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 문화재 - 이를 지켜낸 인물이야기
문화재청 엮음 / 눌와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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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문화재
   이를 지켜낸 인물이야기
문화재청 / 눌와 / 243


문화재는 그 나라의 유무형 문화유산이자 정신이고 역사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이니만큼 많은 문화재가 있었지만 몇차례의 전란을 겪으면서 많은 수가 파괴되었고 결정적으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문화재가 망실되었다.

 

현재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해외에 있는 우리문화재의 수는 약 15만점이 넘는데 이중에는 불법 약탈된 문화재는 물론 합법적으로 취득한 문화재도 포함된다. 약탈문화재는 될 수 있는한 돌려받아야 하지만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소재를 파악할수 없는 문화재나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는 문화재까지 합하면 얼마나 많은 양의 문화재가 해외에 유출되었는지 알수 없는 일이다. 역사의 비극이고 국력이 약한 탓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있는 문화재 중에서도 자칫 유실될 뻔한 것을 목숨까지 걸고 지켜낸 존재와 인물에 관한 것이다. 모두 열세편의 문화유물이야기가 담겨있다.

임진왜란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선비들,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회수한 경천사십층탑, 간송 전형필의 문화재 수집, 만신창이가 된 광화문, 안용복이 지킨 독도, 프랑스에 있는 직지심체요절, 일본땅에서 끝내 화재로 소실된 경복궁 자선당, 독일에서 돌아온 겸재화첩, 야스쿠니의 북관대첩비, 남아있는 덕수궁, 625전쟁때 지켜진 고찰들, 도둑맞은 건봉사 진신사리, 건설현장에서 살아남은 노거수들 등에 관한 이야기다. 이 유물들은 각각 존재와 가치를 알아내고 온 힘을 다해 이를 지켜낸 사람들 때문에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남아있게 되었다.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쉬지 않은 일이다.

 

경천사십층석탑은 지금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현관에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원래 유물이란 제자리에 있어야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경천사는 개성에 있던 절이었으니 차라리 홀로 박물관에 보존된 것이 다행이지도 모른다. 1348년에 세워져서 후일 원각사 십층탑의 모델이 된 탑이다. 국사교과서에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탑이라고 설명이 되었듯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대리석십층탑이고 층마다 기와지붕의 모양으로 조각되어있다. 이탑은 1907년 우리나라에 온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아키가 그 자태를 탐내 무단으로 주민들을 협박하여 탑을 해체 일본으로 실어갔다. 이를 안 영국인 베델이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가 이에 호응하여 일본의 영자신문에 비판기사를 실어 약탈행위를 고발했다. 사실이 외국에도 알려지고 일본내에 이를 비난하는 여론이 일자 마침내 1918년 다나카는 탑을 한국에 반환하게 된다. 석탑은 많은 부분 훼손되어 경복궁앞뜰에 방치되었다가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고 1995년 본격적인 해체복원작업을 거쳐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경복궁에는 동궁의 침전인 자선당이 있다. 1430년 건립되어 임진란대도 살아남았던 몇 안되는 전각이다. 1915년 데라우치총독이 총독부건물을 짓기 위해 경복궁을 마구 훼손하던 당시에 많은 수의 전각이 일본과 민간에 팔려나갔다. 대원군이 경복궁을 새로 지을 때 330여동의 전각이 있었는데 일제시기에 200여동이 헐리고 팔려나갓다. 자선당은 오쿠라 기하치로(일제기 일본의 거상으로 선린상고의 설립자고 동경에 오쿠라슈코칸이라는 사설 박물관을 건립했다. 우리나라에서 악명높은 문화재 약탈범 오쿠라는 두명인데 오쿠라재벌 오쿠라호텔설립자 격인 오쿠라 기하치로는 성이 大倉이라 오오쿠라 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명의 오쿠라는 오쿠라 다케노스케인데 성이 小倉으로 우리 약탈문화재로 가득한 오쿠라컬렉션의 주인이며 오오쿠라와 구별하여 오구라라고 부르기도한다. 둘다 악질이다.) 에게 팔려 동경의 자기집 안에 재조립되어 사설 박물관 조선관으로 사용되었다. 미국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자선당의 온돌방식에 감탄하고 이후 그가 설계한 집에 온돌난방방식을 적용했다는 여담도 실려있다. 이 자선당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불타버리고 잔해만 남게 되었다.

 

목원대 교수 김정동은 일본에서 공부하던중 오쿠라가 자선당을 뜯어갔다는 내용을 접하고 그 흔적을 쫒았다. 오쿠라호텔을 찾아가 정원 한구석에서 기단과 주추만 남은 건물터를 발견하고 이를 국내 학계에 공개하였다.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큰 관심을 받아 1996년 유구만 남은 자선당을 한국으로 옮기게 되었다. 110톤의 유구는 경복궁으로 돌아와 지금 건청궁옆에 보존되어 있다. 비극이자 코미디다.

 

임진왜란시 정문부장군의 공적을 기록한 북관대첩비는 함경도 길주에 있던 것을 러일전쟁당시 일본군 2사단이 치욕스럽다며 뽑아서 일본으로 가져갔고 연유를 알수없이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 정도가 아니라 흉물스럽게 방치되었는데 1909년 조소앙이 처음 비석의 존재를 알렸고 1978년 재일학자 최서면이 이를 공개하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해주정씨 문중과 외무부를 비롯 다양한 경로로 비의 반환촉구운동이 전재되었고 남한과 북한가 일본의 불교계가 협동하여 2005년 국내로 반환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 비는 국립박물관에서 복원과 보존처리를 하고 2006년 3월 북한으로 인도되어 현재 김책시 임명리에 설치되어있다.

 

이외에도 기가 막히거나 마음을 아리게 하는 유물과 고마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지금 유출 문화재 환수를 위한 민간단체로는 혜문스님의 문화재제자리찾기 가 유명하고 정부에서도 국외소재 문화재재단을 설립하여 여러 방면으로 유물문화재의 회수에 힘쓰고 있다. 관심과 적극적 행동, 나아가 국력만이 우리것을 되찾는 길이다. 프랑스에서 돌려준다고 약속한 것조차 주지 않고 버티는 현실인데 과연 중국에도 그렇게 했을까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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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 다보탑의 돌사자는 어디로 갔을까?
혜문 지음 / 작은숲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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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혜문  작은숲  255

 

저자 혜문은 승려의 신분으로 지난 세월 우리나라에서 불법적으로 반출되었던

문화재를 되찾아 오기위한 운동을 전개한 인물이다. 스님은 5년간 빼앗긴 문화재

반환운동을 전개해왔다고 한다. 이 책이 씌여진 것이 2012년이니 지금은 7년째

반환운동을 계속해왔다는 뜻이다. 혜문스님은 환수운동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기

해 <문화재 제자리 찾기>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의 환수결과와 혜문스님이 생각하는 불법유출 문화재란 무엇인지에 대한 기록이자 소회다.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뉘어있고 19개의 문화재 관련

이야기가 담겨있다. 혜문스님은 명성황후(민비)의 죽음을 파헤친 책 <조선을

죽이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익히 알고있는 이야기도 있고 전혀 몰랐던 사실도

들어있다. 이런 것을 파헤치는 수고와 노력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첫 번째 파트에는 명성황후를 죽인칼 히젠도가 후쿠오카시사에 보관된 이야기,

안중근의사의 총알이 전시된 일본국회 헌정기념관, 조선 기생 명월이의 생식기

표본이 버젓이 전시되었던 이야기가 ‘잃어버린 기억’이라는 부제하에 있다.

두 번째 파트는 ‘되찾은 문화재의 허와 실’이라는 부제로 도려받은 문화재의

부실한 관리에 대한 이야기다. 세 번째 파트는 잃어버린 문화재중 소재가 파악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명성황후 시해에 사용된 칼중 하나인 히젠도는 후쿠오카시 구시다신사의 경내에 

보관되어있다. 연전에 후쿠오카에 갔을 때 들러보고자 했으나 가보지 못한

기억이 있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후쿠오카 여행기를 보면 히젠도의 존재여부를

아는 글들이 반정도 밖에 안되는 듯 하다.


도쿄대학에는 일제강점기에 약탈당한 조선왕조실록 일부가 남아있었는데

2006년 5월 도쿄대는 서울대학교에, 자신들이 보관중인 오대산본 실록 47책을

기증한다고 발표하여 우리나라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실록의

환수를 요청하고 일을 성사시킨 것은 혜문스님과 조력자였으나 도쿄대가 갑자기 기증의사를 밝힘으로써 서울대가 마치 자신들이 한일처럼 발표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돌아왔으니 된거 아니냐는 물음에 대해 혜문스님은, 불교도들의 노력을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렇다해도 실록은 ‘환수’가 되어야지 선의의

‘기증’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2010년 일본정부에서  총독부시절부터 갖고있었던 조선왕실의궤를 비롯 규장각도서 1430점을 반환하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이 역시 혜문스님측의

환수운동 결과다. 그런데 그중에 이토 히로부미가 규장각에서 대출해간-약탈이

아니고- 규장각도서가 938권이나 포함되어있다. 100년동안 대출이 진행되었다는 뜻이다. 규장각에서는 이를 알고있었는데도 그동안 대출도서 회수를 위한 아무런 노력도 의사표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정부에서 스스로 돌려주기 전까지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는 점을 혜문스님은 허탈하게 지적하고 있다. 

 

1951년경 미국에서 반환받은 명성황후 표범가죽 카펫 역시 존재여부 자체를

모르고 있다가 문화재제자리찾기 회원들의 존재확인 감사청구가 있고 나서야

박물관 수장고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 외에 주로 일본과 미국에 많이 있는 불법반출 문화재중 알려진 것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행방을 알수 없는 다보탑 돌사자상, 도쿄박물관에 있는

금산사 향완, 오쿠라호텔의 우리 석조문화재, 경복궁의 자선당이 통째로 뜯겨가

오쿠라호텔 슈코칸 전시관으로 사용되었던 일, 도굴로 유명했던 오구라컬렉션과 그중 조선왕의 갑옷과 투구, 회암사출토품이 분명한 부처님 진신사리와 사리구가 보스톤미술관에 있는 사실, LA 라크마박물관에 있는 문정왕후 금보, 미군정기에 문관으로 문화재를 광범하게 밀반출한 헨더슨과 헨더슨컬렉션, 이순신장군이

실제로 사용했던 쌍룡검 등등의 슬픈 사실이 기재되어있다. 말미에는 최초

금속활자본인 직지가 불경은 아니므로 직지심경이 아닌 ‘직지심체요절’이라는

설명이 첨부되어 있다.

 

해외유출문화재는 상당히 복잡하고 섬세한 문제다.
정부기관이 민간이 하는 일에 협조는 못할망정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데 대한

섭섭함이 책에 한가득하다. 한편 이해가 가기도 한다. 외교채널로 접근할 문제가 있고 민간교류로 해결할 사안이 있다. 또 해외유출문화재라고 하지만 합법과

불법사이의 구별이 매우 어렵다. 박물관에서 자료를 갖춰 구매한 것은  불법

약탈물이라고만 볼수는 없다. 그리고 실제 불법 약탈의 결과라 할지라도 

해당국에서 반환에 협조하지 않으면 속수무책이다.  혼자힘으로 승려의 몸으로

유수의 문화재반환을 이끌어낸 혜문스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인다. 스님은,

문화재는 민족의 정신이고 우리의 기억과 삶이므로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있는 것도 관리못하는 무능을 탓하기도 한다. 그 역시 맞는 말이다. 수장고보관이 아니라 번듯하게 대로 한가운데 있던 국보 1호도 태워먹지 않았던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자료에 의하면 해외에 있는 우리문화재는 파악된 수만

15만점이 넘는다. 꼭꼭 숨겨 소재를 알수 없는 것까지 합하면 100만점이 넘을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다 찾아올수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 일단 소재파악이

가장 중요하고 근현대 유물은 불법반출임을 증명해서 환수에 힘을 써야한다.

구매도 한 방법이다. 민족감정이나 피해의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있는 문화재 관리도 중요하다.  혜문스님은 너무 중요하고 필요한 일을 계속하고 있지만 스스로 지적한 대로 대중주의나 민족주의에 매몰되어서는 곤란하다.

예를 들어 히젠도는 일본측에서 주면 좋겠지만 왜 거기다두냐고 다그치는 태도는 좀 아니다. 기념품처럼 보관한다고 했는데 혜문스님이 쓴 글 자체만 봐도 기념품

처럼은 아니다. 그저 골방에 ‘보관’하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관건은 널리 알리는 일이다. 많이 알려질수록 우리에게 유리하다. 

 

그러나 우리땅에서 후손들에게 사랑받고있어야할 문화재들이 외지에서 숨어서

혹은 의미도 모르는 자들의 손에서 향수병에 고생하리라 생각하니 조상님들께

정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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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 조선의 책과 지식은 조선사회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을까?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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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강명관 / 천년의상상 / 547

 


예전에 무슨무슨 시험이나 퀴즈에 단골로 나오던 문제중에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는 무엇인가 하는게 있었다.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되는데  답은 우리나라에 없는 직지심체요절이나  책이 남아있지 않은 상정고금예문이다.  이걸가지고 서양의 구텐베르크 보다 100년, 200년 먼저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임진왜란때 왜군이 금속활자를 싹슬이해서 그때부터 일본에 출판이 시작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데 왜 지금 우리나라는 출판대국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나만 가진건 아니었는데 지금 강명관교수가 그런 의문을 가진 모든 이에게 시원한 대답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 한정한, 왜냐하면 그 이전시대는 자료가 없기에, 책에 관한 모든 이야기다.  몇 년전 출간된 <조선출판주식회사>와 여러면에서 비슷한 내용이 중첩된다.  조선시대 책의 역사를 다루면서 이 <조선출판주식회사>의 존재나 참고여부를 밝히지 않은 것은 의외다. 두 책 모두 책과 출판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고려 금속활자에서 비롯된 인쇄술의 발전은 조선에 들어와 꽃을 피우는데  출판에 관한 모든 것은 국가가 결정하고 시행하는 구조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민간출판업이나 서점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활자를 만들고 소유하고 인쇄하고 공급하는 모든 과정이 국가주도로 이루어졌다. 왜 국가에서 책의 모든 것을 관장했는가. 바로 “국가가 지식의 공급처이고 지식의 유통주체라는 의미였다. 즉 금속활자 인쇄술은 소수의 지배자 양반을 위한 것이었다.”

 

조선의 인쇄장인은 국가관청에 소속되어 있었고 출간주체는 교서관이나 주자소였다. 개인을 위한 유통구조는 존재하지 않았고 조선초기 서점 설립 주장은 묻히고 만다. 그러니 출간되는 책의 내용은 대개 경서 사서와 백성들의 교화를 위한 도덕교과서였다.


정부 뿐만 아니라 사족들의 책에 대한 욕구또한 대단하여 중국으로부터 수입이나  거간꾼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았다.  민간출판본인 방각본은 18세기 들어서야 나타나지만, 조선중기에도 서점은 없지만 책을 베끼거나 사적으로 인쇄하여 파는 이들의 존재가 확인되기도 한다. 금속활자와 목판본의 비교도 흥미롭다. 

 

조선출판주식회사와 비교하면 이 책이 보다 세밀하고 전거에 충실하며 저자 특유의 시니컬한 논조를 볼수있다는 점.  그리고 내용에 책값과 유통구조, 제책과정, 일본수출, 전란으로 인한 망실, 한글이라는 문자의 용도 등등이 독자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북한에서 전통문화를 대하는 자세가 민족의 유산인 동시에 부르주아의 잔재라는 이중성을 갖고있는 것처럼 우리 금속활자나 인쇄문화를 보는 눈도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민중의 생활향상에 어떤 역할도 하지못하고  근대를 불러오지도 못했지만 당대 지식 정보의 원천이자 문화대국으로서의 존재감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잃은게 너무 많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에 많은 문화재가 약탈되어 현재 일본에 있는 고서나 도자기가 우리보다 많을수 있다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종이를 만들거나 도자를 구워내는 장인의 기술맥이 단절된 것이다.  한지의 종류가 그리도 많은데 최상급 종이를 어떻게 만드는지조차도 모르고 있다.  강명관의 말중에 정약용의 책이 당대에 인쇄되었는지 필사되었는지 의문을 가졌다는데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세계최초가 그리 중요한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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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조건 - 제니퍼소프트, SAS,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리더들
박상욱 외 지음, SBS 스페셜 제작팀 엮음 / 북하우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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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조건
SBS스페셜 리더의 조건 제작팀 / 북하우스 / 253

 


1년쯤 전이던가 KBS스페셜에서 나온 <행복의 리더십>이라는 책이 있었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나를 행복하게 할 리더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나온, 특집방송에 소개된 전세계의 존경받는 리더들에 대한 책이었다. 주체는 다르지만 포맷은 비슷하다. 방송을 위해 기획되고 취재한 내용을 방송을 통해 먼저 소개하고 좋은 반응이 나오자 책으로 펴낸 것이다. 


그런데 KBS팀과 마찬가지로 리더를 다뤘다는 것은 여전히 혹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리더를 갈망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리더를?  마음으로 승복하는 리더를 기다리는 것이다.
지난번 <행복의 리더십>은  존경받는 리더의 조건으로 소통,공감,정의,책임,혁신,미션을 제시했다. 이번 <리더의 조건>에서는 어떤 리더를 찾아냈는가. 키워드는 바로 신뢰다.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고, 경험했으며, 현실적으로 리더 노릇을 한다.  초등학교 반장선거를 어찌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릴적에 반장부반장 한번 안해봤을 지라도 자라고 사회를 거치며 남을 이끄는 자리에 선다. 군대에 가면 싫어도 자연스레 고참이 되고, 장교부사관이 아니라도 분대장이나 내무반장을 하게된다.
조직에 들어가면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기 아래로 후배가 들어오고 회사 고참이 되면서 직책을 갖기도 한다. 가정을 이루면 가장이 되고 아이가 생기면 부모가 된다.  회사를 차리면 사장이 된다. 누구나 리더가 되고 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리더의 직책은 부모인데 이 리더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나 역시 줄반장부터 시작해서 각종 단체나 조직의 리더역할을 맡아왔고 자영업을 하면서는 저절로 사장이라는 리더자리에 올랐다. 종업원이 한명이라도 아니 없어도 리더가 된다.  책을 읽으면서 그간 내 리더십은 어땠을까 곰곰 생각해보았다.


<행복의 리더십>을 읽으면서는 나와 닮은 지도자가 한명있었다.  리더십이라는 분야에 약간 관심있어 전부터 자료를 모으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의 리더십은 하나로 귀일한다. ‘나를 따르라!’ 군대리더십이다.

강한 카리스마가 기본이어야 하고 냉정할땐 냉정하게 때론 읍참마속을 하고 때론 무조건 앞만보고 돌진해야 한다. 이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거의 유일한 리더십이다. 또 뭐가 있을까.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는 리더십이 아니라 보스십 같다.


이런 영어단어는 없지만 우리나라 실정에서 리더십 보다는 보스십이 훨씬 더 사람들 마음에 각인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군대의 장군이나 폭력조직의 두목에게서 풍기는 강제력이다. 이게 우리나라 재벌 회장님이나 사장님들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이다. 보스가 필요한 조직은 있다. 당연하다. 그러나 리더가 곧 보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리더는 앞에서 이끄는 사람이지 뒤에서 가라고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마도 동반자나 부하들, 조직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보스인지 리더인지가 구별되는데 이걸 개인의 능력이라 본다면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가 아니라면 리더십이 없는 셈이다.  이 계통에선 서번트리더라는 말은 존재할 수 없다.

 

<리더의 조건>에는 이런 부제가 붙어있다. “우리가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를 되찾기 위한 첫 질문” 그게 바로 리더의 조건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리더를 선거로 뽑는다.
협조의 의무가 있지 복종의 의무가 있는 건 아니다. 왕정체제가 아니고 개인도 신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더가 마음에 안들면 바꾸면 된다.  이런 간단한 민주주의 원칙과 절차를 모르고 있어서 오랜기간동안 독재자의 횡포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이걸 깨닫는데도 상당한 시간과 힘든 과정이 뒤따랐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리더의 조건은 너무나 간단하고 명쾌하다.
직원을 신뢰하는 리더, 구성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리더, 국민과 소통하는 리더, 특권을 버리는 리더, 약속을 지키는 리더. 이런 리더가 진정한 리더라는 것이다. 


이건 뭐 너무 당연하고 쉬운 것 아닌가. 알면서도 못하니까 이런 리더들이 존경받는 것이다. 
미국 SAS의 짐 굿나잇회장은 철저하게 직원을 믿고 그들을 행복하게 해줘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믿는다. 그래서 어찌보면 다소 과한 직원 복지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그 결과 SAS는 수년간 연속으로 포춘 선정 미국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단순하게 물질적으로 잘 해주는게 아니라 회장의 철학이 ‘고객보다 직원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장사하는 입장에서 그러기 정말 쉽지않다.

 

그런 회사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제니퍼소프트는 요즘 젊은이들의 입사희망 수위를 다툰다고 한다. 이 회사는 사내에 수영장도 있는데 마음 내키면 근무하다가도 혼자 가서 수영할수 있고 그 시간도 업무시간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회의 중 가족에게서 전화가 오면 가족전화가 제 일순위다. 지금 바쁘니까 이따 걸어-이런 말은 금기라 한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출근하기 싫으면 전화해서 오늘은 재택근무하겠다고 하면 끝이다.  근무시간중 사무실에 있는 직원보다 밖에서 수다떠는 직원이 더 많다고 하니 이런 회사가 있는가.  그런데도 매출액 상승률은 가파른 경사로 올라가고 있다.  나를 믿어주고 나를 인정해주는 회사라서 열심히 일한다는게 이 두회사 직원의 공통된 답변이다.


나머지는, 한국과 너무도 다르게 지하철로 출근하는 국회부의장, 재산이 중고차 한 대뿐인 대통령, 매일매밀 주민들 이야기를 듣고있는 시장 등 무엇이 당연한 것인지 헷갈리게 하는 외국 정치인 이야기다. 특권은 없고 봉사만 있는 정치인이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가 참으로 신선하게 들리니 그게 이상한 것 아닌가.


정치인은 시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인데 각종 특권에 빠져 스스로 위대하게 여기고 본업은 제쳐놓고 이권에만 열올리는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 있는 것은 아닐테지. 설마...

내가 직원 혹은 우리 구성원들에게 어떤 리더로 각인되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운영방식은 책과 비슷한데가 많은데 과연 제대로 굴러가고 그 전망을 자신있게 밝힐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나도 흔하디 흔한 남들과 같은 종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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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속사정, 남자의 겉치레 - <노자도덕경>과 「대학」으로 파보는 남녀의 즐거움 즐겁고 발랄한 동아시아 문명 시리즈 2
이호영 지음 / 책밭(늘품플러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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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속사정, 남자의 겉치레
이호영
책밭 / 439


동양고전을 통해 본 남자와 여자의 속성.  간략한 책소개로 이정도면 내용이 통한다고 해야하는지. 저자의 표현을 빌면, 동아시아 지역문명의 특징으로 해석한 남녀관계, 서로에 대한 이해 라고 하겠다.
역시 저자가 소개했듯 이 책은 화성남자 금성여자와 노자의 성이라는 두 책에서 많은 힌트를 받아 나온 책이다. 상당히 재미있고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노자의 사상은 여성의 특징인 친밀성과 애착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유학의 경전인 <대학>은 그 성격이 남자계발 지침서라고 보았다. <대학>의 내용을 만족시키려면 왕이 되어야한다. 그러나 모두 왕이 될수는 없으므로 남자로 하여금 왕으로 느끼게 해주는 판타지가 된다.

 

<노자>의 여성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읽어본 거라곤 김용옥의 노자 밖에 없는데 거기에는 노자의 여성성에 대한 구절이 없다. 신선한 해석이라고 하겠는데 저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노자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사실이라 한다. 그래서 도가와 유가를 양립할수 없는 사상체계라고 한다. 

 

유학의 탄생은 여성적 원리인 친밀성을 지킬 울타리가 필요해 남성의 원리인 유학이 등장한 것이라고 한다. 즉 문화적 공동체를 야만과 야생의 공격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동아시아에서 마련한 울타리가 유교와 <대학>이라는 것이다.

서두의 창조신화는 매우 흥미롭다. 최고신을 의지와 욕망으로 본 것은 탁견이라 생각된다. 세계신화의 재구성과 재조합으로 만든 판타지 우화는 그 자체로도 한편의 재미있는 창작소설이 될 듯 하다. 여성이 먼저 만들어지고 남성은 여성의 애완동물 역할을 하기위해 만들어졌다는...

 

그래서 이 책은 전체를 크게 다섯 부분정도로 나누고  창조신화, 노자-여자의 속사정, <대학>-남자의 겉치레, 여자와 남자의 관계를 차례로 살핀다.
정말 흥미롭고 신선하며 시니컬하고 분석적이다. 그런데 너무 다기망양하다. 마치 김용옥의 책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직설적 구어체에 방대한 지식과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사례인용 등.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차가 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동서남북을 뺑뺑 돌아 4000km쯤 가는 기분이다.

 

화이론에 대한 새관점은 살펴볼만 하다. 식민지학이라는 것. 유학이란 노자와 초나라에 대한 중원의 식민지학이고 성리학은 고려에 대한 중국의 식민지학이다. 맞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에 대한 가장 큰 의문은 과연 노자는 여자, 대학은 남자, 이런 구분이 맞아 떨어질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노자를 여성성으로 해석한 부분은 <노자와 성>이라는 걸출한 저작덕분에 이해된다. 그럼 <대학>은 남자의 교과서인가? 사서중에 가장 먼저 읽은 책이 <대학>이므로 거개가 남성인 유자들의 상태를 분석한다면 <대학>이 좋은 텍스트이긴 하겠지만 그렇다면 가장 많이 읽힌 주자 주희가 교감한 <대학장구>를 택해 분석했어야 한다. 그런데 저자는 왕양명의 예기 대학편을 저본으로 삼아 분석하고 있다.  <대학>의 삼강령을 보면 ‘在親民’ 이라는 어구가 나오는데 주자는 여기서 親을 新으로 바꾸었다. 그래서 한문을 배우는 사람은 누구나 이 부분을 ‘재신민’이라고 읽는다. 물론 저자는 왜 친민이 신민이 되었는지 어떤 차이와 의도가 있는지를 상세히 밝혀주고 있다.


그런데 <대학>만 남자용 교과서였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모든 경전이 다 남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남자를 기르기 위한 것이다. 더구나 <대학>은 四書의 하나로 유생 양반귀족 관리 등 지식인을 위한 교과서다. 통칭 남자를 위한 책이라 보기엔 좀... 차라리 글을 배우는 모든 남자가 익히는 <소학>을 대상으로 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조선시대에도 사서를 읽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가 결국 같은 의미라고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왕가에만 적용될수 있는 규범이니 남자 일반론은 아니지 않을까.  저자는 유학을 전공하고 특이하게 영국에서 유학으로 학위를 받은 전문가이니 너무나 잘 알아서 썼겠지만 의문은 남는다.

 

후반부에서 저자는 여성은 친밀을 주장하고 남성은 위계서열만 따지는 한심한 조속임을 수차 강조한다.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생물학적 父性은 없다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한다. 그러니 이제는 동료로서의 가족관계가 낫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여성은 제2의 성에서 제1의 성으로 도약했다.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여성보다 열등하다. 그러니 어찌해야 하는가.
막바지에 저자는 여성가족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여성해방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한다. 여성에 대한 철학적 분석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보아야할 책인 것 같다.
결말이 궁금한 사람도 직접 읽어야 한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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