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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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를 잘 아는 독자라면 알 수 있다. 이슬아 작가는 소설도 이슬아답게 쓴다는 것을.

그렇다. 이슬아 작가의 첫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이슬아 작가다운 소설이다.

 

《가녀장의 시대》의 등장인물부터 모두 낯익다. 가녀장이자 낮잠 출판사의 대표 이슬아 작가, 이슬아 작가의 모부이자 낮잠 출판사의 직원인 복희와 웅이. 그리고 반려묘 숙희와 남희.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드는 이 소설은 작가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캐릭터가 매우 생생하다.

 

업무 시간에는 대표와 직원 모드로, 업무 외 시간에는 모부 사이와 가녀장의 체제 사이를 오가는 낮잠 출판사. 그들의 일상이 시트콤처럼 각양각색으로 펼쳐진다. 이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바로 소설 속 자기 자신을 가정을 책임지는 대표와 작가로서의 위엄을 펼쳐지다가도 한순간에 자신을 무장해제시킨다는 점이다.

 

가령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쉴 새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

책이 나오는 인쇄기 앞에서 최고의 책을 만들기 위해 수십번 인쇄기를 돌려 원하는 색상을 출력하게 하는 열정.

아.. 역시 가녀장은 다르구나 하며 애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다가도 복희와 웅이에게 모든 일을 맡겨놓고 낮잠을 자는 이슬아 작가를 보며 복희와 웅이는 이슬아 작가의 전작이자 베스트셀러 에세이인 <부지런한 사랑>을 인용해 자기 자신을 스스럼없이 무장해제시킨다.

 

"쟤는 아침까지 자놓고 왜 점심에 또 잔대?"

"내 말이."

"은근 게을러."

"책 제목은 '부지런한 사랑'인데"

"지가 부지런하고 싶을 때만 부지런한 거지."

 

자신의 가사노동이 정당한 보수를 받으면서 새로운 삶을 사는 듯한 복희, 무거운 가부장을 내려놓고 직원이자 모부의 삶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웅이. 소설을 읽다보면 마치 이 가족의 진짜 모습이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게 할 만큼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가족은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지만 은연중에 상처를 주기 쉽다. 상대방이 베푸는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서로를 섭섭하게 한다. 소설 속 낮잠출판사 또한 화기애애하지만 완벽할 수 없다. 각자의 일에 치중하다보면 상대방의 수고를 몰라줄 때도 있다. 이러한 경우 해결책은 출판사답게 책으로 서로의 마음을 위로한다. 책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말하고 당신이 있어 내가 있을 수 있다며 고마움을 전한다.

 

"티타네 할머니가 그러는데, 우리는 다들 몸 안에 성냥갑을 하나씩 품고 태어난대. 근데 혼자서는 성냥에 불을 댕길 수가 없대."

"기억나, 촛불이 결국 타인이라는 얘기였지?"

"응, 혼자서도 활활 잘 타오르는 사람은 드물어."

 

《가녀장의 시대》는 어떤 권위도 또는 위엄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서로의 모습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존중한다. 때로는 모부의 마음으로 걱정되기도 하지만 가녀장이기에 존중해주고 가녀장 또한 동등한 직원이자 모부로서의 생각과 사생활을 지켜나가며 아웅다웅 살아간다. 서로의 존재가 너무 당연하지만 때때로 이들이 영원할 수 없다는 자각 앞에 더욱 사랑하자고 다짐하는 이들의 모습은 애틋하기까지한다.

 

복희에게 아름다움이란 계절의 흐름,

맑은 날에나 궂은 날에나 자라기를 포기하지 않는 존재들.

웅이에게 아름다움이란 슬픔과 기쁨의 극치를 다 아는 가수의 목소리.

밥하고 글쓰는 두 여자.

슬아에게 아름다움이란 단정하고 힘있는 언어,

그리고 동료가 된 모부의 뒷모습.

지구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무엇보다 좋은 팀이 되고자 한다.

가족일수록 그래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면서.

 

소설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이 소설이 진행중임을 알 수 있다. 이슬아 작가는 여전히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복희는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고 웅이는 청소기를 밀며 청소를 하고 있겠지. 이슬아 작가답게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이야기. 역시 이슬아 작가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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