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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 17만 유튜버 ‘아는 변호사’의 결혼 이혼 실전 문답
이지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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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을 생각하고 결혼한 사람은 없다. 또한 이혼을 쉽게 결정하는 사람도 없다. 누구나 행복을 꿈꾸며 결혼하지만 끝이 좋을 수는 없다. 눈에 콩깍지가 씌였을 때는 상대방의 좋은 점만 보이지만 결혼한 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상대방의 단점이 커 보인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만 물을 벨 수 없듯 가장 어려운 것 또한 부부싸움이다. 행복하기 위해 결혼했지만 인생의 가장 큰 흔적을 남기는 것 또한 결혼이다.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는 17만 유튜버 '아는 변호사'님이 말하는 결혼과 이혼에 대한 통찰이다. 저자 역시 이혼 7년차이지만 이 책은 이혼에 대한 법률 정보를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제목 그대로 결혼을 하는 데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이혼을 할 때에도 어떤 때가 정말 이혼을 해야 하고 이혼 후 홀로 설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이 책은 먼저 현명한 결혼을 하기 위한 가이드를 제공해준다. 결혼 7년차로서 저자의 글과 나의 결혼 생활을 보며 비교하며 읽게 된다. 결혼 전 고려할 사항은 많다. 우선 상대방의 인격, 경제적 상황, 상대방의 집안 등등 많은 것이 고려된다. 저자는 결혼하기 전 중요하지만 쉽게 눈감고 넘아갈 수 있는 점들에 중점을 두어 설명하는 듯하다.

저자는 여러 예시를 들어 설명해 주는데 그 중 나와 비슷한 부분을 나누자면 바로 두 가지로 들 수 있다.

"결혼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결혼은 제도이고 선택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첫째. ' 나늘 세우고 내 인생을 살아갈 것.'

둘째, ' 내가 바로 선 후에 동반자를 찾을 것'

셋째, ' 가족의 형태를 결정할 것' 입니다.


나의 경우 보수적인 시골 부모님에게 결혼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았다. 30을 훌쩍 넘겼지만 남자 친구 하나 없이 집과 직장만 오가는 나를 답답해하셨다. 전화를 해도, 명절에 집에 가도 결혼하라는 부모님의 압박에 시달려왔다. 그 압박이 너무 힘들었고 나 역시 압박에 세뇌되어서일까. 결혼 하지 못한 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 그래서 쫓기듯이 결혼했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주체는 내가 아닌 부모님의 압박이였다. 그래서일까. 결혼을 하면서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너무 거셌다.

결혼을 한 후 깨닫게 된 건 미혼일 때 행복하게 주체적으로 살고 결혼을 주체적으로 선택한 사람이 결혼 후에도 당당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였다. 그 점을 저자는 속시원히 지적해준다. 결혼을 의무라고 받아들여 내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던 미혼 생활은 행복한 결혼을 하는데 장애물이 되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인생이 중요하며 결혼의 선택 또한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이 점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저자와 같이 이런 말을 해 주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지금의 남편과 만나 결혼할 수 있었을까 자문해본다.

"돈은 없지만 둘 다 젊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죠."

이 생각은 결혼 전 백프로 나의 생각이였다. 결혼 전 남편이 경제력이 약한 걸 알았지만 나 역시 계속 일을 하므로 경제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둘이 같이 일을 함에도 빈약한 경제력 위에서 출발한 우리의 상황은 언제나 풍족하지 못했다. 경제 문제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고 생활은 지극히 현실이라는 걸 실감해야했다.

사람들은 사랑 사이에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의 젊은 세대 중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사랑 하나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듯 '곤궁함은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다.'

저자가 말한 부채를 속이고 결혼하다 당하는 예시는 내게 해당하지 않지만 경제적 상황은 그만큼 중요하다.

저자는 결혼 7년 차에 이혼을 했다. 누구나 이혼이 쉽지 않은 결정이듯 저자도 결코 쉽지 않았다. 저자는 자신이 힘든 결정을 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혼을 선택하게 만든 결정적 원인은

내가 동의하지 않은, 그저 사회에서 만들어놓은 어떤 역할이 아닌 '나로서 살자'는 결심이었습니다.

저자가 말한 '나로서 살자'라는 결심이 어떤 것인지 결혼한 여자들은 모두 알 것이다.

결혼 전 한 개인으로 당당히 살아가던 여성이 결혼과 동시에 누구의 아내, 엄마, 며느리로 역할을 강요받고 슈퍼우먼이 되어야하며 정작 자신의 삶을 죽일 걸 강요하는 이 사회의 압박 때문이 아닐까?

나 역시 아이를 두고 공부하는 것을 눈치봐야했고 항상 나라는 개인과 주변의 역할에 저울질해야만 했다.

저자는 변호사이지만 전문직 여성에게도 결혼의 굴레는 평범한 나와 다르지 않았다. 결혼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더 많은 굴레가 주어지는 현실이다.

나답게 살기 위한 결혼을 해야 하고,

나답게 살기 위한 이혼을 해야 합니다.

결혼도 이혼도 나답게 살기 위한 스스로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나답게 살 수 있을 때 나는 가장 이타적일 수 있고,

비로소 내 삶을 책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혼을 선택해야 할 때가 바로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한 삶을 살지 못하면 그 자체가 바로 이혼사유가 된다고 말한다. 내가 없는 삶은 결국 나를 불행하게 한다. 아이들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건 바로 나 자신이므로 나를 위한 삶, 선택이 필요하다. 그렇기 위해서는 빨리 나의 삶을 찾아야 한다. 아이 때문에, 주변의 시선 때문에 미룬다는 건 결국 나를 불행의 연장선상에 두는 것이므로 저자는 이혼에 있어 신속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혼 7년차이지만 나 또한 이혼을 생각할 때가 많다. 솔직히 저자의 '나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 어쩌면 저자가 보기에 나는 이혼을 해야 할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지지부진하게 끌고 있을 것이다. 저자의 글을 읽노라면 왜 나는 나 자신으로 행복하게 살지 못했을까라는 후회가 엄습해온다. 나 자신이 행복한 삶을 충분히 살지 못했고 결혼 선택도 내가 주체가 되지 못했다.

책을 읽으며 나를 찾기 위해 더욱 몸부림쳐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먼저 나 자신이 바로 서야 결혼을 Go 할 것인지 Stop 할 것인지 또한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도 스스로의 선택이듯 이혼 또한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진지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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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토록 평범하게 살 줄이야
서지은 지음 / 혜화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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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이 책을 보게 된 건...

저자와 비슷한 나이이자 푸념 식으로 말하는 듯한 제목

《내가 이토록 평범하게 살 줄이야》라는 저자의 한숨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나 역시 어렸을 땐 뭐든 꿈을 꾸었지만 지극히 평범한 나의 모습을 보며 한숨 짓는 때가 많아 같은 공감을 생각하며 책을 들었다.

싱글 워킹맘이자 보험 설계사인 평범(?)한 한 여성이자 작가인 서지은씨의 에세이다. 이혼 후 힘들 때 글의 힘을 깨닫고 작가로의 꿈을 꿈꾸는 저자의 이 책은 일상 속에서 저자가 느끼는 삶의 태도를 맛보게 하는 글이다.

경제적인 성공? 하고 싶지.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는 장래희망은 작가라는 꿈? 이루고 싶지.

그러나 알고 있다.

생존과 꿈의 방향성이 다를 땐 내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삶의 뒤안길에 심긴 후회라는 나무에 미처 수확하지 못한 과실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if I should'의 냄새는 결코 향기롭지 않다.


나이가 든다는 건 선택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어른들은 물어본다.

넌 뭐가 되고 싶니? 선생님? 대통령? 화가? 등등 많은 선택지를 주며 마음껏 골라보라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우리의 눈 앞에 선택지가 하나씩 하나씩 빠져나간다. 그리고 생존과 꿈 사이에서 '포기'라는 선택을 쉽게 강요한다. 어느 누구도 '라떼는 말이야'와 '그랬었어' 라는 if I shoul를 말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의 삶은 쉽게 포기하며 나아간다. 과거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평범한 생활인이 되어버린 모습 속에 자조 섞인 웃음을 지어보인다.

저자는 자신의 이혼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남부럽지 않은 삶이였지만 공허함에 헤매였던 날들. 그 날들을 소설 <19호실로 가다>를 읽으면서 하루 하루 견디어간다. 결국 다다른 이혼이라는 길목 앞에 저자는 덜 불행하기 위해 오늘 하루도 이겨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따사로운 곳으로 나를 이동시키고 싶어도 떨어지지 않는 그늘.

사람들은 모른다.

그늘의 본질을. 그늘은 그냥 그늘일 뿐이잖아요.

저자가 말한 그늘에 대한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뭔지는 알 것 같다. 사람들은 저자가 힘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모님 소리 들을 수도 있을 정도로 넉넉했고 사랑스런 딸이 있는 삶이 불평할 게 무엇인가. 하지만 힘든 건 힘든거다라는 것. 힘들다는 것에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그늘이 그냥 그늘이듯 저자의 마음이 괴롭고 힘든 건 그 자체일 뿐이다. 나 역시 그렇고 많은 사람들 또한 그러하다. 어느 누구도 이유를 댈 수 없다.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가는 동안 꽃도 보고, 호기심에 충만해 샛길에 빠져도 보고,

벌레 소리 듣다 바람과 인사도 하고.

그럼 된다.

조금 늦게 도착할 뿐이다.


이 문장을 보며 책 제목 <내가 이토록 평범하게 살 줄이야>라고 푸념한 뒤 저자가 하는 다짐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하게 살면 어떤가. 그냥 '조곤조곤' 실천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힘들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꽃도 보고 벌레 소리도 들으며 천천히 가도 좋다고 말하는 저자의 글이 위로를 준다.

남들의 기준에 달하는 특별한 삶은 살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우리의 삶을 빨리빨리의 삶에서 벗어나 순간을 여유롭게 즐기며 가는 것 또한 우리의 인생이다.

<내가 이토록 평범하게 살 줄이야>라는 저자의 푸념 섞인 글인 줄 알았는데 그 자체도 사랑하려는 저자의 몸짓이 담긴 글이였다. 이런 나라도 사랑하고 다독이며 나아가자고 말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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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 각본집 - 용기를 내는 게 당연한 나이
임선애 지음 / 소시민워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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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나이에 대한 편견과 마주한다.

늦게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불쌍한 사람 취급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나이가 있는 엄마를 둔 아이들에게도 불쌍한 시선을 준다. 연예 기사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특히 여자 연예인의 경우 나이를 거론하며 40대 답지 않은 몸매, 피부를 말하며 그들의 미모를 예찬하는 기사를 본다. 그 기사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과연 40대다운 몸은 어떤 거지?

50대답다는 건 힘없고 볼품없는 모습인 걸까?

우리가 나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 또한 우리의 고정 관념이 아닐까?

영화 《69세》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철저하게 고발하는 영화였다. 69세의 여인이 20대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이 영화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여서 화자가 되었던 작품이다. 69세의 여인이 성폭행을 고소했지만 겪어야만 하는 사회의 조롱과 편견을 적나라하고 씁쓸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가 각본집으로 나왔다.

《69세》의 주인공 효정은 동인과 함께 산다. 효정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던 중 물리치료사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경찰에 신고를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접수한 경찰도, 고발당한 가해자 이중호도 이 사건을 우습게 여기며 효정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세운다.


연세도 있으시니까....

혹시...

치매검사 같은 거 받아보신 적 있나 해서요.


성폭행을 고발하는 효정을 치매노인 취급하는 경찰들, 20대 팔팔한 청년이 뭐가 아쉬워서 69세 할머니를 성폭행하겠느냐고 웃어넘기며 영장을 기각하는 기관, 사회의 이 행태에 가해자인 이중호는 뻔뻔하게 합의로 이루어진 관계자라고 고집한다.

피해자다움..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다움은 없다. 피해자는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는 그들의 목소리를 기각한다. 그들의 편견에 69세 효정씨는 피해자답지 못하다. 과연 누가 만들어 낸 편견인가?


"제가 젊은 여자였으면 그 사람이 구속이 됐을까요?"


나이 들어서 험한 일 하고,

혼자 사는 여자로 보이면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고,

무시하고, 치근대요.

옷이라도 잘 차려입으면 그게 덜해요.

이 정도 입고 다니면 제가 안전해 보입니까?


옷을 잘 입었다는 고형사의 말에 효정은 반문한다. 그들의 눈에 어떤 게 기준인지.

사회가 일방적으로 정한 기준 앞에 저울질하며 손가락질한다. 특히 여성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리고 나이 든 여성에게는 존재성까지 의심한다.

《69세》는 철저히 현실주의적인 영화다. 관객들과 각본집을 읽는 독자들에게 잔뜩 생각할 거리를 던져놓는다.

피해자다움은 없다. 그리고 노인다움도, 여성다움도 없다. 20대도, 60대도 모두 한 개인일 뿐이다.

이 영화가 코로나로 많은 관객을 보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다. 각본집으로 읽으니 그 아쉬움이 더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꼭 봐야 할 우리 사회의 자화상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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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졌어 - 평범한 직장인에서 산 덕후가 된 등산 러버의 산행 에세이
산뉘하이Kit 지음, 이지희 옮김 / 인디고(글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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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사람은 아름답다. 사랑은 함께 하려는 그 자체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하다. 만약 사랑의 대상이 사물이나 어떤 물건이라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덕후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 산과 사랑에 빠진 한 여성이 있다. 산을 찾아 다니며 산에 대한 사랑을 예찬하는 여성. 대만의 산뉘하이 이야기다. 산뉘하이는 저자의 필명으로 '산의 아이'라는 뜻이다. 누가 산 덕후 아니랄까 필명마저 산에 대한 사랑이 배어난다.

저자에게 산은 무엇일까? 무엇이 저자를 산으로 이끌었을까? 그에 대한 질문을 저자는 '어머니'로 답한다.


나는 어머니 때문에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자주 그리워할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한 번도 그 사랑을 멈춘 적은 없다.

어머니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지금 힘껏 숨을 쉬고 있다고.

힘든 일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다시는 나 자신에게 회피할 이유를 주지 않겠다고.

오늘로써 어머니를 위한 걸음은 마침표를 찍는다.

이제부터는 나를 위한 걸음을 내딛겠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일본의 가을 산행, 어머니의 임종 이후 그리움에 산을 오르던 저자는 다짐한다.

이제는 자신을 위한 걸음을 내딛겠다고. 자신을 위한 걸음을 걷기 시작한 순간부터 저자의 사랑은 시작된다.

산행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배낭? 신발? 체력?

저자 산뉘하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자기 자신을 믿지 않는 한 모든 건 불가능하다.

삶도 산행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의 계획이 어긋날 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를 믿는 것이다. 저자 역시 여러 산을 다니며 외롭기도 하고 길도 잃지만 그 때마다 깨닫는다. 나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길은 언제나 열린다고.

그래서 산을 오를 때마다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안다. 사랑이 소유를 의미하지 않음을.

사랑은 그 존재 자체로 행복하므로 굳이 소유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만족하고 감사한다.

저자의 산에 대한 사랑 또한 마찬가지이다. 산과 길은 그 자체로 저자에게 하나의 여정이자 행복이다.

산이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며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한다. 함께 하는 순간이 소중할 뿐이다.

산에서 하는 그 자체가 소중할 뿐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안개가 끼면 멈추고, 걷히면 나아가는 데 만족한다."

산을 개발 대상으로 여기며 정복할 생각에만 혈안인 현재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가장 회복해야 할 것은 환경보호라는 구호도 중요하지만 자연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게 먼저라는 걸 느끼게 한다. 사랑하면 소유하지 않으려 하고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니까..


덕후들은 서로 비교하지 않는다. 서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으로 행복해한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으로 행복해한다. 저자를 비롯해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다. 함께 산을 오르고 먼저 가기도 하며 쉬어 가기도 한다. 각자의 방식을 존중해주며 응원해준다. 산을 오르는 행위만으로 소중하다는 걸 알기에 함꼐 또는 홀로하며 서로의 길을 걸어간다.

저자에게 산은 인생이자 어머니이자 자기 자신이다.

산을 오름으로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극복해가고,

산을 오름으로서 인생을 배워나가고,

산을 오름으로서 자기 자신을 이겨나가며 사랑해간다.

저자가 말한 《산이 좋아졌어》는 결국 산을 통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 한 여성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저자가 산을 예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북한산을 오른 이후, 겁에 질려 더 이상 산을 오르지 않는 나이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나도 한 번 해 볼까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저자의 산에 대한 예찬을 읽고 있노라면 함께 산을 오르자고 손짓하는 저자를 보는 듯하다.

아마 내가 산에 오른다면 그건 분명 저자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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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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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서이다. 반자본주의라는 제목도 새로웠지만 초라한 반자본주의라니.. 그 초라함이라는 형용사 속에 저자의 겸손과 소박한 저자의 성품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렇게 제목에 이끌러 읽게 된 이 책을 통해 나는 한 명의 스승을 알게 되었다.

이수태 작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복무한 전직 공무원이였으며 2013년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1회 수상자로 선정된 이력이 있는 작가이다. 공무원이면서 논어에 대한 <논어의 발견>, <새번역 논어>, <공자의 발견>등 다수의 책을 출간한 독특한 이력의 작가이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자》는 저자의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에세이다. 왜 저자는 자신의 반자본주의를 초라하다고 말했을까?


나는 아직도 완강히 핸드폰 사용을 거부하는데,

누군가는 요즈음은 핸드폰이 없다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것처럼

취급될 소지가 있다고 넌지시 일침을 가한다.

그러고 보니 벌써 세상은 수년 전만 해도 최신품이던 핸드폰 사양을

무슨 골동품처럼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나는 아직 버티고 있다.

이 버팀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버티는 데까지는 버티어보려한다.

이것이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다.


저자는 컬러텔레비젼을 구입하는 것도, 핸드폰을 구매한 것도 주변 사람들에게 한 마디씩 들어서야 마지못해 구매를 한다. 어차피 살 거 빨리 사라는 둥, 핸드폰 없다는 것도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는 둥 사람들은 저자에게 조언을 한다. 저자는 가능한 소비를 줄이고 현 상태를 지키고 싶지만 사회는 저자의 삶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는다. 그러한 압력 속에서 저항하며 버틸 데까지 버틴다. 결국 질 것이라는 걸 알지만 최대한 지킬 수 있는 데까지 해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아내와 남들에게는 단지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지키고 싶다.

저자가 말한 '초라한'은 자신의 행동이 초라해서 초라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현대 문명을 다 따르기보다 있는 것에 만족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을 현대 사회는 용인하지 않으며 초라하다고 명명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를 미덕으로 삼기에 가능한 사지 않는 행동을 초라한 것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저자의 버티는 행위 또한 초라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저자의 반자본주의 삶은 '이사'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두드려진다. 더 큰 평수로 이사하면서 소유함으로 삶의 지표를 삼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저자는 자신에게 화가 난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지만 남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힘들다. 그러면서도 32평수 아파트 안에 볼모 잡히지 않으려는 작은 버티기는 저자의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식이다.

더 큰 것을 소유하고 싶고 많이 벌고 싶은 게 인간의 심리이다. 하지만 저자는 굳이 욕심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또 굳이 남을 자신의 방식으로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말해주고 그 사람들의 방식을 이해해준다.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 때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선택폭을 넓혀주기 위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자》는 저자가 주변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 지금은 고인이 된 고 여운계 배우의 남편분과의 전화 통화에 대한 에피소드, 안양천의 추억, 훈련병의 이야기 등을 이야기하며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의 글 속에는 김수영 시인의 시가 인용되며 논어에 대한 책을 출간한 저자답게 논어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의외로 박학다식하면서도 일상에 대한 깊은 통찰이 배어나와 빨리 읽히지는 않는다. 곰곰히 곱씹고 재독하며 봐야 하는 책이다. 왜 출판사에서 이수태 작가를 '숨겨진 선비'라고 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시대에 이끌려 살기보다 지금의 것을 지켜나가고자 노력하는 한 지식인의 면모가 드러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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