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끌로이
박이강 지음 / 북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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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끌로이』는 애초에 단편으로 쓰인 소설이었다고 한다.

단편 소설의 주인공 지유는 우연히 미지를 집에 데려왔고, 악몽 같은 하룻밤을 겪게 되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이 단편을 통해 작가 박이강은 누군가와 알고 지낸다는 것의 허울, 어떤 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착각일 수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 관심을 보였던 인디소회 친구들의 독려로 중편이 되었고,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을 계기로 장편이 된 소설이다.

장편이 되면서 주인공 지유 외에 지유의 엄마, 끌로이, 미지까지 등장인물이 많아졌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고 한다.

장편 소설의 주인공 지유는 대치동 마마 걸이다.

변호사였던 지유의 아빠는 세상에서 지는 걸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지유 아빠의 유일한 단점은 폭음이었다. 재판에서 패소한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났고, 지유 아빠는 목숨을 잃었다. 지유 아빠의 음주운전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아빠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유엄마는 지유에게 이야기했다.

"난 너만 있으면 돼."

지유엄마는 지유에게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었다. 지유도 그런 엄마를 이해했고, 엄마가 원하는 딸이 되기 위해 죽도록 애썼다.

지유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엄마는 지유를 미국에 있는 대학으로 보내기로 결심했고, 지유는 유학을 떠났다.

평생을 엄마에게 의지하며 살았던 지유는 미국에 있으면서도 잠자기 전까지 페이스타임을 끄지 않고 엄마와 연결된 삶을 살았다.

그러다 끌로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끌로이의 자유분방함에 매료됐다. 끌로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타인을 걱정하는 마음 알게 됐다. 끌로이에게 느끼는 지유의 감정은 엄마가 지유를 향해 느끼는 감정과 동일했다.

"난 너만 있으면 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받은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리며 지유는 성숙해져 간다.

삼촌에게서 엄마가 병에 걸렸다는 전화를 받고, 지유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끌로이와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

지유는 한국에 와서도 끌로이 걱정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런 지유 앞에 미지라는 아이가 나타났고, 미지와 하룻밤을 지내는 동안 지유에게는 또 다른 관계의 시련이 닥친다.

"잘 쓰러드리기 위해서는 단 한 개도 흐트러짐 없이 정확하게 세우는 게 핵심이야. 안 그러면 중간에 실패한 게임이 되거든. 어서." p.75

그제야 지유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도미노를 잘 쓰러뜨리려면 처음 세울 때부터 전체가 어떻게 쓰러질지 큰 그림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던 그 말이. p.197

사람과의 관계를 도미노에 빗대어 나타낸 장면들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마마 걸이었던 지유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힘들어했다.

하지만, 지유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성장한다.

『안녕, 끌로이』는 지유의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는 소설이다.

지유의 엄마, 지유, 끌로이, 미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네 여성의 이야기가 긴밀히 연결되어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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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네가 있어준다면 - 시간을 건너는 집 2 특서 청소년문학 34
김하연 지음 / 특별한서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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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연 작가의 장편소설은 세 명의 청소년이 비밀의 장소에 모이면서 시작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엄마와 단둘이 어려운 형편으로 살고 있는 민아, 청담동에서 남부럽지 않은 형편으로 살지만 마음에 병(공황장애)으로 방 밖을 나갈 수 없는 아린, 소년보호시설을 탈출한 소년범 무견, 세 명의 청소년이다.

셋은 우연한 기회에 하얀 운동화를 신게 된다. 하얀 운동화는 마법의 운동화다.

하얀 운동화를 신으면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파란 대문의 집이 보이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이 집의 2층에는 과거, 현재, 미래로 갈 수 있는 문이 있다. 이곳에 온 아이들은 12월 31일 오후 5시에 '소망 노트'라고 불리는 공책에 이루고 싶은 소원을 한 가지 쓰고, 세 개의 문 중 하나의 문을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다.

하얀 운동화를 신은 이들은 시간을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기회를 가지려면 몇 가지 지켜야 할 조건이 있지만, 그것만 지킨다면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설정이다. 단, 미래로 가든 과거로 가든 '죽음'에 대해서는 바꿀 수 없다.

"이 집이 왜 있는지 생각해 봐. 가족과 학교, 친구에게서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 위해서지. 여기 오는 애들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거나 마찬가지야. 난 무견이가 하얀 운동화를 우연히 발견했다고 생각하지 않네. 10년 전에 왔던 여자아이도 마찬가지였지. 그 애들이 하얀 운동화를 발견한 게 아니라 하얀 운동화가 그 애들을 찾아간 거야." p.27

작가는 '이 집이 왜 있는지?'에 대한 답을 책 속에 녹여냈다. 주인공 세 명은 모두 가족이나 학교, 친구에게서 상처받은 아이들이다. 이들 주변에는 믿고 기댈만한 어른이 존재하지 않았다. 작가는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진실을 숨기는 데서 시작되지. 솔직해야 한다고 충고할 자격이 내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선택의 날까지 마음이 껄끄러울 거야. p.127

꼭 상처받은 청소년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파란 대문 집을 지키고 있는 아저씨도 마음에 상처가 깊은 사람이다. 그 당시는 그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아이에게 도움을 주었는데, 도움을 받은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자책에 빠진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른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가 어렵다.

어른다운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책을 보면서 더 절실하게 느꼈다.

"멤버들은 세 개의 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 그 선택이 아니더라도 삶은 선택의 연속이야.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시간은 흐르고, 그 선택이 옳았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흘러야만 알 수 있지. 잘못된 선택을 했나 후회가 들더라도 당시에 최선을 다했다면 안타까워할 필요 없어. 우리에게는 바로잡을 시간이 있으니까.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으며 나아가는 게 인생이니까. p.131

멤버들은 12월 31일이 되면 과거, 미래, 현재 세 개의 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곳에 네가 있어준다면』의 주인공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들은 함께 지내면서 서로를 이해하며, 성장한다.

이들의 최종 선택은 자신만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다.

내게 과거, 현재, 미래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내게 과연 민아만큼의 절실했던 순간이 있었나?

나는 타인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어느 정도까지 내놓을 수가 있을까?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들이다.

시간을 건너는 집 2 『그곳에 네가 있어 준다면』은 청소년을 위한 장편소설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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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알베르 카뮈 지음, 이주영 옮김, 변광배 감수 / 코너스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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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는 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같은 해에 에세이 『시지프 신화』를 발표하여 철학적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1957년 마흔넷의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지만, 1960년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빙판길에 차가 미끄러지며 생을 마감하게 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르겠다. 양로원에서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이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어제였나 보다. p.8


이렇게 시작하는 『이방인』은 첫 문장부터 사람을 끌어들인다.

엄마가 왜 죽었을까? 어떤 사이길래 엄마가 오늘 죽었는지? 어제 죽었는지? 그것도 자세히 모를까? 주인공은 어떤 사람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문이 든다.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해수욕을 즐긴다. 거기서 예전에 알고 지내던 여인과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된다. 같은 건물에 살던 레몽과 친구가 되고,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

온몸은 긴장했고, 나는 손으로 권총을 꽉 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다.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날카롭고 귀를 얼얼하게 하는 소리 속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흔들어 털어버렸다. p.76


뫼르소는 살인을 저질렀다.

태양 때문에….

태양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다니….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뫼르소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뫼르소는 엄마 장례식 때도 그랬고, 좋아하는 여자가 '나랑 결혼할래?' 하고 물었을 때도 그의 대답은 평범하지 않았다.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는 감방에 가고, 재판을 받는다.

재판을 받는 과정은 2부에 나오는데, 예심판사나 검사들은 뫼르소의 '살인'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뫼르소라는 인간 자체를 심판하려고 한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울거나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여인을 만나 즐거운 희극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여인과 만나 해수욕을 하고, 집에 갔다는 이유로….

판사와 검사는 뫼르소가 살인을 계획했으며, 살인을 저지르도록 예정된 자로 규정하고 단죄하려 한다.

뫼르소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재판이 아닌 그 자체를 재판한다.​

감옥 생활 초기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내가 자유로운 신분이었을 때처럼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발바닥 아래로 밀려드는 첫 파도의 소리, 몸이 물속으로 들어갈 때의 느낌, 물속에서 느끼는 해방감을 상상하다 보면 이 감옥의 벽들이 얼마나 나를 옥죄고 있는지 실감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기분도 몇 달간이었다.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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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생활을 하며 뫼르소는 느꼈다.

자유로운 신분이었을 때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이 힘들게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적응했고, 어느 순간 자신을 누군가가 마른 나무의 기둥 속에 넣어놓고는 머리 위에서 꽃처럼 피어나는 하늘만 보면서 살게 한다 해도 조금씩 그 상황에 익숙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참 적응을 잘하는 무서운 동물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심지어 부조리, 불평등조차 적응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방인』을 읽으며, 나도 혹시 부조리와 불평등에 굴복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죄수들이 가장 불만스러워하는 것도 여자 문제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나도 다른 죄수들과 마찬가지이며 그런 대우는 부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로 그러려고 댁들을 감옥에 가두는 겁니다." 그가 말했다.

"그러려고라뇨?"

그래요. 자유란 그런 것입니다. 댁들에게 그 자유를 빼앗는 거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부분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p.95


뫼르소는 재판에서 사형을 구형 받는다.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뫼르소는 자신의 죽음이 가진 부조리성을 깨닫는다.

하지만, 뫼르소는 항소를 하지 않는다.

그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 많은 사람이 그를 '증오의 함성'으로 맞아주기를 바라며 죽음을 맞이한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끊임없이 그려졌다.

"왜? 그랬을까?"

이 책의 마지막에는 전 한국외대 변광배 교수의 작품 해설이 담겨있다.

작품 해설은 다각도에서 분석을 해놓아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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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스강의 작은 서점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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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프리다 쉬베크는 1980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꾸었고, 블로그를 통해 글을 쓰다가 2011년 발표한 첫 소설 『샬롯 하셀』이 큰 사랑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템스강의 작은 서점』은 한국에 처음 소개된 프리다 쉬베크의 장편소설이다. 이 책은 영어와 독일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인 심연희에 의해 번역되었다.

템스강이 보이는 리버사이드 드라이브 187번지에서 30년 넘게 책방을 운영하던 사라의 죽음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스웨덴에서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던 샬로테는 어느 날 영국 변호사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는다. 변호사는 샬로테를 영국으로 부른다. 이유는 이모 사라가 샬로테에게 서점을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모가 런던 한가운데에 있는 서점을 물려주었다는 소식에 얼떨떨했지만, 상속에 관해서는 본인이 아니면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꼭 영국에 가야 했다.

영국에 도착했을 때 샬로테는 하루라도 빨리 상속 절차를 마치고, 스웨덴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 마르티니크가 너무도 반갑게 그녀를 맞이했고, 샬로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점 서점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샬로테는 사라 이모가 살던 서점 2층에 머물며 이모가 왜 자신에게 이 서점을 물려주었는지 이유를 찾는다. 이모의 집에 들어선 순간 자신의 엄마와 이모, 그리고 한 남자가 같이 찍은 사진을 보게 된다.

"왜? 엄마는 내게 이모가 있단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엄마는 몇 해 전 돌아가신 뒤였다.

이모의 집을 정리하며 샬로테는 궁금증을 풀어가기 시작하고, 책의 마지막에는 모든 비밀이 밝혀진다.

마르티니크는 눈가를 훔쳤다. 샬로테는 아직 자신이 준 책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또 새로운 책을 추천해 주어야 할까? 샬로테는 자신이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만, 마르티니크가 보기에 그 말은 그냥 핑계였다.

누구든 자신에게 맞는 책을 손에 드는 순간 독자가 되는 법이니까. p.236

책을 읽다 보면 동네 작은 서점의 장점을 알 수 있다.

주인공 샬로테를 도와주는 주변 인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마르티니크의 성장 이야기도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거절을 못 해서 이렇게 또 스트레스를 받는구나. p.125

자신은 어떻게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날 이렇게 키워주면 된다는 설명서를 달고 태어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마르티니크는 아무리 노력해도 잘못을 저지르기만 하는 기분이었다. p.126

마르티니크는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딸과 동생은 마르티니크에게 처음엔 부탁을 했지만, 어느 순간 부탁이 아닌 당연히 마르티니크가 해야 하는 걸로 생각하게 된다. 거절하고 싶지만, 입 밖으로 '아니, 안 돼."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마르티니크….

마르티니크가 소설 속에서 거절의 말을 했을 때, 독자로써 통쾌함이 느껴졌다.

『템스강의 작은 서점』은 극적인 반전이나 역동적인 부분은 찾기 힘들지만,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잔잔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한정적인 공간인 서점과 몇 명 되지 않는 인물들이 전부인데, 600쪽이 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지루함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잔잔한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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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 북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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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방식』으로 2023 이효석 문학상의 대상을 수상한 안보윤은 2005년 문학동네 작가 상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 작가다. 『애도의 방식』은 학교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승규'는 동전을 던지며 '동주'에게 묻는다.

​"앞? 뒤?"

​동주가 어떤 대답을 하던, 승규는 동주의 뺨을 후려친다.

동전의 앞과 뒤는 매번 승규의 마음대로 바뀐다.

어느 날 승규는 친구 여러 명과 동주를 데리고, 폐건물 옥상에서 놀았다. 다른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승규와 동주만 남게 되었을 때 승규는 다시 한번 묻는다.

"앞? 뒤?"

​동주는 "호랑이"라고 답한다.

동주의 돌발적인 대답에 승규는 잠시 멈췄고, 동전을 확인했다.

그리고 동주의 뺨을 후려치려는 순간.

동주는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승규는 자신의 힘에 못 이겨 폐건물 아래로 떨어졌고, 죽음을 맞이했다.

승규 엄마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고 싶어 동주를 찾아온다.

"너는 거기서 대체 뭘 했니?"

동주의 엄마와 변호사는 동주에게 불리할 수 있으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사건은 마무리가 됐다.​

나는 그 모든 장면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러나 기억은 언제고 형태를 바꿔 나를 끌어들였다. 옥상 위 그 자리로 끝없이 나를 불러들였다. 어느 때의 나는 승규의 주먹에 얻어맞아 어금니가 깨졌다. 어느 때의 나는 승규에게 휩쓸려 공사장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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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종료됐지만, 동주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거듭되는 상상은 현실보다 혹독했다. 나는 수없이 승규를 붙들고 수없이 승규를 밀쳤다. 매 순간 나는 필사적이었다. 오롯이 진심이었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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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한 동주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까지 끈질기게 찾아오던 승규의 엄마는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동주를 찾는다.

그동안 정말 미안했다. 진심이야.

여자가 말한다. 그러고는 뒤돌아 걷기 시작한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걸음걸이다. 흙길이 끝날 즈음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잊어버릴 것처럼 평범하다.

나는 처음으로, 여자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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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주는 끝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글을 읽고 나니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도의 방식』이라는 다섯 글자로 이 소설을 다 설명할 수 있는 것 같다.

승규 엄마에게는 승규의 죽음이 이별의 시작이었다. 승규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동주를 찾아왔던 동안 승규 엄마는 남은 삶을 승규를 추억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동주에게 승규의 죽음은 또 다른 관계의 시작이었다. '나'를 괴롭히던 현실의 승규는 사라졌지만, 동주는 매번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타협하거나 굴종하거나, 저항하거나 복수한다. 어떤 선택을 하던지 '동주'는 괴롭다. ​

'나'는 후자를 선택함으로써 이제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사람의 얼굴, "비리고 물컹한 것"을 입에 물고 있는 표정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이 윤리적 인간의 고통스러운 얼굴은 나름의 '애도의 방식'으로 복수와 애도, 그리고 복수의 애도에 도달한 소설의 표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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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지 못할 때가 있다.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 또는 주변 상황에 이끌려 입을 다물지만, 가끔은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며, 당시로 나를 끌고 갈 때가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장면들이 많이 떠올랐다.

이 책에는 안보윤 작가의 『애도의 방식』과 『너머의 세계』 두 작품이 실려있다.

『너머의 세계』도 결은 다르지만 학교 폭력에 관한 글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로 괴로워하는 선생님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명쾌한 정답이 없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안보윤 작가의 소설은 읽는 내내 통쾌함을 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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