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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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서이다. 반자본주의라는 제목도 새로웠지만 초라한 반자본주의라니.. 그 초라함이라는 형용사 속에 저자의 겸손과 소박한 저자의 성품을 말해주는 듯했다. 그렇게 제목에 이끌러 읽게 된 이 책을 통해 나는 한 명의 스승을 알게 되었다.

이수태 작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복무한 전직 공무원이였으며 2013년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1회 수상자로 선정된 이력이 있는 작가이다. 공무원이면서 논어에 대한 <논어의 발견>, <새번역 논어>, <공자의 발견>등 다수의 책을 출간한 독특한 이력의 작가이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자》는 저자의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에세이다. 왜 저자는 자신의 반자본주의를 초라하다고 말했을까?


나는 아직도 완강히 핸드폰 사용을 거부하는데,

누군가는 요즈음은 핸드폰이 없다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것처럼

취급될 소지가 있다고 넌지시 일침을 가한다.

그러고 보니 벌써 세상은 수년 전만 해도 최신품이던 핸드폰 사양을

무슨 골동품처럼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나는 아직 버티고 있다.

이 버팀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버티는 데까지는 버티어보려한다.

이것이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다.


저자는 컬러텔레비젼을 구입하는 것도, 핸드폰을 구매한 것도 주변 사람들에게 한 마디씩 들어서야 마지못해 구매를 한다. 어차피 살 거 빨리 사라는 둥, 핸드폰 없다는 것도 예의가 없는 행동이라는 둥 사람들은 저자에게 조언을 한다. 저자는 가능한 소비를 줄이고 현 상태를 지키고 싶지만 사회는 저자의 삶을 쉽게 허락해주지 않는다. 그러한 압력 속에서 저항하며 버틸 데까지 버틴다. 결국 질 것이라는 걸 알지만 최대한 지킬 수 있는 데까지 해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아내와 남들에게는 단지 어리석어 보이는 행동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지키고 싶다.

저자가 말한 '초라한'은 자신의 행동이 초라해서 초라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현대 문명을 다 따르기보다 있는 것에 만족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을 현대 사회는 용인하지 않으며 초라하다고 명명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를 미덕으로 삼기에 가능한 사지 않는 행동을 초라한 것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저자의 버티는 행위 또한 초라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저자의 반자본주의 삶은 '이사'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두드려진다. 더 큰 평수로 이사하면서 소유함으로 삶의 지표를 삼는 듯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저자는 자신에게 화가 난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지만 남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힘들다. 그러면서도 32평수 아파트 안에 볼모 잡히지 않으려는 작은 버티기는 저자의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식이다.

더 큰 것을 소유하고 싶고 많이 벌고 싶은 게 인간의 심리이다. 하지만 저자는 굳이 욕심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또 굳이 남을 자신의 방식으로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말해주고 그 사람들의 방식을 이해해준다. 다른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 때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선택폭을 넓혀주기 위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자》는 저자가 주변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 지금은 고인이 된 고 여운계 배우의 남편분과의 전화 통화에 대한 에피소드, 안양천의 추억, 훈련병의 이야기 등을 이야기하며 인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의 글 속에는 김수영 시인의 시가 인용되며 논어에 대한 책을 출간한 저자답게 논어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의외로 박학다식하면서도 일상에 대한 깊은 통찰이 배어나와 빨리 읽히지는 않는다. 곰곰히 곱씹고 재독하며 봐야 하는 책이다. 왜 출판사에서 이수태 작가를 '숨겨진 선비'라고 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시대에 이끌려 살기보다 지금의 것을 지켜나가고자 노력하는 한 지식인의 면모가 드러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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