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 키케로부터 노자까지, 25명의 철학자들이 들려주는 삶, 나이 듦, 죽음에 관한 이야기
오가와 히토시 지음, 조윤주 옮김 / 오아시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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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오가와 히토시는 일본 야마구치대학 국제종합과학부 공공철학 및 정치철학 교수이자 일본인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시민철학자이다. 지금까지 총 100권 이상의 책을 출간했으며 국내에 번역된 저서도 다수다.

지혜롭고 만족스럽게 나이 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서평] 『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 오가와 히토시, 오아시스

책의 뒷면에 있는 위의 문장이 내가 이 책을 펼치게 된 이유이다.

나이가 듦에 따라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어떻게 나이 드는 것이 좋은 것일까? 멋있게 늙기 위해 나는 무엇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까? 이런 생각이 많아져 요즘 철학서에 관심이 생겼다.

예전에는 '철학서'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왠지 어려울 것 같아 선뜻 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요즘 책들이 쉽게 설명을 곁들인 덕인지 예전보다는 철학서를 접하는데 부담이 덜하다.

오가와 히토시의 『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는 '철학은 삶과 노년과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게 하는가'에 대한 25명의 철학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나이 듦, 질병, 인간관계, 인생, 죽음 이렇게 다섯 개의 장으로 되어 있어 각각의 주제마다 다섯 명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아두었다.

몽테뉴의 달관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다는 것이 몽테뉴의 지론이다. 따라서 그냥 닥치는 대로 아무 공부나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노쇠한 시기에 새로운 학문에 첫걸음을 떼는 것은 실수라고까지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또한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몽테뉴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말에 따르는 우리가 노년에 이르러 배워야 하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학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이가 들면 철학과 종교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p.39

[서평] 『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 오가와 히토시, 오아시스

몽테뉴의 달관 편을 보면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와 일치하는 문장이 나온다.

몇 년 전 제3의 삶을 살기 위해 환경 관련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디까지 학습을 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별생각이 없었다. 자연을 가까이하면서 그곳에 어떤 새들이 사는지? 어떤 식물이 분포하는지 그들은 어떤 생태계를 이루고 살아가는지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힐링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공부해야 할 것이 더 많아졌다.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하는지에 대한 적당한 브레이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에 대한 답을 나는 몽테뉴의 달변에서 찾았다.

힐티의 신의 선물

우리가 고민할 때 사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러나 그 답을 선택한 스스로가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그것을 깨닫게 해줄 누군가가 필요한데

그것이 책의 역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자기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p.193

[서평] 『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 오가와 히토시, 오아시스

그리고 힐티의 신의 선물 부분에서도 깊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만났다.

힐티가 말한 신의 선물은 '잠'을 자는 것이다.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많은 문제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데, 나이 들수록 근심 걱정 때문에 잠이 쉽게 들지 못한다. 힐티는 잠들지 못할 때는 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하는 시간으로 삼으라고 전한다. 억지로 잠들려 애쓰지 말고 오히려 잠 못 이루는 밤을 활용하라고 했다.

책에는 이외에도 스물다섯 명의 철학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며, 스물다섯 명 철학자 모두의 목소리에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어떤 부분은 휘리릭 읽고 지나가기도 했고, 어느 곳에서는 밑줄을 치며 필사를 하기도 했다.

독자마다 와닿는 부분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더 들어 이 책을 펼치면 지금과는 다른 부분에서 공감대를 이룰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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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아빠와 떠나는 민주주의와 법 여행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양지열 지음, 박유나 그림 / 특별한서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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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아빠와 떠나는 『민주주의와 법 여행』의 작가 양지열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중앙일보>에서 8년을 기자로 지냈다. 기자로 있는 동안 그는 법에 관해 알지 못해 곤란을 겪는 사람들을 보며, 법과 제도에 관한 궁금증을 가졌고, 그런 궁금증은 그를 법조인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가 이 책을 내게 된 계기는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을 위해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을 전하고 싶어서라고 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다뤄야 할지 고민하던 양지열은 교과서를 보게 됐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1학년까지 배우는 '사회'에 들어있는 내용을 토대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책은 변호사 아빠와 딸 '민주'가 9일 동안 여행을 하며, 민주주의에 대해 알아보는 내용이다.


1일 차가 하나의 주제를 가진 장으로 되어 있고, 1일 차 안에는 오늘의 대화(변호사 아빠가 딸에게 알려주는 메시지)와 오늘의 방문(방문해 보면 좋은 장소 소개), 교과서 밖 생각(각각의 장을 읽고 생각해 볼만한 문제)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장의 주제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어떤 단원과 연계되어 있는지 알려주고 있어 궁금한 장이 있다면 그곳부터 읽기 시작해도 무리가 없을듯하다.


1일 차는 민주주의, 2일 차는 헌법과 기본권, 3일 차는 민주 국가와 정부, 4일 차는 정치 과정과 시민 참여, 5일 차는 선거와 선거 제도, 6일 차는 민법의 이해, 7일 차는 가족 관계와 법, 8일 차는 형법의 이해, 9일 차는 근로자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의 헌법은 1987년에 만들어졌는데,

그 직전 헌법은 총칼로 권력을 잡은

군인들에 의한 거였어.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조차 없는 시대였지.

형식적 법치주의라고 하기에도 부족했어.

그러니까 지금 민주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길게 잡아도 1987년 부터란다.

들어 보니까 어때? 민주주의가 앞으로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p.32

[서평] 『변호사 아빠와 떠나는 민주주의와 법 여행』 - 양지열


1919년 3·1 운동으로 대한민국은 임시 정부를 건립했고, 이를 계승했다. 해방 후인 1948년 7월 17일에 헌법이 다시 만들어졌고, 그 헌법에 따라 우리는 대통령을 뽑고, 정부를 수립했다. 이후 아홉 번의 수정을 거쳐 1987년 현재의 우리나라 헌법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놓고 보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아직 40년도 채 되지 않은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이 부분이 가장 놀라웠다.


형법은 범죄인지 정하기 위해

세 가지 요건을 검토해.

구성 요건, 위법성, 책임 능력. p.231

[서평] 『변호사 아빠와 떠나는 민주주의와 법 여행』 - 양지열


다음으로 놀라웠던 사실은 형법은 범죄인지 아닌지 정하기 위해 구성 요건, 위법성, 책임 능력을 따진다고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형법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기 위한 보장적 기능을 가진다. 형사 절차에서도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진실 못지않게 적법한 절차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한다.


『변호사 아빠와 떠나는 민주주의와 법 여행』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다양한 법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법이 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


어려운 법을 독자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쉬운 단어와 예시를 든 것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탐방 갈 곳을 알려주는 부분이었다. 남영역에 맞붙어 있는 민주화운동 기념관, 청와대, 법원과 국회의사당까지 그냥 가볼 수도 있지만, 책을 읽고 의미를 알고 장소를 방문한다면 훨씬 좋은 탐방이 될 듯하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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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아 우라 - 청년 안중근의 꿈
박삼중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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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 박삼중 스님은 사형수의 대부로 유명하다. 일본, 태국, 대만, 중국, 뉴질랜드, 영국 등 6개국의 교도소를 찾아 포교를 하던 스님은 우연히 방문한 일본 다이린지에서 정성껏 모셔진 안중근 의사 유묵비와 위폐를 발견한다. 이를 계기로 박삼중 스님은 안중근의 흔적을 좇게 됐다.


스님도 처음엔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쏜 애국청년 정도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를 알아갈수록 그게 다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 안중근을 널리 알리기 위해 책을 쓰고, 강연도 하고, 흔적이 있다는 곳은 어디든 찾아다니면서 30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천주교도 안중근의 흔적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찾아다니는 스님 박삼중을 생각하니 뭔가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책의 첫 장을 넘기니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염수정 안드레아의 추천사가 가장 먼저 보였다. 스님이 낸 책의 추천사를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이 썼다니!!! 추기경 염수정 안드레아는 다른 책의 추천사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유일하게 추천사를 쓴 책이 바로 박삼중 스님의 '코리아 우라'인 것이다. 염수정 안드레아는 안중근 의사의 평화 사상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를 바라며 추천사를 썼다고 한다.

책은 총 3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1장은 '삼중으로 산다는 것'으로 박삼중 스님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일본에서 안중근을 만난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떤 계기로 스님이 되었는지? 박삼중 스님의 어릴 적 가정사는 어땠는지에 대해 나와있다.


2장은 '나는 군인 안중근이다'로 안중근은 대한민국의 군인 자격으로 이토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군인이라면 자기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어야 한다. 나 역시 의군과 의병장의 자격으로 이토를 사살한 것이기 때문이다.p.156 『코레아 우라』 - 청년 안중근의 꿈, 박삼중, 소담출판사


안중근은 대한민국의 적으로만 이토 히로부미를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 안중근은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것에 대해 분개했던 것이다. 그런 큰 뜻이 있었기에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안중근 의사를 영웅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토를 죽인 이유를 모른단 말이오?

그의 죄를 대라면 수십, 수백, 수천 가지를

댈 수 있지만 열다섯 가지만 말하겠소.

첫째,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요

둘째, 한국 황제를 폐위시킨 죄요

셋째,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요

넷째,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요

다섯째,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요

여섯째,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제로 빼앗은 죄요

일곱째,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요

여덟째, 군대를 해산시킨 죄요

아홉째, 교육을 방해한 죄요

열째,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요

열한째,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버린 죄요

열두째,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요

열셋째,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경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 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요

열넷째, 동양 평화를 깨뜨린 죄요

열다섯째, 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라

이 중에 가장 큰 죄는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요.

p.150 『코레아 우라』 - 청년 안중근의 꿈, 박삼중, 소담출판사


3장은 '경천, 하늘을 우러르는 마음으로'이다. 2025년을 기준으로 115년 전, 동서양에서 칭송한 용기와 인간 안중근, 영웅 안중근, 국적과 종교를 초월한 우정, 안중근의 유해를 찾아야 하는 이유 등이 담겨 있다.


'청년 안중근의 꿈' 『코레아 우라』를 읽으면서 '안중근의 유해를 찾아야 하는 이유' 부분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다. 지난달 효창공원을 다녀왔다. 그곳에 있는 안중근의 가묘를 보며, 김구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안중근의 유해를 찾아 대한민국으로 모시려고 했지만, 찾지 못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중국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북한에서도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생전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안 의사를 꼽았다. 게다가 안 의사의 고향이 황해도 해주라 북한에서는 자신들에게 연고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으로선 유해를 우리나라에서 찾도록 협조하자니 북한의 눈치가 보이고, 반대로 북한에 협조하자니 우리나라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다. p.249 『코레아 우라』 - 청년 안중근의 꿈, 박삼중, 소담출판사


안중근의 유해를 두고,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어 중국이 움직이지 않는 거라고 한다. 박삼중 스님은 책에서 중국 정부에서 모를 리가 없고, 설령 모른다 해도 그걸 알아내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거라고 했다.


박삼중 스님은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와 동양의 평화를 위해 희생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 고국으로 모셔오는 것이 역사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면서 대한민국과 국민이 안 의사에게 지고 있는 빚이라고 했다.


이 책의 초판이 나온 2015년을 기준으로 105년이나 남의 나라 땅에 묻혀 있었는데, 이대로 두다가는 안 의사가 고국에 돌아올 날은 점점 멀어질 것이라며, 스님은 우려의 뜻을 비췄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5년이 되었음에도 안 의사의 유해는 찾지 못했다. 박삼중 스님은 2024년 9월 입적하셨다.


안 의사는 언제쯤 고국의 땅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애국 청년 정도로만 안중근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청년 안중근의 꿈' 『코레아 우라』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하고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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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로 가는 마지막 기차 책고래마을 58
정임조 지음, 박성은 그림 / 책고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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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로 가는 마지막 기차』의 글 작가 정임조는 2022년 겨울에 폐역이 된 '불국사 역'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문화유산인 '불국사'를 돌아보게 하기 위해 이 그림책을 썼다고 한다.


몇 해 전 아이들과 함께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차를 타고 가면서 신경주 역을 봤을 때 다음에는 ktx를 타고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또 한 번 경주 여행을 가려던 참에 이 책을 만나게 됐다.


2010년 신경주 역이 개통되면서 동해선 기차 노선 중 몇 개의 역이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중에는 불국사 역도 있었다. 불국사에 정차하는 기차가 있었나? 그동안 왜 몰랐을까? 생각하며 찾아봤더니, 불국사 앞이 아닌 3.2km 떨어진 불국동을 통과하는 열차였다.


이 열차는 2022년 겨울에 멈추었고, 이제는 불국사를 향하는 여행객들은 ktx 신경주 역을 이용한다. 하지만 현재 신경주 역은 검색되지 않는다. 신경주 역의 이름이 경주역으로 바뀐 것이다. 원래 경주 시내에는 경주역이 있었고, 새로 만들어진 역을 신경주 역으로 부르다가, 2023년 12월 원래의 경주역이 폐역이 되면서 신경주 역의 이름이 경주역으로 바뀌게 되었다.

많은 역이 새로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불국사 역'을 마지막으로 통과하는 기차를 보며 작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다보탑에 앉아 있던 돌사자와

석가탑 바닥에 앉아 있던 돌방석과

극락전 처마 밑에 숨어 있던 황금돼지와

마당 귀퉁이에 달려 있던 구름종은

까치걸음으로 대문을 나섰어요.

[서평] 『신라로 가는 마지막 기차』 - 정임조 글, 박성은 그림, 책고래


불국사를 지키던 돌사자, 돌방석, 황금돼지, 구름종은 내일이면 오지 않을 마지막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 일찍 길을 나섰다.

기차에 오르자,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타고 있었어요.


"기차 안에서 아기를 낳은 엄마도 있대요."

"기찻길에 쓰러진 사람을

구해 준 분도 있대요."

"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타고 내렸을까요?"

[서평] 『신라로 가는 마지막 기차』 - 정임조 글, 박성은 그림, 책고래


백 년 동안 추억을 싣고 달리던 기차의 마지막 여정이 끝나자, 모두들 기차에서 내렸다.


절에 돌아온 돌사자와 돌방석과 황금돼지와 구름종은 놀라운 소식을 들었어요.

하나는 부처님도 기차를 타고 왔다는 것,

또 하나는 부처님이 백 년 동안 달려온 기차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는 것이었어요.

[서평] 『신라로 가는 마지막 기차』 - 정임조 글, 박성은 그림, 책고래


부처님은 누구였고, 부처님의 선물을 무엇이었을까?


수원과 인천을 잇는 소래철교를 달렸던 '수인선 협궤 열차'도 1937~1994년까지 다녔었다. 나는 한 번도 타보지 못했지만, 나보다 조금 나이가 있는 분들은 열차를 타고 다녔던 추억과 마지막 열차를 타기 위해 기다렸던 추억들을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닌 장소가 내게 특별한 공간이 되는 경험이 쌓일수록 '나이가 들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2022년 불국사 역이 폐역이 되면서 그곳에는 얼마나 많은 추억들이 쌓였을까?


그런 추억들에 대한 내용이 좀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폐역이 된 '불국사 역'을 찾아가면 그런 기록들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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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틈새
마치다 소노코 지음, 이은혜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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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다 소노코'는 2016년 『카메룬의 푸른 물고기』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R-18 문학상'을 수상했고, 2021년에는 첫 장편소설 『52헤르츠 고래들』로 '서점 대상'을 수상하며 대중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요즘 우리나라 대형서점에 베스트셀러 코너에 보이는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의 작가다.


『새벽의 틈새』는 여성에 대한 작가적 시선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는 '여성다움'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이야기로 채워졌다. 책은 총 5장으로 되어있다. 각각의 장은 독립된 듯하면서도 주인공 '마나'와 그녀의 가족,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로 이어진다.


책의 배경은 가족장 전문 업체인 '게시미안'이다. '게시미안'은 현재 사장인 아쿠타가와 씨의 할아버지가 시작한 회사로 가족장을 전문으로 하는 장의 업체다. 오래된 민가를 개조해서 만든 곳으로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고인과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라는 콘셉트로 운영 중이며, 이곳은 하루에 한 분의 장례만을 치르는 곳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게시미안'은 남아있는 사람보다는 떠난 사람을 위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마나'는 이곳의 여성 장례지도사이다. 장례지도사는 고인이 가는 길을 편히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마나'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보람을 느끼고, 만족스러워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그렇지 못하다. 마나와 결혼 생각이 있는 남자친구 '스미나리'는 마나가 장례지도사 일을 그만두기를 원한다. 그는 진심으로 '마나'를 좋아하고 생각하지만, 여자친구의 직업이 매일 시신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녀를 찾아가 자신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던 일을 이야기하며 '마나'를 설득하려고 한다. 그의 진실한 마음에 마나는 잠시 흔들린다.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려면

내가 행복한 순간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행복을 생각해 보는

시간도 중요한 것 같아.

그의 행복 중 하나는

내가 일을 그만두어야 이루어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일을 그만두면 나는 더는

나로서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스미나리의 행복을 이루어주려면

내 행복을 포기해야 했다. p.337

[서평] 『새벽의 틈새』 - 마치다 소노코, 하빌리스


'마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시미안'에서의 장례지도사 일을 통해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는 '여성다움'의 불공정함에 맞선다.


책에 등장하는 여성(마나, 후코, 나쓰메 등)은 '여성다움'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이들은 그 불공정한 여성다움에 맞선다.


『새벽의 틈새』는 그녀들이 찾아가는 '나다운 삶'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나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현재 누군가의 엄마로서의 삶, 딸로서의 삶, 아내로서의 삶이 아닌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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