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
김소영 지음 / 책발전소X테라코타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기 시작하자 주위에서 묻습니다.

 

" 작가 되려고 해?"

 

남편 또한 못마땅해합니다. 돈이 되는 실용서나 아이 육아서는 보지 않고 문학이나 에세이만 본다고요.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작가가 되거나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한 정보성 위주로 생각을 하곤 합니다.

단지 이야기를 좋아하고 책 속의 문장을 좋아하는 것인데 목적을 부여하고 의미를 찾으라고 할 때는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서 거창한 목적이 있어야만 할까?

 

그런 의미에서 당인리 책 발전소로 유명한 저자 김소영씨의 에세이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는 제 질문에 답을 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나운서에서 퇴사 후 서점 1,2호점을 내고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흔들리거나 감정이 무뎌질 때마다 김소영 저자는 책이라는 우물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감정을 길어올립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종이책 구독 서비스로 책을 소개하는 책편지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또 다시 직면합니다. 그리고 . 함께 이 감정을 느껴보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말을 건넵니다. 좋은 것은 나누고 싶은 저자의 마음. 이 책 너무 좋은데 함께 읽지 않을래요라며 편지를 건넵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제목 그대로 자신의 감정에 따라 목차에서 선택하며 읽어도 됩니다.

용기를 내고 싶을 때, 또는 누군가가 그리울 때, 다정함을 느끼고 싶을 때, 또는 사랑에 대해서 회의가 들 때,

목차를 보고 그 부분을 읽다보면 신기하게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 또는 옛 사건과 얽힌 감정이 떠올리며 그 사건을 이해하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해 저자의 무뎌진 감정이 살아나는 경험이 저자의 글을 통해 그 감정이 이해가 될 수 있어요.

 

저자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 중 저는 <올리브 키터리지>를 보며 엄마를 떠올립니다.

 

그녀가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알아챘기 때문일 겁니다.

올리브도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이웃이 아닌 채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정말 외로웠을 거예요.

 

남들이 보기엔 괴팍한 중년 여성 올리브. 질투도 많고 남의 외모와 성격 비하는 기본 뒷담화도 서슴치 않는 성미 때문에 사람들이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이 올리브를 보며 자기애가 너무 강한 엄마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자기 주장이 강한 엄마. 정이 많지만 감정 기복이 심해서 우리에게 엄마는 큰 섬과 같았습니다. 그렇게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저자는 말해줍니다. 올리브가 자신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더 외로웠을 거라고요. 마음대로 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더 힘들고 그만큼 더 외로웠을 거라고요. 그렇다면 엄마도 더 힘들겠구나. 우리가 힘든 게 아닌 가장 힘들고 외로운 사람은 엄마겠구나라며 엄마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녀가 가진 외로움은 무척 거칠고 뒤틀린 모양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곤 합니다.

 

계속되는 '올리브'라는 인물의 특징은 엄마를 더욱 이해하게 합니다. 엄마의 외로움의 상처만큼 감정의 모습이 크게 변화되었음을. 그 모습이 바로 상처의 깊이라는 것을요. 이 글을 읽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감정이었습니다. 그 감정을 들여다보며 더 늦기 전에 그 외로움을 함께 이겨내야만 한다고 말해줍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또 다른 책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책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또한 권태기에 있는 자크와 사라 부부의 위기를 보여주며 그 부부 앞에서 저와 남편의 관계를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비추게 합니다. 이젠 설렘보다는 익숙함만이 남은 관계. 가끔씩 이런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남들은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말하지만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그런때 저자는 자크와 사라 부부가 위기를 통해 서로 솔직하게 감정을 나누며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서로를 정죄하기보다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해주며 그것까지 껴안으며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저자는 말합니다.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 것까지 온전히 감당하는 것.

그러므로 사랑엔 휴가가 없다고 뒤라스는 자크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삶이 '아름다움과 구질구질함과 권태'를 끌어안는 것처럼,

사랑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죠.

우리는 사랑의 종말이 '권태'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뒤라스는 사랑은 권태까지도 포함한다고 말합니다.

 

참 이상합니다. 주위에서 다 그렇게 산다고 말할 때는 흔히 말하는 18번지 충고인 것 같은데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듣는 이 이야기들은 그럴 수도 있구나 납득하게 합니다. 사랑이 설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여러 감정을 함께 껴안고 나아가는 것이 사랑이라는 걸 알려 줍니다.

 

《무뎌진 감정이 말을 걸어올 때》에서는 이 밖에도 이민자로 삶을 살아가며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자신이 느끼는 큰 감정을 주류 사회에서 우습게 넘겨버리는 일들에 대해 쓴 <마이너 필링스>를 통해서는 지난 20대 시절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느꼈던 설움을 떠올리게 하고 돌아가신 엄마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H마트에서 울다>는 엄마의 음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저자의 감정과 읽는 저의 감정이 함께 폭풍처럼 밀려오며 책의 내용은 더욱 풍성해집니다. 저자만의 감정이 아닌 읽는 이의 감정이 함께 존재하는 책이 되죠. 이게 바로 저자가 전하고 싶었던 최종적인 저자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털털하게 일상을 감내하는 사람들의 글 속에서 위로를 발견해요.

무심해 보이지만 이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문득 다정함을 눈치채고, 그런 마음이 담긴 사람의 글을 읽을 때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느껴요.

 

자기계발서나 실용서가 아니여도 이런 감정들을 느끼고 위로를 얻는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감정을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책을 통해 저자가 느꼈던 그 감정이 독자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책 속에 느껴집니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따라 한 챕터만 읽다 보면 자신의 감정과 만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실 수 있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