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 - 서민갑부 고명환의 생각법, 독서법, 장사법
고명환 지음 / 라곰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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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개그맨보다 사업가로 유명한 고명환씨의 책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는 바로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얼마짜리 사람인가 ?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서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버는 월급의 밥값을 하는가?" 

하지만 저자 고명환씨가 던지는 이 질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저자가 던지는 그 질문은 바로 내가 나 자신을 아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우리가 답을 했다면 다시 묻는다. 

내가 대답한 액수에 충분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부족한가? 더 벌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의 삶, 자기 자신의 현 위치, 내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안 후에서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강하게 이야기한다. 

 

저자는 책 제목에서부터 과감하게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흔히 재테크를 생각한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처럼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며 돈 버는 방법을 이야기해줄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고명환씨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바로 여기서 고명환씨는 앞서 '나는 얼마짜리 사람인가?'라는 질문 다음에 '어떤 가치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도록 한다.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왜 장사를 하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어떤 가치를 만들 것인가로 답하라. 

지금 당장 이 질문의 답을 만들기 시작하라.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겠다는 단순한 욕망에서 벗어나 고차원적인, 이타적인 가치를 만들어 실행하는 장사. 그것이 바로 '끌어당김'의 원칙을 만들어낸다.  

책에서 고명환씨는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왜 돈을 벌려고 하는가?" "가치가 무엇인가?" 등등.  이 질문들 앞에서 읽는 독자는 당혹해할 수 밖에 없다.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서 답을 찾기 위해 책을 들었는데 왜 질문을 하지? 

하지만 읽으면서 알 수 있다. 질문을 생각하고 답을 해 나가는 과정에 답이 있다는 것을. 

바로 답을 찾는 과정에서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생각하는 과정이 바로 돈 버는 과정임을 저자는 말하며 그 생각은 바로 독서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IT 기술이 발달하며 SNS가 생겨나고 여러 미디어의 등장으로 남의 생각을 그냥 스폰지처럼 흡수하고 있는 시대에서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 자들이 되어간다. 생각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생각하는 자들의 지배를 받게 되는 건 당연지사다. 

 

당신은 두 시간 동안 계속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과

매일 새벽 두 시간씩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둘 중 누가 더 많이 벌겠는가? 

생각의 차이가 곧 수입의 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저자가 여려 책을 읽으며 자신이 '메밀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메밀국수 집이라는 장사를 만들기까지 어떻게 책으로부터 인사이트를 받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른 생각들을 행동으로 만들어가는지 유용한 팁을 제시해 준다. 가령 사마천의 <사기 열전>에서 나오는 글을 참고하여 자신의 가게도 20% 이익으로 정하며 실천하고 <도요타의 원가>에서 알려주는 원가 기획 단계를 보고 자신의 사업장의 원가 기획을 정확하게 산출해내며 사업을 기획한다. 

책을 그저 읽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 생각을 실천하는 그야말로 읽기 -> 생각-> 실천의 선순환이 그의 삶을 만들어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과연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인가? 맞다. 그리고 그보다 돈이 벌릴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원칙을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설명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명환씨의 아내 임지은씨가 고명환씨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처럼 행동하면 실패할 수가 없겠다." 

맞다. 고명환씨는 그런 방법을 알려준다. 실패할 수 가 없는 원칙. 그 원칙을 알려준다. 그러기에 이 책은 가까이 두고 계속 읽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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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김소영 지음 / 책발전소X테라코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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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하자 주위에서 묻습니다.

 

" 작가 되려고 해?"

 

남편 또한 못마땅해합니다. 돈이 되는 실용서나 아이 육아서는 보지 않고 문학이나 에세이만 본다고요.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작가가 되거나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한 정보성 위주로 생각을 하곤 합니다.

단지 이야기를 좋아하고 책 속의 문장을 좋아하는 것인데 목적을 부여하고 의미를 찾으라고 할 때는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서 거창한 목적이 있어야만 할까?

 

그런 의미에서 당인리 책 발전소로 유명한 저자 김소영씨의 에세이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는 제 질문에 답을 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에서 퇴사 후 서점 1,2호점을 내고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흔들리거나 감정이 무뎌질 때마다 김소영 저자는 책이라는 우물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감정을 길어올립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종이책 구독 서비스로 책을 소개하는 책편지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또 다시 직면합니다. 그리고 . 함께 이 감정을 느껴보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넵니다. 좋은 것은 나누고 싶은 저자의 마음. 이 책 너무 좋은데 함께 읽지 않을래요라며 편지를 건넵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제목 그대로 자신의 감정에 따라 목차에서 선택하며 읽어도 됩니다.

용기를 내고 싶을 때, 또는 누군가가 그리울 때, 다정함을 느끼고 싶을 때, 또는 사랑에 대해서 회의가 들 때,

목차를 보고 그 부분을 읽다보면 신기하게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 또는 옛 사건과 얽힌 감정이 떠올리며 그 사건을 이해하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해 저자의 무뎌진 감정이 살아나는 경험이 저자의 글을 통해 그 감정이 이해가 될 수 있어요.

 

저자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 중 저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보며 엄마를 떠올립니다.

 

그녀가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알아챘기 때문일 겁니다.

올리브도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이웃이 아닌 채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정말 외로웠을 거예요.

 

남들이 보기엔 괴팍한 중년 여성 올리브. 질투도 많고 남의 외모와 성격 비하는 기본 뒷담화도 서슴치 않는 성미 때문에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이 올리브를 보며 자기애가 너무 강한 엄마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자기 주장이 강한 엄마. 정이 많지만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우리에게 엄마는 큰 섬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저자는 말해줍니다. 올리브가 자신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더 외로웠을 거라고요. 마음대로 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더 힘들고 그만큼 더 외로웠을 거라고요. 그렇다면 엄마도 더 힘들겠구나. 우리가 힘든 게 아닌 가장 힘들고 외로운 사람은 엄마겠구나라며 엄마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녀가 가진 외로움은 무척 거칠고 뒤틀린 모양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계속되는 '올리브'라는 인물의 특징은 엄마를 더욱 이해하게 합니다. 엄마의 외로움의 상처만큼 감정의 모습이 크게 변화되었음을. 그 모습이 바로 상처의 깊이라는 것을요. 이 글을 읽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감정이었습니다. 그 감정을 들여다보며 더 늦기 전에 그 외로움을 함께 이겨내야만 한다고 말해줍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또 다른 책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책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또한 권태기에 있는 자크와 사라 부부의 위기를 보여주며 그 부부 앞에서 저와 남편의 관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비추게 합니다. 이젠 설렘보다는 익숙함만이 남은 관계. 가끔씩 이런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남들은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말하지만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그런때 저자는 자크와 사라 부부가 위기를 통해 서로 솔직하게 감정을 나누며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로를 정죄하기보다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해주며 그것까지 껴안으며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저자는 말합니다.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것.

그러므로 사랑엔 휴가가 없다고 뒤라스는 자크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삶이 '아름다움과 구질구질함과 권태'를 끌어안는 것처럼,

사랑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죠.

우리는 사랑의 종말이 '권태'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뒤라스는 사랑은 권태까지도 포함한다고 말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주위에서 다 그렇게 산다고 말할 때는 흔히 말하는 18번지 충고인 것 같은데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듣는 이 이야기들은 그럴 수도 있구나 납득하게 합니다. 사랑이 설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여러 감정을 함께 껴안고 나아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알려 줍니다.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에서는 이 밖에도 이민자로 삶을 살아가며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자신이 느끼는 큰 감정을 주류 사회에서 우습게 넘겨버리는 일들에 대해 쓴 <마이너 필링스>를 통해서는 지난 20대 시절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느꼈던 설움을 떠올리게 하고 돌아가신 엄마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H마트에서 울다>는 엄마의 음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자의 감정과 읽는 저의 감정이 함께 폭풍처럼 밀려오며 책의 내용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저자만의 감정이 아닌 읽는 이의 감정이 함께 존재하는 책이 되죠. 이게 바로 저자가 전하고 싶었던 최종적인 저자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털털하게 일상을 감내하는 사람들의 글 속에서 위로를 발견해요.

무심해 보이지만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문득 다정함을 눈치채고, 그런 마음이 담긴 사람의 글을 읽을 때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느껴요.

 

자기계발서나 실용서가 아니여도 이런 감정들을 느끼고 위로를 얻는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감정을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책을 통해 저자가 느꼈던 그 감정이 독자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책 속에 느껴집니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따라 한 챕터만 읽다 보면 자신의 감정과 만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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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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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수.

한 때 그녀는 유능한 상담사였다.

텔레비젼 상담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할 만큼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갔다.

하지만 자신이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한 배우가 그녀와 출연 후 자살한 이후로 그녀의 삶은 곤두박질쳤다.그녀를 향한 악플, 직장에서의 권고사직, 절친했던 친구와의 멀어짐, 남편 태주와의 이별..

그녀는 억울하다. 이렇게 한 순간에 끝내기에는 억울하다. 그녀에겐 분명 그럴 수 밖에 없던 사연이 있는데 사람들은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녀는 매일 편지를 쓴다.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자신은 방송에서야 알았다고. 만나면 알려주겠다고. 하지만 끝내 편지를 끝맺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그렇게 억울함과 외로움에 점철된 그녀의 삶에 한 고양이가 보여진다.

 

그 고양이는 동네 길고양이 . 그 고양이의 상태는 심각하다. 앙상한 체구, 온 몸에 상처가 있어 고통스러워하는 고양이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에게 한 아이가 말을 건다. 초등학교 3학년 세이. 고양이의 이름은 '순무'라고 알려주며 고양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먹는 장소가 어디인지 알려준다. 그 첫 번째 만남 이후 고양이를 통한 만남이 이어진다. 날마다 상처가 더 심해지는 고양이를 구조해 동물병원에 데려가겠다는 그녀의 결심에 세이는 기꺼이 힘을 보태기로 한다.

 

소설은 그렇게 임혜수가 세이와 함께 고양이를 구조해 가는 과정을 천천히 서술한다. 고양이 순무를 치료하자는 뜻 하에 임해수는 세이와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진다. 그리고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는 순무를 어떻게든 잡기 위해 순무를 열심히 관찰하는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그녀의 편지쓰기는 계속된다.

 

상담사라는 직업의 특성만큼 임해수는 말이 많았다. 자신의 모든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고 치료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 초등학생 세이와 고양이 순무는 말하기 보다는 관찰하고 듣기를 요구한다. 분명 학교 생활에 문제가 있는 세이이지만 함부로 자신을 내보이기를 경계하며 순무 또한 가까워져서 다가가려고 하면 야생성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그들과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조언자 또는 구원자 보다는 경청자가 되어야 한다. 주의깊게 보고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판단도 없이 그저 그들의 삶을 자세하게 들어보고 이해하기를 요구받는다.

 

아니, 그 심정이야 나도 백번 이해는 가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속이야 상하겠지. 그런데 사람이 죽었잖아요.

그렇게 하는 게 그쪽한테 뭐가 좋겠어요.

 

이 남자는 자신이 뭘 안다고 생각하는 걸까.

자신이 하는 말은 뭐가 다르다고 여기는 걸까.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이 사건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남편 태주는 뭐라도 하라고 독촉하고 친구 수연은 유가족을 만나 사죄하라고 충고하고 그녀를 알아 본 사람들은 그냥 쥐죽은 듯이 있으라는 둥,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둥 온갖 훈수를 둔다. 선의라는 명목 속에 그들은 여러 말을 내뱉고 그녀를 판단한다.

 

아줌마, 근데요,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요.

 

아이가 묻고 그녀가 답한다.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지.

 

대화는 조금씩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불신과 두려움 같은 것을 밀어내며 스스로 반경을 넓힌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녀는 아이의 마음속에 불이 켜진 것 같다고 느낀다.

 

반면 세이와 순무와의 만남은 느리다. 고양이 순무는 덫에 잘 잡히지 않고 세이 또한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녀가 자신의 문제에 개입하기를 피한다. 그저 그 느림 속에 해수는 그들의 삶을 여전히 관찰하고 들을 뿐이다. 하지만 이 지루할 수 있는 행위 앞에서 그녀는 바로 자기 자신을 보게 된다.

자신이 믿었던 말의 실체를.

상담자의 사연만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여러 조언을 해 주던 상담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알아가고 비로소 남의 말을 듣는다는 게 경청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경청해 준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세이는 그녀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들어준다는 믿음 하에 그녀를 오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임해수도 끝까지 세이의 말을 들어준다. 그렇게 그들의 상담 이야기가 비로소 시작된다. 그들의 비밀 상담이 첫 발을 내딘다.

 

경청 (傾聽) 의 뜻은 "귀를 기울여 듣는다"를 뜻한다.

귀를 기울여 듣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어떤 판단이나 편견도 배제한 채 온전히 그 사람만을 바라보고 들어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경청은 느릴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이 소설도 천천히 임해수가 세이와 고양이 순무를 보고 경청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알 수 있다. 경청하는 과정은 상대 뿐만 아니라 자신도 구원하는 과정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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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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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한 것은 삶이란 결국 허망한 것이라는 메시지다.

김영민 교수의 신작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이 질문에 가장 잘 마주하는 때는 언제일까? 아마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마주할 때가 아닐까? 앞만 보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불치병을 통보받거나 또는 가까운 지인의 투병이나 부고를 받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일시정지가 된다. 그리고 진지하게 묻게 된다.


"이제까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일까?"

"열심히 일한 대가가 결국 이 시한부 인생 뿐이라는 것인가?"


이 질문 속에 누구도 속 시원히 대답하지 못한다. 대답 없는 질문. 그 침묵 속에는 분노와 허망함이 찾아올 뿐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한때 직장 동료였던 지인의 부고를 받았을 때 그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갑작스런 부고에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을 보며 질문했다. '왜 그렇게 즐기지도 못하고 일만 하다 사셨어요?'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인간을 허무에 빠뜨리게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허무의 가장 큰 주범인 죽음, 노화, 치매, 노동 등등.. 여러 예술작품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어떻게 허무를 대해야할 것인가를 말한다. 저자는 독자들을 위로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결국 삶 자체가 허무한 것임을. 죽음도 피할 수 없고 노년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허무를 극복하기보다 허무를 인정하고 허무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부서진 성수대교는 말한다.

삶은 온전하지 않다고, 이 세상에 온전한 것은 없다고,

과거에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이 부서져버렸다고,

현재는 상처 없이 주어진 말끔한 시간이 아니라 

부서진 과거의 잔해라고.

그러나 그 현재에 누군가 살고 있다고,

폐허를 돌이킬 수는 없으나 폐허를 응시할 수는 있다고,

폐허를 응시했을 때 인간은 관성에서 벗어나 간신히 한 뼘 더 성장할지 모른다고,

성장이란 폐허 속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채 폐허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일이라고.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지난 날을 되돌아본다. 2022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새 끝자락을 향해 있는 지금, 시간의 무상함을 느낀다. 누군가는 초조해하고 누군가는 설레여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번에는 기필코 목표를 달성하겠노라고. 열심히 살겠노라고. 자본주의 사회 또한 우리를 채찍질한다. 열심히 일하라고. 뼈를 갈아도 성공할까말까하다고.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목표를 달성 못하면 삶이 무의미해져버리는 것일까?

일 또한 마찬가지다. 과학 기술이 진보했지만 과연 인간의 노동은 해방되었는가? 죽을 때까지 무거운 돌을 구르는 시시포스의 신화는 현대에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절대로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노동은 우리를 허무하게만 만드는 존재인 것인가?

이 허무함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재즈는 즉흥이다.

재즈의 핵심은 악보에 집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즐기고 궤도를 이탈해가면서 즉흥 연주를 얼마나 유연하게 해내느냐에 있다.

삶도 소울 재즈라면,

미리 정해둔 목표 따위는 임시로 그어놓은 눈금에 불과하다.

관건은 정해둔 목표의 정복이 아니라,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자기 스타일을 갖는 것이다.

 

저자는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을 예로 든다. 삶의 의미를 목표가 아닌 순간 순간을 연주하는 소울 재즈.

즉흥적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을 즐기는 소울 재즈처럼 우리 인생에 의도하지 않은 즉흥곡이 흘러나오면 그 즉흥곡에 맞춰 춤을 추라고. 그 순간을 즐기라고 말한다. 노동 또한 마찬가지다. 노동의 과정을 돈 벌기 위한 목표 지향적인 관점이 아닌 일상의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재디자인해보라고 말한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저서 <마흔에게> 에서 삶은 마라톤이 아닌 춤이라고 말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경기가 아닌 춤을 추면서 기쁘게 내려오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목표를 향해 뛰는 선수가 아닌 하는 일상의 순간 순간을 춤을 추며 나아가야 한다고. 이 춤을 추며 나아갈 때 우리는 오늘의 허무를 이겨나갈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본다. 죽음은 인간을 가장 큰 허무함에 빠뜨린다. 왜 그럴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시 묻는다. 과연 그럴까?


저자는 그림책 <할머니의 팡도르>를 응용한다. 죽음의 사신에게 자신이 따라가기 전 아이들에게 맛있는 크리스마스 빵을 만들어줘야 한다. 사신은 이걸 죽음을 미루기 위한 핑계로 생각하지만 정성껏 빵을 만든 후 할머니는 홀가분해하며 사신에게 이제 자신을 데려가라고 말한다. 의아해하는 죽음의 사신에게 할머니는 말한다.


"찰다(cialda) 속에 레시피를 숨겨두었으니 이제 비밀은 아이들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거예요. 이제 갈 시간이야."


비록 자신은 가지만 다음 세대에게 달콤함의 레시피를 남길 수 있다는 말. 그건 죽음 이후 몸은 떠나지만 그 이후에도 자신의 비밀을 간직한 또 다른 세대의 삶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이다. 나는 가지만 내 아이들이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의 삶은 다음 세대를 통해 영원할 수 있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는 저자다운 유머러스함으로 허무함을 대하는 여러 방법을 이야기해준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과 대답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삶이란 허무를 끌어안을 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허무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정상이다. 그러니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다.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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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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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를 잘 아는 독자라면 알 수 있다. 이슬아 작가는 소설도 이슬아답게 쓴다는 것을.

그렇다. 이슬아 작가의 첫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이슬아 작가다운 소설이다.

 

《가녀장의 시대》의 등장인물부터 모두 낯익다. 가녀장이자 낮잠 출판사의 대표 이슬아 작가, 이슬아 작가의 모부이자 낮잠 출판사의 직원인 복희와 웅이. 그리고 반려묘 숙희와 남희.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드는 이 소설은 작가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캐릭터가 매우 생생하다.

 

업무 시간에는 대표와 직원 모드로, 업무 외 시간에는 모부 사이와 가녀장의 체제 사이를 오가는 낮잠 출판사. 그들의 일상이 시트콤처럼 각양각색으로 펼쳐진다. 이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소설 속 자기 자신을 가정을 책임지는 대표와 작가로서의 위엄을 펼쳐지다가도 한순간에 자신을 무장해제시킨다는 점이다.

 

가령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쉴 새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

책이 나오는 인쇄기 앞에서 최고의 책을 만들기 위해 수십번 인쇄기를 돌려 원하는 색상을 출력하게 하는 열정.

아.. 역시 가녀장은 다르구나 하며 애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다가도 복희와 웅이에게 모든 일을 맡겨놓고 낮잠을 자는 이슬아 작가를 보며 복희와 웅이는 이슬아 작가의 전작이자 베스트셀러 에세이인 <부지런한 사랑>을 인용해 자기 자신을 스스럼없이 무장해제시킨다.

 

"쟤는 아침까지 자놓고 왜 점심에 또 잔대?"

"내 말이."

"은근 게을러."

"책 제목은 '부지런한 사랑'인데"

"지가 부지런하고 싶을 때만 부지런한 거지."

 

자신의 가사노동이 정당한 보수를 받으면서 새로운 삶을 사는 듯한 복희, 무거운 가부장을 내려놓고 직원이자 모부의 삶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웅이.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이 가족의 진짜 모습이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게 할 만큼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가족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지만 은연중에 상처를 주기 쉽다. 상대방이 베푸는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서로를 섭섭하게 한다. 소설 속 낮잠출판사 또한 화기애애하지만 완벽할 수 없다. 각자의 일에 치중하다보면 상대방의 수고를 몰라줄 때도 있다. 이러한 경우 해결책은 출판사답게 책으로 서로의 마음을 위로한다. 책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말하고 당신이 있어 내가 있을 수 있다며 고마움을 전한다.

 

"티타네 할머니가 그러는데, 우리는 다들 몸 안에 성냥갑을 하나씩 품고 태어난대. 근데 혼자서는 성냥에 불을 댕길 수가 없대."

"기억나, 촛불이 결국 타인이라는 얘기였지?"

"응, 혼자서도 활활 잘 타오르는 사람은 드물어."

 

《가녀장의 시대》는 어떤 권위도 또는 위엄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서로의 모습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존중한다. 때로는 모부의 마음으로 걱정되기도 하지만 가녀장이기에 존중해주고 가녀장 또한 동등한 직원이자 모부로서의 생각과 사생활을 지켜나가며 아웅다웅 살아간다. 서로의 존재가 너무 당연하지만 때때로 이들이 영원할 수 없다는 자각 앞에 더욱 사랑하자고 다짐하는 이들의 모습은 애틋하기까지한다.

 

복희에게 아름다움이란 계절의 흐름,

맑은 날에나 궂은 날에나 자라기를 포기하지 않는 존재들.

웅이에게 아름다움이란 슬픔과 기쁨의 극치를 다 아는 가수의 목소리.

밥하고 글쓰는 두 여자.

슬아에게 아름다움이란 단정하고 힘있는 언어,

그리고 동료가 된 모부의 뒷모습.

지구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무엇보다 좋은 팀이 되고자 한다.

가족일수록 그래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

 

소설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이 소설이 진행중임을 알 수 있다. 이슬아 작가는 여전히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복희는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고 웅이는 청소기를 밀며 청소를 하고 있겠지. 이슬아 작가답게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 역시 이슬아 작가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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