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임진왜란 1 -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이순신역사연구회 엮음 / 비봉출판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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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사람은 누구나 아는 임진왜란, 

1592년 왜의 대군이 동래 부산을 기습공격하면서 7년간 이어진 전쟁이다.

상처뿐인 승리기는 하지만 임진왜란의 승리는 전적으로 수군의 활약 덕분이다.

수군의 대승이 아니었다면 현재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수군의 승리를 이끈 인물은 단연 이순신. 

막연하게만 알고있는 인물이다. 

 

성웅취급을 하고 이전 정권에서 지나치게 미화하다보니 반발심리를 가진 사람도 있다.

어느 아마추어의 역사책에서였던가 이순신의 해전 전승은, 그가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해서

그렇다고 전공을 폄훼한 글도 봤다.

그러나 이순신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서 "이순신역사연구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사비를 들여 이순신해전연구에 나섰다.

적지않은 연구성과가 나온것 같은데 이 책은 그 중 성과를 집대성한 시리즈중 첫째 권이다.

부제는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뢰나이다>

 

여러명이 함께 만들어서 그런지 서술체계는 일관성이 부족하다.

다들 생업이 있고 남는시간을 쪼개 투자한 것이라 전담 연구자가 없어서

일원화 작업이 안된듯 하다. 다큐멘터리형식으로 진행되지만 중간중간에 드라마처럼 대화체와 감성이 녹아있는 서술이 등장하고

소설처럼 1인칭 시점도 나온다. 해설과 소설과 서사가 한편에 다 들어있다.

학자가 아닌 민간직업인들이 모여 수년간 이러한 성과를 냈다는 점이 놀랍고 존경스럽다.

책을 보면

경상우수사 원균이 전라좌수사인 이순신에게 직접 출병을 요청했다는 항간의 풍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조선의 군사정책과 명령체계상

우수사 → 감사 → 조정 → 감사 → 좌수사로 이어지는 계통이 엄연히 기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자들은 실록기사에 의거해 경상우수사 원균은 전쟁이 시작되자 이기지 못할 것을 알고 모든

배를 파괴하고

무기를 바다에 버린후 수군을 해산하고 도피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4월 30일의 첫 출동시 원균의 우수영에는 함대와 물자, 병력이 하나도 없었고

동시출병을 약속했던 전라우수사 이억기도 아무 소식이 없었기 때문에 단독 출전했는데

두렵고 외로운 마음으로 홀로 적을 상대하러 나가는 이순신의 마음을 엿볼수 있는 서술이다.

저자들은 이순신 해전에 나타난 몇가지 전술을 종합하여 이순신해전의 특징으로 삼았다.

우선 이순신전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백병전이 없는 순수 타격전이라는 것이다. 이를위해

거북선과 학익진이 개발된 것이라 한다.

이순신해전에서 백병전이 나타난다는 것은 대표적인 오역이거나 오해라고 한다.

둘째는 거북선의 구조와 용도에 대한 것이다.

거북선은 2차 출병시에 처음 등장하는데 정조때 왕명으로 조사하여 제작한 그림에 의하면

구조는 3층이고 용도는 충격 돌파용이다.

셋째 충분한 정보망인데, 이를 위해 24시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넷째는 철저한 논공행상이다. 이순신은 기존방식대로 적의 수급을 벤 숫자로 공을 따지지

않았다.

자체적인 평가기준을 만들어 열심히 전투에 임한 군사를 우선으로 했다.

때문에 이순신함대는 왜적을 사살하고 배를 깨뜨리는데 힘썼지

전투후에라도 적의 머리를 베는 일에 집착하지 않았다.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있다가 끝난후에 나타나 열심히 적의 머리를 베어 조정에 바치고

이순신보다 수급을 많이 메었다고 주장하는 원균 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처사다.

마지막으로 학익진 전법을 든다.

아마도 이 책에서 가장 중시하는 내용이 아닌가 한다. 왜적의 함대를 만나면 크게 반원형을

만들어 적선단을 포위하고

대포와 큰 화살을 사용해서 적함을 무력화시키는 전술인데 이를 일시집중타라고 부른다.

배를 가까이 대거나 부딛쳐서 상대의 배에 올라타 병장기를 이용해 백병전을 벌이는 왜군의

전술은 애초부터 통하지 않았다.

조총 대 대포라는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전함은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라 제자리에서 좌우회전이 가능했기에 좌현과 우현을

바꿔 돌려가며 쏘아대는 집중포화가

승리의 비결이었던 셈이다.

이책은 1권이라 안골포해전까지의 내용만을 담고있다.

자원봉사 민간연구자들이 만들어낸 역저긴하지만 책의 말미에서 주장하듯 근대 일본해군이나 

 영국등 2차대전 연합국에서도 이순신 해전을

모방하고 참고했다면 좀더 확실한 증거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이순신의 경영經營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대강 짐작하겠는데 매번 경經과 영營을 따로 구별해 "경·영" 이라 표기할때는

먼저 경과 영이 각기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저자들의 기준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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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찾은 고조선
이종호 지음 / 글로연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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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찾은 고조선

이종호

글로연 424

 

민족의 뿌리나 시원을 찾는 과정은 개인이 자신의 조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역사학의 기능이나 효용을 따지기에 앞서 너무나 자연스런 현상이라 하겠다. 그런점에서 우리역사의 근원을 밝히는 일은 학문적 가치를 넘어서는 의무라고 볼 수 있다. 그간 역사학도로서 우리역사의 시작점인 단군조선에 관한 제연구와 여러 가지 민간학설들을 보면서 느낀점은 황당무계(荒唐無稽) 그 자체였다. 고고학상의 청동기시대를 훌쩍 뛰어넘은 시기에 국가를 그것도 대영역의 판도를 자랑하는 거대문화권이라니. 그러나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기록을 꾸준히 보아오면서 그간의 관점에 자연스레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 알고있는 것은 아닐까. 일제시기의 왜곡된 역사관에 너무 젖어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속칭 환빠는 아니지만 단군조선 즉 고조선의 실체에 대해 어느정도 인정할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기존의 내 생각에 크게 수정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이책은 시중에 많은 여느 고조선에 대한 책이 그렇듯 정통 역사가에 의한 것이 아닌 아마추어 역사가의 저작이다. 그러니 신빙성에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그동안의 단군관련 사료와 함께 최근의 고고학 연구성과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내용까지 함께 서술된 꽤 볼만한 저작으로 평가한다. 우리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던 고조선의 실체를 역으로 중국측 자료를 내세워 반증한 치밀한 구성이 눈에 띈다. 저자인 이종호는 전혀 모르던 사람이다. 이종호라는 이름이 너무 흔해 이사람이 그사람인가 혼동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이종호교수부터 조선시대를 다룬 이종호도 있고 고대를 다룬 이종호도 있는데 책의 소개에 의하면 이 이종호씨는 프랑스에서 공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박사고 현재 카이스트 초빙과학자로 있다고 한다.

 

고조선에 대한 사료는 너무 빈약하고 그나마 삼국유사에 있는 서술은 고조선 건국으로부터 치면 무려 삼천년도 더 뒤에 쓰인 후대의 기록이다. 비단 고조선 뿐만 아니라 우리 고대사 자료가 거의 대부분 중국측 사료에 있는 내용이다. 역사가들은 일단 중국측 사료를 믿을 만 하다고 보고 그에 의거해 우리 고대사를 서술해오고 있다. 이를 보조할수 있는 방법이 고고학인데 고고학자들은 역사학자와 달리 유물 유적으로만 시대를 구성하기 때문에 개연성이나 상상력으로 역사를 복원하지 않는다. 바로 그게 가장 큰 문제점이다. 고고학은 역사학의 보조학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고고학이 고대사의 원류처럼 자리잡고 있고 그 고고학은 일제때부터 내려온 학문적 전통과 사승관계가 뿌리깊게 박혀있다.

 

사실 국가의 기원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비정치적이고 비민족적일수는 없다. 어떤 학문이든 마찬가지다. 학문에 국경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에 가깝다. 그러나 21세기에 우리나라가 2천년의 역사를 가졌든 5천년의 역사를 가졌든 그리 크게 의미가 있는 일도 아니다. 어차피 중일 사이에 낀 약소국이고 근대학문이 시작되면서 일본과 중국으로부터 너무 큰 영향력아래 있어왔기 때문에 민족적 자존심은 있을지언정 민족적 자존감은 매우 미미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5천년의 문화전통과 방대한 영역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런 사실이 현재의 정치사회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 어떻단 말인가. 일본이나 중국을 뛰어넘을수 있다는 말인가. 세상살이에 쓸데없는 학문으로 취급받는 인문학이라 취직도 안되는 마당에 단군이 5천년전 사람이든 일만년전 사람이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학자의 본분은 진실과 사실의 규명이고 특히나 역사학은 근원을 복원하는데 의미를 두고있기 때문에 실생활에 대한 효용여부를 따지는 천박한 분위기가 지나면 언젠가는 지나간 역사를 중시하는 시대가 오리라 믿는다. 보석이라는게 생활에 요긴해서 가치가 있는게 아니듯, 사랑이 내 몸값을 높여주기 때문에 의미있는게 아니듯, 인간은 배부른 돼지 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이기에.

 

현재 우리나라의 역사 또는 역사학은 정치권에서 좌우의 투쟁에 이용되고 그 투쟁에 별 도움이 안되는 고대사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그러다가 중일의 고대사 협공에 직면해서 정부는 동북아역사재단이라는 단체를 출범시켰는데 이 구성원이 문제되고 있는 얘기를 들었다. 제대로된 상황이라면 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적극적으로 고대사를 해결해야한다. 학계가 누구누구의 제자로 연결된 도제시스템에 꽉 막혀있는 상태에서 아마추어 역사애호가들이 나서서 될 문제가 아니다. 실리이만이 트로이 유적을 발견하기 전까지 트로이전쟁은 오랫동안 신화에 불과했다. 우리 고고학계와 역사학계도 열린 마음으로 연구를 수행할 날이 곧 오기를 바란다.

 

 

책의 내용은 중국의 동북공정 소개로부터 시작한다. 고대사가 단순히 학자들의 책상앞 연구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다. 어쨌든 동북공정은 우리나라 역사를 빼앗아 간다는 뜻이 아니고 중국이 현재의 중국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현재 중국 영토에 있는 지역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로 해석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를위해 중국은 기존에 가져왔던 중국역사의 시조로 황제(黃帝)뿐만 아니라 치우까지 추가했고 중국학자들이 중원의 역사전개가 아니라 동북지역 부족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본 상(:)나라 역사도 중국의 조상이고 역사라 했다. 또 중국 청동기문명의 출발지인 중원 앙소문화 외에 최근에 발견된 내몽골 홍산 우하량문화 역시 중원의 문화와 연결시키고 우리와 관계 깊은 하가점 하층문화 역시 중원의 역사로 편입시켰다. 그래서 현재 중국은 중국인의 시조로 황제 염제 치우 세사람을 들어 이를 삼조라하고 삼조묘를 건립하여 전설을 역사로 만들고 그야말로 새역사를 쓰고 있다. 자기네 조상은 황제고 치우는 오랑캐족이라고 하던 주장을 단숨에 바꿔 이제는 자기조상이라고 하니 옛말에 환부역조(換父易祖)가 바로 이 경우다.

우리역사에서 청동기시대는 기존에 기원전 10세기부터라고 했는데 현재 국사교과서에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고 써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이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최근에 발견되는 고대유물유적에서 연이어 기원전 1500년에서 2000년의 흔적이 나타나도 여전하다. 아직 본격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고고학자들의 신중한 견해가 한편 수긍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다. 예를들면 지금부터 1만년후 핵전쟁이나 지구적 재앙으로 인류가 멸망단계를 거치고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가정할 때 고고학자라면, ‘한국인은 서기 2015년 당시까지도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남아있는 컴퓨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흔적들을 조합해 누가, ‘당시 한국인은 높은 수준의 ICT기술을 갖고있었다고 발표하면, ‘전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한국에는 2015년 무렵 초보적인 컴퓨터기술을 갖고있었거나 미국이나 일본에서 가져온 장치였을 것이다.’ 라고 주장할 것이다. 뭐 이해는 간다. 그러고보면 역사가는 경찰이나 검사같고 고고학자는 판사같기도 하다.

 

하여튼 근년에 내몽골 홍산 조양,적봉에서 유물과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7000년경까지 올라가는 신석기유적으로 밝혀졌다. 이곳은 요하지역으로 이를 요하문화 또는 홍산문화라 부른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하가점이 있는데 이곳에서 청동기유물이 발견되었다. 시기적 구분이 있어 하층문화와 상층문화로 나뉘는데 동북아시아 최초의 청동기유적이라는 하가점하층문화의 연대는 기원전 2200년으로 나온다. 요동요서를 포함한 요하지역은 전통적으로 중국에서 오랑캐로 부르던 곳이고 우리역사 특히 단군조선과 관계 깊은 곳이다. 홍산지역에서 발견된 제단과 신석기유물은 연대가 기원전 3500년 이상으로 나오는데 곰형태의 용과 여신상, 옥기 그리고 적석총, 빗살무늬토기, 곰조형물이 발견되었다. 곰이야 동북아지역의 대표적인 토템이라고 하지만 빗살무늬토기와 적석묘제는 중국과 관계없는 한국형 유물이다. 이를 고조선과 관계없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제단유적이 기원전 4000년까지 올라가지만 저자는 이것이 단군조선은 아니라고 한다. 인근의 하가점하층문화가 청동기시대로 우리 고조선과 관련있다고 한다. 어째서?

 

국사교과서를 보면 우리 고대문화의 특징으로 빗살무늬토기, 고인돌, 비파형 동검을 드는데 평남성천군백원리 고인돌유적에서 발견된 세형동검의 연대측정 결과는 3400년전 즉 BC 14세기라고 한다. 기존 학자들의 주장으로는 비파형동검문화가 우리나라에 건너온 것이 BC 12세기정도라 한국의 청동기문화는 절대 BC 10세기 이상으로 올라갈수 없다는 것인데 비파형동검보다 후기에 제작된 세형동검의 연대가 그보다 훨씬 상회한 것이다. 다른곳에서 발견된 비파형동검의 연대는 훨씬 높이 올라간다. 한국식 동검은 중국식과 달리 일체형이 아니라 조립형이고 구리 주석 납의 비율이 일정하다고 한다. 하가점하층유적에서는 적석총과 제단과 함께 성터가 발굴되었는데 고구려산성의 독특한 특징인 치(돌출석축)가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청동기 역시 기원전 1500년경의 유물이라 한다.

 

요녕의 고대문화가 곧 우리조상이며 단군조선의 시원이라 말할수 있는 직접증거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이 중국과 관계없는 민족이고 문화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우리가 이제껏 단군을 신화로만 주장한 탓에 지금은 중국이 이들 동이족의 문화가 동북아최초이며 나아가 동이족 역시 중국사의 일원이라고 못박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하상주단대공정, 중화고대문명탐원공정이다.

우리 고대문화의 특징인 빗살무늬토기와 고인돌,적석묘,비파형동검문화가 겹치는 곳이라면 우리문화라고 보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더구나 고조선이 있었다고 생각되던 곳에 고고학적 연대가 일치하는 유물유적이 있다면 이를 고조선과 연결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연구과정일 것이다. 이 책의 문제제기는 너무나 당연하다. 저자는 소개한 내용 이외에도 중국이 제시한 증거를 역으로 활용하여 동북지역의 고대문명을 조명하고 고조선과의 동일성을 유추하고 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연구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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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오래된 상점을 여행하다 - 소세키의 당고집부터 백 년 된 여관까지
여지영.이진숙 지음 / 한빛라이프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도쿄의 오래된 상점을 여행하다
여지영. 이진숙.  글 그림
한빛라이프 / 336

 


오래되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늘 새것만 추구하는  시대에 오래된 것은 어떤 가치가 있을까. 오히려 오래되었기에 가치가 있는 것일까. ‘오래될수록 좋은 것은 친구와 포도주 밖에 없다’는 서양속담이 떠오른다.  그러나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것만으로 주목받기는 어렵다. 평균적 기대치 이상으로 시간이 흘렀을 때 누군가의 관심을 받을수 있다. 산이나 바위가 오랜 것이라고 우러러보지 않지만 집이 천년쯤 되었다면 단박에 관심을 끌 수 있다. 인위적인 것은 시한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 이책은 그저그런 여행기나 여행안내서가 아니다. 일본의 문화에 대한 것이고 그 문화의 내력을 이웃나라 여행자의 눈으로 본 책이다. 비슷한 환경의 한국과 일본인데 우리는 세계에 유례를 찾을수 없을 정도로 빠른 변화와 속도를 자랑하는 디지털 민족이다. 그런데 우리보다 먼저 변화와 발전을 경험한 일본은 우리에겐 없는 그 어떤 요소가 있다. 그것이 DNA인지 역사적 유산인지는 좀더 따져봐야겠지만 일본에는 분명 개성을 지키려는 오래된 노력들이 존재해왔다. 현재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세계 최고령 기업은 오사카의 시텐노건설인데 무려 14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곧 백제의 장인이 시텐노지를 건축하고 그 자리에 남아 사찰보수와 건축을 가업으로 삼았던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일본에는 오래된 건축물이나 문화유산도 많이 남아있는데, 외형적인 것은 우리와 달리 외침의 흔적이 없었기 때문이라 이해할수 있지만  수백년된 기업, 가게가 지속되는 것은 분명 한국과 다른 어떤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 만의 밈(meme)일까.


이책은 왜 다른가를 따지는 책이 아니다.
우연찮게 한일문화를 다룬 책을 연속으로 읽게 되었는데, 지난번에 읽은 <당신들의 일본>(유순하)을 보면 일본의 장점과 단점, 한국의 장점과 단점이 신랄하게 비교되어 있다. 멋도 모르면서 일본을 비하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저력을 키우자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현재의 일본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 서두에 독자를 위해 간략한 일본 약사(略史)를 소개해주고 오래된 가업이 어떻게 지금껏 손님을 맞고 있는지 외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뿐이다. 그러니 이 책은 한편 여행자를 위한 독특한 일본의 풍물 풍습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분석이 아니라 묘사인 셈이다. 구경을 가든 맛보러 가든 역사를 파헤치려 가든 그건 탐방객의 자유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 소개된 가게들이 현재 그 자리에서 여전히 여전히 손님을 맞고있다는 사실. 평론가가 아니라 관객의 눈으로 본 일본의 무대다.


거창하게 일본의 삼대 경영의 신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그냥 소시민들이다. 우리에게 없는 것이 왜 일본에는 있는지 따지는 것은 매의 눈을 가진 연구자의 입장이고 탐방객은 그저 소개된 가게들의 맛과 멋을 음미하면 된다. 사람사는 세상은 다르면서도 비슷하므로. 그렇게 선입견없이 일본내 오래된 상점들을 구경하면서 여행을 다녀보자. 여지껏 알지 못했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일본의 속살을 흥미있게 볼수 있다.


인간의 기본욕구인 식욕과 소유욕을 자극하고 해결해주는 그 이상의 어떤 것을 경험할수 있다. 흥망과 과정이 들어있고 의욕과 도전을 볼수 있으니 이 책은 한낱 맛집탐방기 따위가 아닌 충실한 일본문화 소개서다. 원인을 따지기에 앞서 현상과 실제를 보는 정확한 눈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내가 이 책에 대한 소개글을 보고 흥미를 느꼈던 대목은 300년된 이쑤시개 가게였다. 300년된 이쑤시개 전문점이라니!!! 우리나라에는 300년된 기업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양산업이 된 동네빵집의 폐업홍수에 휩쓸려 홍대앞 리치몬드제과점이 없어졌다고 인터넷을 달군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이쑤시개 전문점 사루야는 1704년 창업하여 지금의 그 자리에서 그대로 8대째 가업을 이으며 성업중이다. 나는 이쑤시개를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우리집은 물론 어느집이나 이쑤시개는 있다. 중국집 광고용 증정품이나, 필요하면 마트에서 파는 대용량 이쑤시개 따위가 가정마다 존재한다. 굳이 이를 쑤시지 않더라도 과일이나 떡을 찍어먹을 때 요긴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이쑤시개를 썼을까. 지금은 전량 수입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루야의 이쑤시개는 치아용과 화과자용으로 나뉘고 크기와 모양도 다르다. 버드나무 일종인 쿠로모지로 만들고 당연히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정성들여 세공한다. 고급음식점에서 품격있는 마무리용으로 주문하고 선물용으로도 많이 판매된다고 한다. 전통과 장인의 정성이 사양산업도 주식회사로 바꿔 당당히 살아남아 이름을 날리게 한는 것이다. 나무향이 감도는 사루야의 이쑤시개.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것들이 없을까.


문방사우를 파는 유벤도. 이곳도 100년이 넘었다. 그런데 서예경력 10년의 직원이 한국에서도 붓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은 좀 믿기 어렵다. 붓과 먹은 당연히 중국이 먼저고 질도 좋았겠지만 붓과 먹, 종이는 고려 조선의 대중 수출품이었고 대일 통신사행에서도 소문난 특제품이었다.

 

닌교초의 두부상점 후타바는 1924년 개업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두부 전문점이 90년이나 지속되었다는 사실 역시 감탄할만 하다. 그러나 일본두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조금 미흡하다. 두부는 중국에서 한대 회남왕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제 중국에서 두부가 대중화된 것은 당나라때로 보고 있다. 두부는 당시의 백제와 신라에 들어왔을 것이고 삼국시대 활발한 교류를 가졌던 일본에도 자연히 전파되었을 것이다. 1183년 나라의 신사에 두부를 받은 기록이 있다는 것은 이를 짐작케한다. 그러나 일본에 두부가 대중화된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임진왜란 이후다. 도자기, 차, 성리학 등과 함께 조선의 두부가 일본에 전해져 오늘의 일본두부를 있게한 것이다. 당시 조선의 두부는 본고장 명나라의 황제조차 감탄할 정도로 맛과 풍미가 뛰어난 대중음식이었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 포로중 두부제조법을 아는 백성들의 손에 의해 일본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도자기든 두부든 인쇄술이든, 원조가 틀림없는 한국이라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조선은 기술자를 푸대접하는 사회였고 일본은 반대로 기술을 존중해주는 나라였다. 도자기나 두부가 일본에 전해져 한층 발전하고 정교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청출어람이라는 용어 정도로 덮을수 없는 그 이상의 열정과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결과다. 받아들이고 배워서 발전시키고 일본화시키는 일본의 저력이다. 조선과 달리 기술자들은 일본에서 높은 대우를 받았다.


책의 본질에서 벗어난 서술이 길었는데 자기가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하려는 완벽주의가 오늘의 일본을 만든 요인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 여러 과정과 결과가 수십 수백년 지속하는 가게를 낳게한 것이고 오늘날에는 하나의 문화상품 역할도 하고있는 것이다.

 

책은 도쿄를 15개 권역으로 나누어 각각 해당 거리의 특징을 약술하고 그 거리의 명물 상점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각 장의 말미에는 지역의 소문난 상점들을 간략하게 첨부해두었다. 100년 수십년된 점포가 수두룩하다. 또 여행객의 편의를 위해 상점의 위치와 전화, 가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표시하기도 했다.


각 장의 배경이나 업종에 대한 설명에서는 저자들의 내공과 필력이 대단함을 느낄수 있다. 역사서나 인문서를 써도 충분히 통할수 있는 실력이다. 다른 분야의 좋은 내용을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느낀점은 이런 가게의 모습이 단지 도쿄만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일본 전역으로 넓히면 더 오래된 전통의 가업을 잇는 모습을 알마든지 볼수 있을 것이다. 부러움과 아쉬움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인기직종이 아니라서 더 이상 가업을 승계하겠다는 젊은이가 없는 상점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와도 비슷한 경우라 인지상정이로구나 생각케 한다.  흡족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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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일본 - 한 몽상가의 체험적 한일 비교 문화론
유순하 지음 / 문이당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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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일본
- 한 몽상가의 체험적 한일비교문화론

유순하 / 문이당 / 347

 

일본. 정말 가깝고도 먼나라임에 틀림없다.
이책의 광고글에는 최초의 한일비교문화론이라는 수식이 달려있으나 본문에서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한일간 문화를 비교한 글은 제법 많고 개중 이어령, 김용운 등의 책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런 책들은 다분히 학술적이거나 전문적인 글임에 반해 유순하의 이 책은 부제가 가리키듯 체험적 비교문화 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마치 우리 언론의 일본특파원들이 짧지않은 일본 생활을 마치면서 느낌을 펴낸 책들과 미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좀더 솔직하고 좀더 과감하다. 저자는 1943년 생으로 일본에서 태어나고 직장생활동안 일본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이어온 사람이다. 여러편의 소설을 발표한 문학가이기도 하다.

 

 

책은 반 이상의 내용이 일본문화나 저력에 대한 긍정적 평가다. 나머지 반은 한국의 실상에 대한 통열한 비판이다. 언뜻 보기에 일본이 대단한 나라니 욕만 하지말고 좀 배우자는 글이다. 그런데 전체를 읽고나면 좀 배우자 정도가 아니고 우리가 거듭나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저자가 지일파를 넘어 친일파는 결코 아니다. 왜 이런 글을 썼는지에 대해 저자의 소회가 있다. 일본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실체도 모르면서 허구헌날 궐기대회만 하는 한심한 한국사람들 때문이다. 심정적 반일감정인데 실제로 반일행동은 못하면서 쪽발이 왜놈이라 욕만하고 혼자 흥분하는 한국사람들 내면에는 뿌리깊은 자격지심이 있다는 것이다.

 

 

독도문제나 위안부문제만 나오면 데모하고 일본을 욕하고, 한일간 경기라도 벌어지면 생사결이라도 난 듯 응원하고, 불매운동 벌이자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일본에 불이익을 끼치지 못하는 한국사람들 때문이다. 고대에 문화를 전해주었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천년넘게 간직하면서 일본의 실상이나 저력을 파악하는 일본연구에는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기현상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가장 싫어하는 나라에 항상 1위로 올라있지만 우리 한류가 일본에 미치는 영향보다 우리경제에 우리 젊은층에 미치는 일류(日流)나 일본문화, 경제영향이 훨씬 더 크다는게 저자의 지적이다. 다 맞는 소리다.

 

 

적지않은 기간동안의 일본경험이 밑바탕이 되었지만 이글을 쓰기위해 한일관계를 다룬 100여권의 저서를 읽어보았는데 정작 읽을만한 수준의 책은 11권 정도였고 그중 8권만 참고할정도의 수준이고 나머지는 읽지 말았어야할 저급한 수준의 책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일본에 대해 공부한다고 하면 친일파 등등의 시각으로 보아온 눈초리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일본문화에 대한 학계의 저서가 거의 없는 편이라고 한다. 반면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전문가는 한국사분야를 비롯해 수백명이 넘는 수준이니 우리는 일본을 잘 모르면서 감정적인 비난만 하고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무조건 일본을 배우자고 하지는 않는다. 지피지기 매전불태(每戰不殆)의 입장에서 일본을 알고 우리의 저력을 살려 강한 나라가 되자고 한다. 현재 한국의 처지는 뱃사공에게 목줄이 매달려 물고기를 잡는대로 사공에게 바치고 힘들게 일만하는 가마우지의 신세나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제품 불매(不買)운동을 한다고 해서 될턱도 없지만 그게 아니라 오히려 일본이 우리에게 제품을 안파는 불매(不賣)운동을 걱정해야 할 상태라는 것이다. 우리가 제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극일의 길은 요원하다고 본다. 더 나아가 저자는 우리의 저력을 국민의 힘으로 본다. 의병이나 근래 IMF사태때 금모으기 운동등 우리가 제대로된 나라로 도약할 길은 분명히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근 지방선거에서 깨끗한 선거로 당선된 박원순서울시장의 경우를 들어 변화의 큰 조짐이라 말한다. 사실 박원순은 호오가 갈리는 인물이니 한국정치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아직은 아닌 듯 하고 그런 취지라면 박원순보다는 노무현이 먼저 등장해야겠지만 이 부분은 문화와 관계없는 정치적 입장이므로 사족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쨌든 이 책을 위해 저자가 예로든 여러 상황은 절대 공감한다. 그동안 일본역사나 문화에 대해 여러권의 책을 읽었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일본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그저 무시하는게 다다. 저자의 입장에 확실하게 공감하는 것중 하나는 앞으로 우리의 경쟁상대 또는 적국이 될 가능성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 끼친 악영향 또한 일본과는 비교도 안되게 중국이 더 많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에 넘치도록 관대하고 일본에 지나치게 박하다. 그렇다고 일본을 알고 이용하는 수준도 아니고 경제적 문화적으로 의존하고 본받고 베끼면서도 심정적으로는 무시하고 욕한다. 독도망언했다고 궐기대회 백년 해보았자 일본에 아무런 자극도 못준다는 것이다. 일본은 무관심 그자체라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가 힘이 있으면 궐기대회같은 것 안해도 알아서 사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현대의 실학이고 현대의 허생이 되자는 논리다.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국가혁신이라는 것도 말뿐인데 가능할지...

 

 

책은 가름이라 부르는 세 개의 꼭지로 크게 나누어졌고 각 꼭지마다 10개의 에피소드로 한일의 문화현상을 비교하고 있다.  예를들어 일본은 욕이 별로 없는 독특한 문화권인데 한국은 세계적으로 풍부한 욕을 가진 나라라고 한다. 일반인들의 친절도를 비교하면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친절한 국민에 속한다고 한다. 일본의 오바상과 한국의 아줌마부대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진 부분이다. 황우석이 국제적인 사기로 유명인사가 되고도 아직도 공개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에서 비슷하게 고고유적 발굴을 조작해서 사기를 쳤던 후지무라 신이치는 그후로 종적이 없다고 한다. 2006년 여기자를 성추행했던 한나라당 국회의원 최연희는 무죄판결을 받고 의원을 한번 더하고 현재 재벌기업 회장으로 영입되었다. 같은해 역시 일본 여기자를 성추행한 도쿄지바현 의원 오카다 게이스케는 결국 여론에 말려 의원직을 사퇴했다. 재벌과 정치인들이 대개 감옥에 한번이상 갔다오고도 멀쩡한 한국에 비해 일본에서는 거의 그런 일이 없다.

 

 

일본에는 ‘마잇다’라는 승복의 문화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결과에 지고도 마음으로 승복하지 못하거나 후에 정치보복하는 오기문화가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는 일본특유의 “습합”이라는 정서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본다. 메이지유신이후 존왕양이에서 갑자기 서양이적을 환영한다거나, 2차대전 패배후 귀축미영이라 부르며 증오하던 미군이 들어오자 고관들의 부인들이 미군 장교들의 섹스파트너로 몸과 마음을 다해 봉사했다는 이야기들은 일반적인 관념으론 이해하기 어렵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론이나 일본의 가업전통, 한 분야의 제일주의 등은 일본의 역사와 문화전통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수 없다. 저자가 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리학이 아닌 양명학을 받아들인 때문이다. 곧 이념, 명분 보다는 실리를 택한 것이 일본의 정치경제사정과 결합하여 일본적 전통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선비정신이란게 있는데 저자는 이를 하등 쓸데없는 명분주의로 본다. 원래부터 성리학이란게 가진자 치자의 학문이니 명분이 우선되는건 당연하다. 일본은 양명학의 사민평등사상과 실질숭상이, 살아남는 강한 일본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런 힘을 갖추지는 못한채 근거없는 우월감으로 일본을 비하하고 그렇다고 역사왜곡이나 독도문제에 대해 대책도 없으면서 비난만 일삼는 우리나라가 과연 일본을 이길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저자의 걱정이다.

 

 

저자는 말미에서 자신만의 대책을 마련해서 합심하자고 주장한다. 충분히 근거있는 주장이다. 물론 그에대한 생각 역시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한국은 무엇이 문제인지 일본은 대체 왜 맨날 그러는지 궁금하면 이 책을 한번 보는 것이 좋겠다.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반성은 할수 있으니까.  저자가 읽은 참고문헌을 밝혀주었으면 한일문화비교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되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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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유라시아 세계사 - 프랑스에서 고구려까지
크리스토퍼 벡위드 지음, 이강한.류형식 옮김 / 소와당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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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유라시아 세계사
 - 프랑스에서 고구려까지

 

크리스토퍼 벡위드 지음 / 이강한 류형식 옮김
소와당 / 809

 

흔히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있다가 깜짝 놀랄만한 책을 읽고나면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말을 쓰곤한다. 그런 의미로 보면 이 책은 내게 “지식의 지평을 넓혀준 책”이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를 서술한 책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한국의 사학도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전공이 한국사든 서양사든 동양사든. 특히 세계사의 흐름에서 동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한국 사학계에서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책의 저자는 크리스토퍼 벡위드.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중앙유라시아학과 교수.  역사언어학을 전공한 학자로 지난 2006년 고구려연구재단에서 그의 저서 <고구려어, 일본을 대륙과 연결시져주는 언어>를 발간함으로써 알려지게 된 사람이다. 
학과도 전공도 매우 생소하다. 동양사전공자나 알까.

 

이 책은 809페이지라는 엄청난 부피를 자랑한다.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아마도 2008년에 출간된 듯 한데 아쉽게도 원제를 알 수 없다. 이는 전적으로 역자의 책임이다. 역자는 번역서의 저본을 원제와 출판사, 출판연도까지 밝혀주었어야 한다. 역자후기를 쓰지않을 요량이었다면 역자 일러두기를 통해서라도 어떤 판본을 대상으로 작업했는지 밝혔어야 한다. 역자후기가 없는 것은 게으른 역자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전 어떤 번역자 얘기를 들어보니 출판사의 사정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이 책의 경우는 추천사 뿐 아니라 역자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 책의 원제는 추천사를 통해 짐작할 수밖에 없는데 <Empires of the Silk Road>인 것같다. 우리말 제목은 맘에 드는데 <프랑스에서 고구려까지>라는 부제는 원저에도 있는 것인지 알수 없다. 내 짐작엔 고구려를 강조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붙인 부제같다. 내용이해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하며 내용과 크게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번역문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만 가끔 문맥이 어울리지 않는 문장이 출몰한다. 워낙 방대한 전문서라서 퇴고가 충분치 않았나보다 하고 이해한다. 그러니 이 책의 역자들은 그 수고로운 번역을 마치고도 나처럼 까다로운 독자에게는 좋은 소리 한마디 듣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 내보기에 이책은 교양서가 아닌 전공서다. 그런데 저자인 벡위드에 의하면 애초 이 책은 프랑스식 교양독자를 염두에 두고 큰 틀에서 중앙유라시아 역사를 읽기쉽게 쓰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책은 교양서라기보단 학술서에 가깝고 그러면서 중앙유라시아 역사에 대한 통사개설이다. 전문적 내용과 4000년을 아우르는 연대와 두 대륙을 종횡하는 넓은 지역 만으로도 읽기 쉽지 않다. 게다가 방대한 주석이 있다. 각주는 본문의 주고 몇십페이지나 되는 미주는 본문의 보충설명이다. 저자 스스로도 전문학자들이나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이 책의 내용은 무엇인가.
제목 그대로 중앙유라시아 4000년의 역사개괄이다. 한마디로는 실크로드의 역사다. 그럼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점은 무엇인가. 벡위드는 “실크로드”라는 용어는 외부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따라서 근대에 형성된 탐험과 보물의 땅이라는 이미지, 이 지역에 존재해왔던 유목민족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등을 걷어내고 중앙유라시아 사람들과 그 역사에 대한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을 서술하고자 함이라 말하고 있다.

 

즉 유목민은 야만인이나 약탈자가 아니고 그런 이미지는 주변 정주제국에 의해 또는 근대 서양세력에 의해 형성된 것이며 사실은 사치품을 위주로 하는 유목민과 정주제국, 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교역체계가 실크로드 경제의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흉노와 중국의 관계에서 흉노가 생필품의 자연적 결핍을 중국제국에 대한 침략을 통해 해결하려 했다는 오래된 인식에 대해 단호히 잘못된 분석이라 주장한다. 편견과 왜곡과 오류가 뒤섞인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이다.

 

이를위해 저자는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라는 개념을 설정하여 이를 설명한다. 그것은 말(馬), 전차, 전사(戰士.궁수)로 구성된 코미타투스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데 코미타투스란 주군에게 충성과 목숨을 바치는, 즉 주군과 생사를 같이하는 친위전사집단을 말한다. 초기에는 이들에게 지급할 충분한 급료 즉 사치품을 확보하기 위한 무역이 시작이 되어 유목민과 실크로드 무역이 세계사의 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유목민과 정주제국간 전쟁은 무역확대 요구 때문이지 약탈이 원인이 아니었다고 한다.

 

지역적으로 유라시아란 유럽과 아시아를 합쳐 부르는 명칭이지만 저자가 말하는 중앙유라시아는 크게보아 압록강 유역에서 도나우강하류까지, 북극 아래 타이가 숲지대와 히말라야 인근까지를 가리킨다. 이 거대한 지역 내부의 경제 무역 시스템이 잘못 이해되어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말한다.

 

이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 저자가 선택한 방법론이 바로 역사언어학이다. 최초의 유목민은 인도유럽어족의 이동에서 비롯되었고 곧 인도이란어족으로 분화한 전차전사집단이 유라시아 각지로 퍼져 중앙유라시아 문화복합체라는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유목민족으로 출현했다고 한다. 이들 유목민의 정치형태는 중앙부족과 4개의 주변부족이 국가나 단위정치체를 이루고 있는데 초기 유목국가는 대개 이러한 체제를 갖고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부여와 고구려가 이에 해당한다. 거대제국을 이룬 유목국가는 스키타이를 시작으로 흉노, 투르크, 몽골, 준가르를 들수 있다. 이들 유목국가의 건국설화는 유라시아 전역에서 동일한 형태를 띠고 있다. 하늘신과 하천신의 결합, 영웅의 탄생과 시련, 탈출과 새로운 국가수립 등. 우리의 주몽이 바로 그 경우에 해당한다. 각 정치체의 지도자는 모두 코미타투스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중국과 그리스에서만 코미타투스의 전통이 없다. 투르크의 왕은 카간으로 불렸는데 신라의 간, 몽골의 칸이 같은 말이라고 한다. 기원전 3000년 경부터 밀레니엄 마다 전사집단의 이동이 있었는데 두번째 전사집단의 이동은 메소포타미아 북부나 서부스텝지역에서 동부스텝의 끝, 몽골의 동쪽과 만주지역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우리민족의 기원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주장이다.

 

지역의 명칭과 민족의 명칭, 국가의 명칭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새롭거나 반복적으로 언급되어도 지도가 없어 전공자가 아니고서는 정확한 위치파악이 어렵다. 각 장마다 역사지도를 첨부했다면 훨씬 쉽게 읽을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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