친다.  이때 청일전쟁당시 내무대신이던 이노우에가  조선 공사를 자청 자진강등되어 조선으로 부임한다. 이토오 내각의 외무상이던 무스 무네미쓰는 폐질환으로 직책만 유지한채 공무에서 물러나고 문부상인 사이온지 긴모치가 외무상을 대리한다.


1895년 7월 이노우에가 귀국하고 미우라 고로가 차기 조선공사에 내정된다. 삼국간섭으로 러시아의 힘을 체감한 민왕후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는 인아거일책을 본격화한다.  즉 3차 김홍집내각에 이범진등 친러파를 대거 기용하고 일본이 추천한 박영효를 왕비암살음모를 씌워 실각시킨다. 이노우에는 즉시 박영효를 일본으로 도피시키는데  이것이 모두 이노우에의 치밀한 계략이었다. 박영효가 일본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이노우에는 두가지 방책을 이토오 내각에 제시한다. 하나는 후임공사에 왕후와의 교제가 능한 이를 임명하는 순리적 방법, 하나는 민왕후를 제거하는 강경책이다. 이노우에는 군인출신 미우라를 공사에 추천했고 내각은 7월22일 미우라를 후임공사에 내정한다.(8/17 정식임명)  미우라는 자신이 적임자일수 없음을 밝히며 수차례 수락과 사퇴를 번복한다. 이는 시해가 미우라 단독일수 없다는 반증이다. 미우라 역시 쵸슈번 출신으로 일본내각의 실력자들이 고심한 인선임을 알수있다. 미우라는 부임 17일만에 시해사건을 벌이는데 각본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이토오, 야마가타, 이노우에는 천황을 보좌하는 최고결정권자집단인 7인 원로회의의 구성원이다. 이 때문에 일본정부차원의 개입이라 말할 수 있다.


<민비시해>의 저자 쓰노다 후사코는 시해사건의 일본정부 개입설을 부인한다. 즉 일본정부의 대한 정책 총수는 외상인 무쓰 무네미쓰라고 한다. 그러나 무쓰는 1895년 6월 5일 직무에서 손떼고 요양중이었고 더더욱 이노우에가 조선공사로 부임한 1894년부터는 아예 조선정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있었다. 즉 내무상출신 이노우에가 조선문제에 관한한 전결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상 무쓰가 시해에 직접 가담한 오카모도 류노스케로부터 나중에 보고를 받고서야 그 전모를 알았으니 정부차원의 시해는 아니라는게 쓰노다의 교묘한 주장이다. 아마도 자신의 목적과 구미에 맞는 자료만 골라 보았던것 같다. 이 쓰노다의 저서에 우리나라 독자와 지식인까지 농락당했다.

 

낭인은 깡패나 부랑자가 아니다. 낭인이란 비정치적 민간인으로서 대륙에서 정치적 활동을 하는자이며 우익의 대륙 침략론자가 그들이다. 즉 현양사나 흑룡회가 그들의 단체이다. 시해 계획을 짜고 직접 가담한 시바 시료는 하버드대학과 펜실베이니아대학을 졸업한 일본 최고 지성인의 하나다.

 

사건후 영국영사에게 증언한 4인중 2인은 왕후가 일인들의 칼에 희생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궁녀, 희생된 왕후의 시신을 확인한 늙은 여의다.  또 시신을 목격한 시위대 장교와 시신을 불태우는 장면을 목격한 궁중 하인도 있다. 다만 누가 왕후를 직접 칼로 찔러 시해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시해과정에서 일부가 왕후의 시신을 능욕하는 듯한 만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있으나 더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런 일이다.


아관파천은 고종의 계획이나 주도가 아닌 러시아공사 스페이에르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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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이야기 - 논픽션 대한제국의 비극
유홍종 지음 / 해누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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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명성황후이야기
논픽션 대한제국의 비극   유홍종 / 해누리

 

제목은 논픽션이라 했지만 소설의 형식을 빌어 명성황후 이야기를  썼다. 그러나 한마디로 이 책을 평한다면, ‘뭐가 뭔지 모르고 쓴 책’이라 하겠다. 1999년에 초판이 나오고 2007년에 개정판이 나왔는데 무엇이 달라지고 추가된 것인지 서문에 전혀 밝히지 않았다. 내 생각엔 추가된 사실이 전혀 없는 듯 하다.

 

소설가의 상상력은 때로 역사연구자를 놀라게 한다. 소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독서와 자료수집 뿐만 아니라 그 질과 깊이 역시 만만찮은 것이기 때문이다. 저 월탄 박종화 이래 근래 최인호,이인화,김탁환 등등 언뜻 생각나는 이름 외에도 역사소설을 다룬 많은 작가들이 있어왔다. 그런데 유홍종은 아닌 듯 하다. 그러다보니 이 책은 소설도 아니고 논픽션도 아닌 정체불명의 글이 되고 말았다.
 
저자는 고종연간의 경제피폐를 대원군의 폭정 탓이라고 한다. 국고가 고갈된 것은 경복궁 중건 때문이고 매관매직은 대원군 집정기에 있던 사실이고 관리 양반들의 서민에 대한 약탈,착복,횡령이 경제파탄을 가져왔다고 한다. 이 사람은 역사공부를 어디로 했나?  여흥민씨 집사라도 된 것일까?

 

민왕후가 일본에 의해 피살된 사실만 강조하고 민씨 척족의 횡포와 폐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고종과 민왕후가 개국을 선택했지만 그에 따른 개혁 개방의 의지나 능력, 정책이나 기관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임오군란의 원인, 동학봉기의 원인은 서술하지 않았고 갑신정변의 과정은 상세하게 다루면서도 민중들의 태도, 반감의 이유는 전혀 없다.

 

이 책의 핵심이라 할 민왕후의 피살 원흉이 누구인지도 모호하다. 미우라와 오카모도 등의 개인적 활동에만 치중하고 일본정부 관련설은 너무나도 소략하다. 이것이 소설가의 한계인가, 유홍종의 한계인가.  한번 나쁘게 보니 표현에 있어서도, 외곽을 외각이라 쓰고 옥새를 옥쇄로 쓰는 등 맞춤법을 어긴 표현까지도 매우 눈에 거슬린다.

 

민비시해사건을 보통 우리는 을미사변이라 부른다. 요즘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라 부른다.  명성황후란 호칭은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후 내린 시호이니 그 이전은 민왕후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민비라는 명칭은 일본인들이 낮춰부르는 말이라 들어왔는데 생각해보니 별로 틀린 표현도 아닌 것 같다. 민왕후나 민비나.
 
명성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전에는 명성은 나라를 말아먹은 암탁 고종은 한심하고 나약한 바보 즘으로 보았는데  언젠가부터 명성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조선의 불씨를 지키려한 여걸이고 고종역시 겉으로는 약하게 보이지만 암중에 국권수호를 위해 온몸을 던진 현군으로 평가되는 분위기다.  그중에 이책은 민왕후 영웅만들기의 결정판 처럼 보인다.

 

아쉽다. 제대로 된 소설이 훨씬 나을뻔 했는데...   다만 1999년 거의 처음으로 민왕후에 대해 쓴 저서라 생각하며 의의를 두는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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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 고려사 - 몽골 세계제국에도 당당히 맞선 고려의 오백 년 역사
이윤섭 지음 / 필맥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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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적 고려사
이윤섭 / 필맥 / 622

 

이른바 대중독자를 위한 한국사, 그중에서도  단대사의 경우에는 전공자에 의한 저술보다 비전공자에 의한 저술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고려사는 고대사와 조선사 사이에 끼어 크게 인기가 없던 시대로 알고있는데 이 분야도 마찬가지로 비전공 아마추어 역사가의 저작이 많다.  그래도 지금은 박종기 박용운 등 대가들의 저서가 있지만 그 인기는 모르겠다.  고려사에 대한 저작을 찾다가 이윤섭의 고려사를 접하게 되었다.  별 생각없이 읽어내려갔는데 이 책이 꽤 마음에 들었다.

 

보통 한국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만 논하는데 이 책은 특이하게 중원과 북방의 정세를 매우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고려사는 독자적으로 전개되었다기 보다는 중국, 발해, 거란(요), 여진(금) 등과의 교류와 갈등을 통해 500년의 역사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국제관계 속에서 고려사를 파악하는 관점이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여타 역사서는 고려의 입장에서 타국과의 관계를  서술한 점이 차이라 하겠다. 이점이 이 책의 장점이자 특징이다.

 

고려는 천하중심국이라는 세계관과 자신감을 가지고 군주의 호칭을 천자나 황제라고 불렀다. 태조때 군주의 정령은 황제의 용어인 조詔, 제制라 하고 복식도 천자의 색인 자황색으로 했고 고려사 악지에는 “해동천자이신 지금의 황제께서는...”이란 노래가사도 나온다. 여진의 금또한 고려를 황제로 인식했다. 그러나 송과 요에 대해서는 왕을 칭했다. 이들도 고려가 내부적으로 황제를 칭함을 알면서도 간섭하지 않고 인정했다.  그러나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중화주의가 득세하고 특히 뒤를 이은 조선조에서 고려사를 편찬할 때 칭제가 사대의 예에 어긋난다하여 많은 수정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는 현재와 비슷한 듯. 재산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고 균등하게 상속되었고 차서도 나이순을 따라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 제사는 자녀가 돌아가며 주관하였다. 아이들은 외가살이가 일반적이고 이혼과 재혼이 자유로왔으며 이로인해 차별받지 않았다. 재혼후 왕비가 된 경우까지 있다.

 

중국에 대한 서술중 후주의 절도사 조광윤이 거란을 치려고 군사를 일으켜 나갔다가 부하들의 추대를 받아 하루만에 말머리를 돌려 후주를 무너뜨리고 송나라를 건국한 내용이 있다. 마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모양이 비슷해보인다. 그런데 이때 쿠데타에 동의한 조광윤이 세가지 조건을 내건다. 후주의 왕족을 해치지 말 것, 관료들을 모욕하지 말 것, 정시靖市하지 말 것. 정시란 수도를 약탈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오대십국의 혼란기에 반란이 일어나면 그 도읍을 삼일동안 약탈하는 것이 일반적 관례로서 군인들은 오히려 약탈을 원했다고 한다.

 

백암 박은식은 여진족의 金나라가 한국사에 속한다고 했다. <몽배금태조>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는 여진족이 한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여진은 조상이 신라에서 왔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 때문에 저자는, 중국은 자국 영토에 있다는 이유로 관계없는 역사도 중국사에 포함시키고 고구려 발해도 자기역사에 넣는데 우리도 여진의 역사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충분히 맞는 말이다.  여진, 말갈은 고구려때부터 우리와 역사를 함께 했고 고려도 전쟁시에 여진의 군사를 데리고 싸웠다. 부여에는 여진의 유적이 함께 있다고 한다.

 

책에는 매우 중요한, 강역관계 서술도 나오는데 저자가 이를 꼭 꼬집어 주장하지는 않는다. 소개만 하고 있다. 고려의 경계는 어디인가? 천리장성의 위치는 어디인가? 윤관의 9성은 어디인가? 사실 세가지가 모두 하나로 통한다. 고려의 경계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저자는 사료를 인용하여 고려의 동북경계가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 지금의 북간도 지역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책의 목적이 강역고증이 아닌 고려사의 전개이므로 저자는 다만 문제제기 정도에 그치고 있다고 보인다. 송의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보이는 고려의 국경은 참 이상하다.  학자들이 이 문제를 심도있게 연구했으면 좋겠다. 무조건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허황된 뻥튀기로 몰지말고 공론화해서 연구해보면 좋겠는데...  동북아역사재단에서 문제제기를 하는게 가장 합리적이다.

 

삼별초의 난과 대몽항쟁에 대한 시각도 전환을 요한다. 저자는 삼별초의 군사행동이 항쟁이 아닌 반란임을 분명히 한다. 당시 고려왕실과 무인정권의 무대책을 비판하고 원의 요구에 응해 화친하는 것이 국가와 백성의 보전에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무인정권의 사리사욕으로 백성들이 오랜 시간 고통을 받고 무인정권의 기반인 삼별초가 끝내 반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 문제는 당시 원나라의 상황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를 필요로 하는데 이 책은 충분히  몽골의 동향을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몽골이 고려에 대해 가지는 친근한 또는 경계하는 감정은 좀더 깊은 연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서정록이 쓴 <마음을 잡는자...>에 보면 칭기즈칸의 두 번째 부인은 고려인이라고 한다. 게다가 몽골과 고구려는 건국신화도 너무 비슷하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고려를 어머니의 나라라고 부른다고 한다. 혹은 우리민족의 출자가 바이칼호 인근이니 몽골의 한 조상인 바이칼 코리족이 우리나라의 조상일수도 있다고 서정록은 주장한다. 어쨌든 몽골 원은 고려의 끈질긴 항쟁을 높이 평가했고 중원인은 무시했지만 고려 자체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고려의 풍습이 유행했고 고려의 여자를 아내로 맞기를 원했다.

 

공민왕의 피살은 조선 사가의 기록만 보지말고 당시 강국으로 부상하는 명과 북원 사이에서 외교방향을 잡지못한데서 오는 관료측의 불만이 큰 원인이었을 것으로 본다. 주원장의 최초 사절은 고려와 사대관계가 아닌 우호관계 수립이 목적이었는데 오히려 처음부터 명에 저자세로 사대를 택한 공민왕에 대한 실망으로 북원과 연합하여 시해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같은 논리로 충자 돌림왕들에 대한 평가도 다르다. 충선왕은 호평이다. 대부분의 고려사 저작에서 패륜무도로 묘사하는 충혜왕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조선조 사가들의 기록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말 것을 주장한다. 이 저자의 참고문헌이 상당히 방대한 것으로 보아 역사공부의 온축이 상당함을 짐작케 하는데 사료에 대한 이해도는 대단하다. 지난번에 본 남경태의 사이비성 무자격 역사서술과 너무 비교된다.

 

이성계의 가계에 상당부분을 할애했다. 이성계는 무신정변 실력자 이의방의 아우 이린의 자손이라고 한다. 이성계를 야심을 가진 인물이자 처세의 달인으로 보고 이성계가 개혁세력이 될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반면에 최영은 매우 우호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한편 발전사관과 유물사관을 강력히 비판하는데 특별한 근거는 없다.

명의 철령위 설치에서 다시 철령의 위치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온다. 이미 백여년 전에도 철령의 위치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일인학자 지내굉은 압록강 연안의 황성皇城을 철령으로 보았고 같은 일인 화전청은 현재의 철령인 강원북부를 철령으로 보았다.  저자는 위치를 확정짓지 않았지만 역사적 맥락으로 볼때 철령은 압록강 이북지역이 타당하다. 주원장의 명은 철령의 이동 이북 이서가 모두 요동도위에 속한다는 것. 강원도의 철령이면 이동 이서가 말이 안된다. 현재의 지명으로 보아도 지금 심양의 위쪽에 철령이란 곳이 있다. 차라리 이곳이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또한 우왕대의 요동정벌 미수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다. 사실 참 한심하다. 조선이 스스로 명의 속국으로 전락한 매국적 사건이다. 이를 이성계의 야욕탓으로 해석한다.

 

전반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럽지만 군데군데 서술이 일관성을 조금 잃고 있다. 즉 매끄럽지 못하고 고어체를 쓰는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은 저자의 서술로 바꾸지 못하고 옛 사료를 그대로 인용하듯 썼기 때문이다. 인용도 아니고 서술도 아닌 뒤죽박죽이 여러번 나온다. 게다가 경제관계, 사회문화 관련 서술은 없다시피 한다. 비단 이 책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큰 단점이 아닐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색깔을 입힌 점이나 주변 나라와의 관계 서술, 흐름을 위주로한 서술 등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싶다. 재미있게 읽었다. 고려사를 제대로 알고싶은 사람은 첫 사서로 이 책을 선택하면 도움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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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물리학 - EBS 다큐프라임
EBS 다큐프라임 [빛의 물리학] 제작팀 지음, 홍성욱 감수, EBS MEDIA 기획 / 해나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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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물리학
EBS다큐프라임<빛의물리학>제작팀
325

 

이제까지 양자론과 관련된 몇권의 책을 읽어보았으나 여전히 양자론은 마치

구름속을 헤메는 듯 무엇을 말하는지 알수 없다. 많은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양자론을 이해한다면 양자론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언급이

참으로 그럴 듯 하다. 그러니 고등학교때 물리시간을 싫어했던 내가 양자론의

얼개라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불성설임이 확실하다. 나처럼 양자론을

알고싶지만 너무 어려워서 엄두를 못내는 사람들을 위해 EBS에서 ‘빛’을 매개로

해 양자론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 책은 그렇게 해서 방송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책은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다. 1. 빛과 시간,특수상대성이론  2. 빛과 공간, 일반상대성이론,  3. 빛의 추적자  4. 빛과 원자  5. 빛과 양자  6. 빛과 끈


방송된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이라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사진자료가 많이

사용되었다. 빛으로 양자론을 설명하려는 구상은 아인슈타인이 빛의 속성을 밝혀 상대성이론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책은 시작된다.

 

빛이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사실, 빛은 초속 30만km의 등속을 갖는다는 사실,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질량을 가진 물체는 중력을

가지며 중력이 곤간을 휘게 만든다는 사실,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라는 사실

등으로부터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입자인 원자와 원자핵, 전자의 발견, 소립자의

발견과 우주구성의 최소단위는 끈이라는 최근의 물리학 연구성과 까지를

다루었다. 

 

아쉬움이 없지 않다. 아인슈타인을 출발점으로 잡은 이유는 그가 고전물리학과

현대물리학의 접점에 있던 인물이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다보니 이 책이 양자론을   설명하기 위한 것인지 현대물리학의 발전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것인지

애매해진 느낌이다. 2001년 김영사에서 발간된 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에

매키보이가 쓴 <양자론>이 있다.  <양자론>은 양자론에 대한 내용만을 담았다. 매우 간략하게 그러나 어려운 설명으로.  반면 <빛의 물리학>은 내용도 쉽고

서술도 쉽다. 그러다보니 정작 양자론이 무엇인지는 더욱 알수 없게 되었다.

차라리 현대물리학입문으로 제목을 바꾸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생각된다.

 

양자론을 위해서라면 전자도약이나 불확정성의 원리를 좀더 세밀하게 설명했어야 하고 양자론의 큰 특징중 하나인 양자얽힘 현상을 반드시 언급했어야 한다.

시세계와 미시세계를 따로 나눌것이 아니라 우주와 인간의 기본구조인

원자의 세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 ‘신神’의 영역으로 접근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마지막에 11차원과 다중우주를 언급하고 있다. 다중우주설은 존재를 부정하는 학자도 있는데 <과학들이 알고 싶어하는 신의 생각>이 그러하다.

그런데 서술의 목적이나 방향으로 보면 이책은 오히려 수학을 다룬 <신의 생각>

보다도 더 소략하다는 느낌이다.

 

쉽게 설명하고 있는데 더 이해가 어려워진 양자론이다. 다만 우주는 진동하고

있고 우리의 의지는 대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기왕의 학설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으로 만족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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